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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19. 2023

산이 서울 나들이 1

아빠가 쓰는



그러니까 산이가 친구들 셋과 서울에 다녀왔다. 요즘 세상에 서울 다녀오는 것쯤이야 손바닥 뒤집는 일만큼 쉬운 일이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신호탄 같은 사건이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여행을 다녀온 셈이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 엄마하고 자야 잠이 들었던 아이를 생각하면 놀랄만한 발전이다. 금세 아이가 클 것 같은 느낌이다.

월요일 아침 일찍이었지?

오늘이 19일 목요일이니까, 16일 새벽 5시에 깬 산이는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갔다. 도중에 친구 한 명을 태우고 익산역에 내렸다. 거기에서 다른 친구 둘을 더 만나서 롯데 월드를 향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내가 알 수 없다.

미리 숙박할 곳도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어떻게 그리고 어디를 다녀볼지 계획을 세운 아이들이다. 나는 돈만 줬을 뿐이다. 중학교 졸업 기념으로 그런 생각을 하다니 기특한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빠가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됐던지 엄마에게 미리 도움을 요청해 놓은 것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흔쾌히 내게 청구한 비용을 건넸다. 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 가 본 곳을 너는 고등학생이 되어서 가보는 것이 반가웠다. 사실 이번 겨울 방학에 시간이 되면 내가라도 서울에 데려갈 생각이었는데 차라리 잘됐다.

놀이 기구가 역시 끝내주더라는 말이 반반으로 들렸다. 재밌고 흥겨웠다는 말과 부러웠다는 말로 들렸던 것은 지방에 살고 있는 내 처지가 과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 서울이 가진 좋은 면들에 눈을 뜨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중심은 있어야지, 네가 나고 자란 곳을 아끼고 그리는 마음을 언제나 놓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런 곳을 고향이라고 부르잖아. 이제는 색도 바라고 무늬도 떨어져 나간 듯한 말이지만 그 본성마저도 잃어서는 안 될 거 같다. 고향이 갖고 있는 향수라는 것이 있거든, 고향만이 건넬 수 있는 위안 같은 거. 너는 그것을 등불처럼 간직해라. 길을 잃거든 그 불빛을 길벗 삼아 오너라. 너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상대의 이야기도 들어주는 사람이 벗이 되는 것처럼 서울이든 여기든 네가 있는 곳, 가고자 하는 곳에 귀 기울여라. 땅이 들려주는 사연은 얼마나 많은 생명이 지어낸 무늬겠느냐. 너는 서울의 무늬를 입어 보고 펼쳐 보고 머리에 써보기도 해라.

월요일 새벽에 출발했던 아이가 화요일 저녁 10시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것들은 모두 반갑구나. 우리는 너를 환영했다. 집안에 불을 모두 켜놓고 테이블에 먹던 접시도 그대로 놔두고 신발도 그대로, 모든 것을 놔두고 밖에 나와서 숨었다. 우리가 너를 얼마나 오래 밖에서 기다렸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기다리면서 즐거워했다. 네가 반가울 것이 반가웠다. 비상계단에 몸을 숨기고 엘리베이터 숫자가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킥킥거렸다. 웃으면서 웃었다. 너는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를 찾았다. 찾고 찾고 찾고 그리고 전화하고. 우리는 깔깔거리면서 네가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너는....

반가워하더라.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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