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이란 말을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의외로 안목이 필요하다.
타이밍은 사람들의 영원한 숙제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는 서로의 타이밍을 뺏기 위해 기싸움이 치열하다.
공으로만 승부가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순간이 승부와 연결되기에 빈틈을 보일 수 없다.
공을 때리느냐, 헛스윙으로 잡느냐.
타이밍이 적절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관건이다.
'결혼은 타이밍'이란 말을 여자들끼리 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남자인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는커녕 왠지 그녀들의 그 말이 이기적으로 들렸다.
연애는?
연애 따로 결혼 따로, 라는 말이 나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느끼면서 나이를 먹었다.
어쩌면 젊었을 때 나는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이십 대에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쪽이었다.
연애했으면 결혼해야지, 무슨 결혼이 타이밍이야?
자기들 좋을 대로 떠드는 꼴이지 상대방은 어떡하라고?
결혼에 타이밍을 맞춰야지, 타이밍에 결혼을 맞추냐?
무엇에 나는 예민했던 것일까.
그랬던 내가 무뎌졌다.
나에게 타이밍은 아예 사라져 버린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그때보다 더 적절한 타이밍을 찾고 있으며 타임뿐만 아니라 아이템도 적절할 것을 요구한다.
세월이 흘렀다는 말로 이러한 변화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지 못한 듯하다.
무엇이 나를 이끌었을까.
토요일 저녁, 그러니까 9시 무렵부터 거실 불을 다 끄고 네 식구가 각기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보는 것은 추천할 만하다. 효용면에서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가성비면에서 월등한 시간 소비 패턴이다.
특히나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막강 코로나 시대 아닌가.
영화를 아예 안 보고 살았던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주기적이거나 정기적인 구매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연하게 시대의 흐름에 맞게, 무엇보다도 적'절'하'게' 선택된 활동이다.
초등 4학년 딸아이는 한창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부풀어 오르는 시기다.
아이가 읽는 책이나 즐겨보는 유튜브 동영상이나 TV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그 기분이 이해가 된다.
어른들의 세계도 알고 싶고,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재미있을 나이다.
요리는 요리라서, 음악은 또 음악이라서, 얼래? 마술도 신기하고 미술도 흥미롭고 모든 것들이 술술 재미난 표정이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은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시기인가?
아니면 중 2를 앞두고 무언가 갈팡질팡 내가 나를 모르는 그런 회색지대를 지나고 있나?
나는 그가 수수께끼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는 초등 3학년, 영어 문제를 풀 때는 중1학년, 영화를 볼 때는 사뭇 어른스럽다.
물론 동생하고 장난칠 때는 똑같은 4학년이 되기 때문에 절대로 양보가 없다.
한 대 맞고 한 대 때리는 데 재미와 쾌감을 느끼는 앙팡 테리블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눈물도 흘리는 청소년이다.
영화 채널에서 하나 골라본다.
나온 지 시간이 조금 지난 그래서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면서 재미있고, 유익하고, 다 같이 볼 수 있는 것으로, Go Straight.
늘 하는 말이지만 정말 세상에는 안 본 영화가 많다.
지금부터 매일 한 편씩 보면서 산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다 못 볼 것이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그래서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우리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봤다.
토요일 밤에 할 수 있는 일로는 적절했으며 완벽했다.
딸아이보다 두어 살 더 어린 여자 아이 둘이 주인공이다.
나는 언제나 주인공 이름에 약하다.
나중에 이름을 떠올리려면 얼굴만 계속 생각나다 만다.
내 어릴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들며 나며 한 시절을 만들어줬었는데 그 사람들 이름은 그때 벌써 잊어버린 것 같다.
여자 아이가 친구가 무엇인지, 평당 오백 만원이 무엇인지, 목적과 수단은 어떻게 비춰보는 것이 맞는 것인지 마지막에는 가족이 어떤 것인지 문제가 많이 수록된 현실을 풀어간다.
동화적이다.
아이가 끓여낸 라면은 무슨 맛일까.
한 번도 우리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마 이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 같다.
맛있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 맞을까, 고맙다고 하는 것이 어울릴까 살짝 망설여지는 대목이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완벽하다.
11살 우리 딸아이는 제대로 감동받았다.
일요일에도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그랬던 것처럼 한참 세월이 지난 어느 날에도 그 영화 생각나? 그러면서 물어올 것 같다.
그리고 그때 토요일이었지?
그때 우리 참 좋았었지?
분명히 꼬리처럼 뒤에 붙어 물어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