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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01. 2023

기도 105-1

각인이란 말은 어떻습니까

2023, 0201,  화요일



갓 태어난 새끼 오리들에게 처음이란 말은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처음 새끼 오리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만약 그때 어떤 사람이 먼저 보였다면 당분간 오리들은 그 사람을 졸졸 따라다닐 것입니다. 그 사람을 어미처럼 따를 것입니다. 오리뿐만 아니라 병아리도 그렇고 날개가 있는 생명들은 한시적으로 그런 행동이 관찰된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현상을 각인 刻印 imprinting, 또는 ´인상찍히기´라고 부른다는 것을 새로 알았습니다.




각인이란 말은 어떻습니까.


도장을 새기는 일이 각인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쓰는 뜻은 사전에 나온 것처럼 머릿속에 새겨 넣듯 깊이 기억하는 일, 또는 그 기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각인된 많은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그 숫자의 단위도 높아졌을 겁니다. 세월은 무엇을 내 정신과 마음에 새겼고 나는 무엇을 새겼을까. 연한 것들 위에 새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단단해지고 나서야, 무엇이든 굳어지고 난 뒤에 그 위에 파고 끌고 돋아서 새겨 넣습니다. 아, 딱 하나 연한 것이 있었습니다. 묵형 墨刑이라고도 불리던 벌이 있습니다. 오래전 드라마 ´추노´에서 봤던 그 형벌이 있습니다. 죄인의 몸에 상처를 내고 먹물로 글자를 새겨 죄를 표시하는 일종의 표징형도 각인 - 이 경우는 Stigma*-의 효과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각인이 형벌의 일종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주치게 됩니다. 그런 옛날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는 신앙과 종교, 관습의 이름으로 각인의 벌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여기에서도 그 일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자유와 공정을 소리 높여 외치는 이유는 차별과 불평등이 자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과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자유로운 것은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가 묻습니다. Be free,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Be free from what!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은 ´주홍 글씨, Scarlet Letter ´라는 소설을 쓰고 우리에게 영원히 묻고 있습니다. 17세기 미국 청교도 마을을 배경으로 ´간음, Adultary ´의 A를 십자가처럼 들어 올립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십자가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외롭지도 괴롭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지만 - 대학 졸업 논문으로 이 대목을 썼던 것이 저에게 각인된 듯합니다. - 그들은 모두 숨겨진 A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무리를 이루려는 본능을 가졌습니다. 무리를 이루고 그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성질은 어디에서부터 생겨난 것일까 궁금합니다. 생명은 원래 그런 것인지. 세상에 태어나 따라다녔던 무리는 무엇이었을까.




과연 기도하는지요.




내 잘못이 드러나도록 돕는지요. 내 주홍글씨는 어디에 감췄는지요. 죄책감이 정신을 좀먹는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이것은 죄책감을 건드리는 행위입니까.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운 적 있었던가, 나에게 묻습니다. 소설은 형벌로 각인된 A가 다른 A로 흐르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able,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그 유능함으로 흘러가는 두 사람을 드러냅니다.


아, 30년이나 지나 다시 펼쳐 보는 소설에서 어떤 것을 새로 만나게 될지, 어떤 옛날과 해후하게 될지,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랬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코 6:4




내게 각인된 것을 돌려드립니다.


내가 각인한 것은 버리겠습니다. 나는 자유롭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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