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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02. 2023

기도 106-1

계단 오르기

2023, 0202,  목요일



지금은 계단이 너무 많아서 탈인데 저 어릴 적만 해도 계단을 만나면 신선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둘이 오를 때는 가위바위보가 제격이었습니다. 처음 만나서 서먹하거나 말이 없는 사이도 그렇게 계단 하나를 다 오르면 어느새 친근한 감정이 들곤 했습니다. 전주 팔각정에 오르는 계단이 제일 많이 생각납니다. 꽤 높았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 위에서 보면 전주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꼬마가 혼자서 계단을 오를 땐 심심하니까 그때도 그냥 오르지 않습니다. 한 번에 한 칸도 좋고 두 칸도, 세 칸, 만만하다 싶으면 네 칸도 한 번에 시도해 봅니다. 계단을 다 오를 때까지 이렇게 저렇게 방법을 써가면서 오릅니다. 그러다가 점점 한 번에 한 칸을 오르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두 칸씩 오르면 몇 번에 끝나는지, 세 칸씩이면 몇 번, 그러다가 규칙도 정해봅니다. 둘에 한 칸, 셋에 한 칸, 그런 식으로 어떤 배열이나 조합 같은 것을 실험합니다. 말하자면 수열은 모르면서 그 비슷한 개념이 자기 안에서 착상되는 것입니다.


음악이 그렇습니다. 음표 몇 개로 공간을 채웁니다.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기도 하고 흥분시켰다가 웃겼다가 울리는 그 현란한 기교는 누구의 솜씨인지, 형언할 말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정말이지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음악이 어떻게 우리들에게 내릴까 싶습니다. 공기처럼 우리는 선율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말도 음악처럼 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심이 됩니다. 음악을 오르고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계단 하나하나에는 어떤 즐거운 울림이 울릴까. 작품은 그런 식으로 창조될 것입니다. 사람이 기적이라면 그와 같은 순간들 끝에 환하게 웃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 자체가 기적이면서 그 순간들의 완성이 또 하나의 커다란 기적이 되고 바로 그 지점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기적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계단을 오르는 과정이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같습니다. 그 물방울이 모여 한 잔의 물을 이루는 믿음, 하나의 곡이 완성되는 신비를 그 음악을 ㅡ 세상과 나누는 환희를, 꿈꿉니다. 한 잔의 물이 한 통의 물이 되고 결국 내를 이루고 바다에 이릅니다. 그 바다가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바다는 기적입니다. 기적이 있는 곳에는 늘 음악이 있습니다.


믿음은 영감 같은 것입니다. 영감은 따뜻한 화톳불일 수도 있으며 서늘한 미풍 끝에 묻어서 날아올 수도 있습니다. 영감은 촛불 심지와 같아서 거기에 불을 붙이고 주위를 밝힙니다. 밝아지면 다른 세상이 됩니다. 심지에 불이 옮기는 순간, 그 변화를 누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공간을 밝히고 시간에 색을 입히고 사람이 환해지고 그러고도 모든 소리가 따스해집니다. 아이디어와 영감은 다릅니다. 순례와 여행이 다르듯이 믿음과 기대는 다릅니다. 영감이 부는 날을 기다립니다. 그때를 기다려 바다로 나가고 싶습니다. 믿음을 항해하는 뱃사람은 근사합니다. 내 꿈은 꿈같습니다. 촛불을 켜고 나 있는 곳을 알립니다. 기도가 영감을 맞이할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오르는 일은 즐겁습니다. 가위바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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