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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Mar 11. 2023

기도 135-1

장미 같은 이름들

2023, 0311,  토요일



웃는 습관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강연자들이 많습니다. 환하게 웃고 실컷 웃고 예쁘게 웃으면서 주위를 밝게 만드는 사람이 되자고 권합니다. 정말이지 잘 웃으면 행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를 들여다볼 것 같습니다.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오던 웃음들. 웃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본 웃음들을 할 수만 있다면 포트폴리오로 작성해서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방문할 수 없는 웃음들입니다. 정작 내 웃음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웃음 때문에 죽이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의 무지막지한 추리극.




가능한 웃지 않기로, 그것은 아닌 것 같아 고쳐 씁니다. 일부러 웃지는 않기로. 혼자서 가만히 있는 일이 비록 어색하더라도 억지로 웃을 것까지는 없다고 마음을, 마음이 깃든 가슴을 톡톡 두드립니다. 나를 떠난 웃음에게 축복을 보내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게다가 언제 웃음이 돌아오더라도 흔쾌히 그리고 편안하게 앉을자리를 내어주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웃을 채비는 빠뜨리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웃음이란 그런 류의 손님이 아닌 것을 알지만 손님이 되기보다 손님을 맞이하는 편이 그나마 나 같으니까, 대충 끄덕입니다. 그러기로 합니다. 그래도 역시 웃는 사람은 좋아 보입니다. 만약 내가 웃었더라면, 그때 웃기라도 했다면, 부질없는 상상이 3월부터 꽃을 피웁니다. 벚꽃처럼 환하지만 금방 흩어집니다. 슬그머니 벚꽃이 보고 싶다는 고백을 끼워 넣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것이 내 특기인 듯합니다. 잘 웃는 사람이었다면 과연 행복했을까. 어떤 행운이 나를 노크했을까. 계십니까, 여기 아무개 씨 계십니까.




그래서 대견해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수고는 했구나 싶어서, 웃지도 못하면서 넘어지지 않고 잘 왔네 싶어서, 다시 봄을 맞이합니다. 봄은 그래서 상찬 賞讚의 계절입니다. 그것은 나를 위한 반찬이기도 합니다. 어지럽기도 한데 일 년에 한 번은 그래 봄직하다고 밖에다가 식탁을 차려 놓습니다. 꽃들은 만발하고 벌, 나비들이 청라 언덕* 위로 날아다녔으면 합니다. 연출이라도 좋으니까 마치 지난밤에 몇 번이나 간 거 같은 아기들 기저귀가 바람에 날리도록 빨랫줄에 휘영청 걸렸으면 합니다. 개나리 꽃길 끝에 그럴 리 없겠지만 하얀 목련이 철쭉이나 진달래하고 속삭거리기라도 한다면 날이 미쳤다며 웃을 것도 같습니다. 배시시, ㅋ 나 ㅋㅋ 정도, 알레그레토로 시간이 흐르면 기쁜 생각 하나가 홀씨처럼 날아오면 된다. 그 정도는 일어나도 좋은 일이니까. 어떤 것이 내 기쁜 일이 될 것인가, 봄에는 기억도 추측하고 그것이 어딘가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꿈을 꾼다. 내가 신고 자랐던 신발들은 몇 켤레나 될까. 그 신발들이 걸었던 모든 걸음 가운데 한 발자국에 내가 씨처럼 뿌려졌다 해도 봄날은 환하다. 봄이 무르익을 무렵 맡아지는 인동덩굴, 거기 달린 꽃으로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 내게 봄처럼 웃어줬던 사람들. 그 웃음, 장미 같은 이름들을 기억합니다.




그동안 볼품없는 기도에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게는 6년쯤, 짧게는 10개월쯤 되셨을 겁니다.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함께했던 분들이 웃었으면 합니다. 하늘에서 웃어주면 땅에서 사는 동안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다른 길에서 또 만나 뵙기를 청합니다. 저에게 이별은 늘 갑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매번 놀랐습니다. 사람이 자꾸 놀라면 웃음이 사라지더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열흘 동안 시간을 갖고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그 첫날입니다. 날마다 감사했다는 인사로 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바로 그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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