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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Mar 13. 2023

기도 136-1

여섯 살

2023, 0313, 월요일



"냠냠 냠냠, 아이, 맛있다."


일부러 소리를 내가면서 쩝쩝거리고 오물오물 맛있는 표정도 지었다.




"아빠, 나 여섯 살 아니거든."




맞은편에 앉아서 치즈 샌드 아이스크림을 먹는 강이는 한마디를 내뱉고 그냥 웃어넘긴다.




그렇구나, 여섯 살은 오래전에 지나갔구나. 초코 샌드 아이스크림을 반쯤 먹으니까 더 먹고 싶지 않았다. 반반씩 나눠 먹으면 좋을 거 같았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고 도리어 웃음이 새어 났다. 너는 여섯 살이 아니구나.




라디오에서 아나운서가 그런다. 남은 시간은 단 1분이고 딱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면 그게 누구겠냐고?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가 다 서운하다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그리고 선명하게 강이였다. 강이가 특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특별하지 않던가. 바로 내 가장 약한 부분이라서,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 걱정의 정수, 뭉텅이, 내 바람의 원형질이기 때문이다. 저것은 살까, 저것이 울면 얼마나 슬플까, 싶은 그런 본질적인 물음을 간직하게 하는 생명체 말이다.




사람은 약한 자의 편이다. 누구나 자기의 가장 약한 곳이 존재한다. 마지막에는 거기에 연락할 것이다. 잘 있었어? 물을 것이다.




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첫 글자로 만들어진 말입니다. 말하자면 엄마, 아빠는 귀가 들리지 않지만 아이가 들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코다가 됩니다. 신학기 몸살을 앓느라 몸과 마음이 바쁜 아이들과 불을 끄고 영화를 봤습니다. 아빠도 나오고 엄마도 나오고 오빠도 있고 그리고 막내 ´루비 로시´가 나옵니다. 루비를 빼고 모두 말을 못 합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각의 삶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삶인 그들 가족의 삶을 말을 알아듣고 말을 할 줄 아는 막내딸, 루비가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는지 낭랑한 바다를 배경으로 영화는 보여줍니다. 말이 없는 바다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도 알겠습니다. 루비는 자기도 모르는 큰 힘을 하나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침묵의 언어를 몸과 마음으로 배우고 있었습니다. 언어 가운데 가장 신비한 언어를 뽑으라고 하면, 저는 주저 없이 ´음악´을 첫 번으로 꼽겠습니다. 루비의 노래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요한 세상의 언어를 마음에 담을 줄 알게 된 루비와 그 대척점에 우리의 애절한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를 얻는 대신에 눈이 멀게 되는 ´송화´가 떠오릅니다. - 아름다움이 됩니다. 아름다운 것들은 그 자체로 감동일 수밖에 없으며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가족의 곁을 떠나야 하는 루비는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 루비를 보며 말 못 하는 아빠가 말 못 하는 엄마와 손짓으로 다툽니다.




"루비는 한 번도 어린아이였던 적이 없어!"




루비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본 적 없던 엄마가 루비를 말려야 한다며 집을 떠나면 안 되는 것들을 따지고 들 때, 아빠는 어린 루비가 어떻게 가족들을 도왔는지 절실하게 손짓합니다.




"아빠한테는 내가 항상 어린데."




거기에서 강이가 불쑥 한마디 던졌습니다.


그 순간은 설명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이렇게 서로 다른 말이 똑같을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서도 감탄했습니다.




´한 번도 어린 적 없던 루비´와 ´항상 어린 강이´는 아빠에게 똑같은 존재입니다. 그 두 언어는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어린 적 없어서 마음이 아프고, 항상 어려서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 번도 어린 적 없어서 늘 마음에 걸리고 항상 어린아이여서 마지막 순간에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내가 비밀이 하나 있는데, 엄마한테도 말하면 안 돼."




"사실은 저기 먼 나라에서 내가 왔거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우리 편이야, 우리끼리 연락하고 우리끼리만 서로 알거든."




8살, 5살 먹은 산이와 강이는 차 뒷자리에서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가로 주차된 차를 한쪽으로 밀고 난 뒤였습니다.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쳐다보길래, 그 감동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에 살짝 ´뻥´을 쳤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 뒤로도 비밀을 잘 지켜줬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오늘 아침에는 고등학교로 중학교로 등교하느라 바쁩니다. 또 여기에서 껑충 건너뛰면 어디에서 만날지, 흥미롭습니다.




많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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