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길로 샌 생각이 나를 나답게
<창조적 영감에 대하여>를 처음 펼쳤을 때는, 이 책 또한 다른 자기계발서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간주했다. '느림의 미학', '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은 이미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같은 내용을 어떻게 풀어나가는 지는 저자의 역량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저자는 책의 부제인 ‘천천히 사유할 때 얻는 진정한 통찰의 기쁨’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천천히 사유하는 데는 우리가 평소에 경멸하는 '산만함', '게으름'과 같은 요소들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집중하다가도 잠시 몽상에 빠지게 되면 스스로를 나무란다. ‘산만함’은 이미 현대 사회에서 대중의 적이 된 지 오래다. 그렇기에 저자가 이 '산만함'을 어떻게 ‘아군’으로 돌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저자는 감정에 호소하는 대신 다양한 관점에 따라 조목조목 산만함을 논했다. 흥미로운 의견이 많았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산만함'이 인간에게 유리한 특성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으로 그러했다. 침팬지는 매우 체계적인 동물이라 한다. 한 대상에 몰두하면 헤어 나오지 못해 원한을 품으면 20년 가까이 잊지 않고, 사랑하는 개체가 죽으면 슬픔을 견디지 못해 따라 죽기도 한단다. 반면, 인간은 침팬지와 비교하자면 그리 체계적인 동물은 아닌 듯싶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슬퍼하다가도 망각하고, 울다가 웃고, 참으로 변화무쌍한 생명체다. 인류학자 알베트 피에르는 인간만이 '한 대상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딴생각에 빠지며 처음 품었던 계획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일에는 기꺼이 뒤로 물러설 줄 안다.'라고 주장했다. 즉, 산만함은 인간만의 특성이자,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법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산만한 생각, 즉 다양한 인지 요소를 결합하는 비선형적 사고가 우리 삶에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역설한다. 이는 나 또한 자주 경험한 바다. 신기하게도, 답을 갈구하고자 오랜 시간 매달렸을 때보다, 잠시 숨을 고르며 머리를 비워냈을 때 선명한 해답이 떠오르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릴스를 넘기고, 끊임없이 스크롤을 넘기며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건강한 산만함에서 비롯된 행위일까? 그렇지 않다. 저자는 무분별하게 디지털 기기를 들여다보는 행위가 주의력 저하가 아니라, 오히려 주의력 과잉 상태라고 주장한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압박, 뒤처지지 않으려는 조바심이 우리가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다양한 견해를 읽어가며 혹자는 이쯤에서 “그래서 결국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인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저자는 중용을 강조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태도, 때론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도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예컨대, 디지털기기를 무조건 끊기보다는 내 행동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태도 말이다. 책에서 계속해서 다루고 있는 산만함 역시 억제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을 고민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소중한 자원이다.
나는 어떠한 콘텐츠를 탐독할 때 뭐든지 흡수하려고 하는 버릇이 있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메모하며 공부하듯 읽는다.
하지만, 이 책만큼은 그렇게 읽지 않았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잡념을 허용하고, 집중이 흐트러지면 밑줄도 시원하게 그어가며 감상에만 집중했다. 어쩐지 저자의 글 자체도 꽤 산만했다. 그의 생각을 좇는 일은 흥미로웠지만, 한 번씩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되짚어가야 했다. 문장의 반추였다. 한 번에 읽히는 글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문장이 주는 산만함에 나를 내던져서 오랜만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초고를 쓸 때 또한 이런 기분이 아니던가. 문장은 두서없고, 생각은 이리저리 튀지만, 처음 느꼈던 생각들을 여과 없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갈 때의 그 기쁨은 인간만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래 산만하다. 항상 산만할 필요는 없지만, 완벽함이라는 그릇에 스스로를 가두어 인간다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통찰의 기쁨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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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함을 꾸짖지 않는 책, 《창조적 영감에 대하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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