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걸어오다 멈춰 두리번대다가 너와 마주친 시선
첫 페스티벌이라는 추억을 안겨 준 사운드베리 페스타에 내리 세 번째 방문했다. 여러 번 공연을 경험하면 느낀 것은 사운드베리가 더 나은 공연 운영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무대 구조를 선보이며, 또 한 번 파격적인 실험을 시작한다.
배치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사운드베리는 두 개의 무대를 직각으로 배치해서 무대를 오가는 이동 동선을 줄였다. 중앙에 큰 전광판을 설치해 한자리에서 두 무대를 자유롭게 즐기는 것도 가능했다. 무대별 공연 시간이 겹치지 않은 것도 저번 행사와의 큰 차이였다. 좋아하는 두 아티스트의 공연 시간이 겹치면, 어떤 무대에 집중할지 결정하는 것이 항상 난제였는데, 이번에는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사운드베리의 공간 활용 또한 돋보였다. 넓은 부지를 활용하여 무대 맞은편에 푸드부스 및 이벤트 존을 같이 마련해 두었는데, 어둠 속을 환히 밝히는 알록달록한 조명과 어우러진 그 공간은 하나의 축제에 와있음을 실감케 했다. 특히 이번 사운드베리 페스타에서는 오감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비롯해 음악 외에도 현장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었는데, 나는 특히 후각존에서의 체험이 기억에 남는다. PHASE의 썸머 컬렉션 4종을 시향하고 해당 향과 어울리는 아티스트의 노래를 적어 보는 체험은, 후각과 청각을 연결지으며, 사운드베리의 기억을 더욱 오래 남게 만들었다. 'Taste the Music, Feel the Flavor'라는 슬로건 아래,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관객들이 음악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길 바랐다는 사운드베리의 기획 의도가 잘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확실히 한 공간에 모든 게 모여있어 편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한 시가 조금 넘었을까, 슬슬 출출해진 뱃속을 달래려 공연 메이트 C언니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큼직한 스크린이 휴게 공간에서도 보여서, 제미나이의 무대를 감상하며 쉬어갈 수 있었다. 제미나이는 이번 사운드베리에서 처음 만나보는 아티스트였는데, 힙하고 세련된 음악이 주변 공기를 더욱 상쾌하게 만들어줬다.
페스티벌의 묘미는 역시 취향에 맞는 아티스트와 음악 발굴이 아닐까. 리듬을 타며, 언니와 귀에 꽂힌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언니의 눈에 새로이 들어온 아티스트는 제이씨 유카였다. 잠시 편의점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때마침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제이시 유카의 잔잔한 노래가 자연스레 언니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고. 이제 언니의 플레이리스트의 한 켠에는 제이시 유카의 음악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우연히 만난 음악일지라도, 한번 인연이 되면 누구보다 친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저번에도 언니는 사운드베리에서 만난 원위의 '야행성'을 한참이고 즐겨들었더랬다. 감성적인 셋리스트를 들고 왔던 그들이, 이번에는 활기찬 곡들로 무대를 가득 채워 전혀 다른 에너지를 보여줬고, 그 반전 매력에 언니는 다시 한번 놀라고 반가워했다.
나의 운명의 아티스트는 리도어였다. 찰나의 휴식을 즐기다가 홀린 듯이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빈틈없이 공간을 채우는 사운드, 흡입력 있는 멜로디, 살포시 얹어진 가사가 하나의 세계를 건설했고, 살아 숨 쉬는 듯한 음악은 나를 온전히 몰입하게 만들었다. 사랑의 미학, 세상:소음이 특히 취향이었고, 이날 공연 이후로도 자주 찾아 듣고 있다.
공연은 무르익어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고, 언니와 나는 언제 들어도 유쾌한 한요한의 '범퍼카'를 들으며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일명 작전명 '1열 사수하기'. 기한은 헤드라이너 '김성규'의 무대 직전까지였다. 우리는 무리하지 않고, 철저하게 COOL 스테이지에 남아있다가 빈자리를 노리는 전략을 택했다. 대기 시간이 힘들었지만, 무대가 시작되면 고통도 음악에 휩쓸려 휘발되었다. 그러다 객석에 한 차례 파도가 일었다. 코스튬, 티셔츠, 슬로건 등 아티스트에 대한 마음을 담은 증표를 지닌 관객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아니, 그런 소품이 없어도 다음 무대를 기다리는 설렘 가득한 눈빛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기다렸던 이 아티스트는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으로 유명한 아마지라시다. 스크린에 한국어 가사를 함께 띄워줘서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화자는 죽으려고 생각한 이유를 계속하여 읊조리지만, 역설적으로 결국 이 노래는 앞으로 살아갈 나에게 덤덤히 위로를 건넸다.
위로받고, 즐거운 에너지를 채우고, 고개를 흔들며 마음껏 놀다 보니 드디어 마지막, 김성규의 차례가 다가왔다. 1열을 사수하겠다는 우리의 계획은 장렬히 실패했지만, 그래도 10열 이내에서 제법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헤드라이너 김성규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남달랐다. 학창 시절의 행복을 채워준 인피니트가, 지금까지도 멋지게 활동하고 있고, 그 리더이자 메인 보컬인 성규가 솔리스트로서 당당히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섰다는 사실이 벅차고 감사했다. 사실, 어떤 분야든, 한 길을 오래 걷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오프닝 무대 '41일'은 김성규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를 그대로 증명해 보였다. 이 곡은 유독 보컬의 역량이 크게 작용하는 곡이다. 몽환적인 비트 위로 김성규는 감정을 터뜨렸다가, 다시 가라앉히는 것을 반복하며 절묘한 평정 속에서 서사를 끌고 나갔다. 터질 듯 터지지 않는 애타는 감정선이 곡의 긴장감을 더했고, 공간을 가득 채운 그의 목소리는 과거의 날카로움을 간직한 채 한층 깊어지고 단단해져, 보컬리스트로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번 사운드베리 페스타 셋리스트에는 41일을 비롯해 유독 첫 솔로 앨범 수록곡들이 많았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CD를 사서 들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더욱 반가웠다.
C언니와 나는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를 꿈꾸며. 한 가지 문제는 무대가 조금씩 밀린 탓에 귀가 교통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잠재우며 <끌림>무대까지만 보고 자리를 뜨기로 했다. 한 반쯤 빠져나왔을까, 어디선가 익숙한 반주가 들려왔다. 순간, 우리는 동시에 동그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무도 익숙한 그 노래, 바로 솔로 1집 타이틀곡 ‘60초’였다. 가사처럼, 우리는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고, 고개를 올려다보니—어느새 우리는 다시 그 자리에, 무대 앞에 서 있었다. 그렇게 60초부터 Shine, Kontrol, Hush, Small talk까지. 우리는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김성규의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
종종 걸어오다 멈춰 두리번대다가 너와 마주친 시선
황급히 고개를 돌려 발 끝만 보다가 천천히 올려봐
커지는 눈 조금씩 벌어지는 입술
내 심장이 귓가를 울려
60초면 충분한 story 내 맘으로 넌 들어왔어
김성규- 60초中-
신기하게도 60초의 해당 가사는 사운드베리 페스타에서 새로운 음악과 아티스트에 빠지는 과정과도 흡사했다. 모르는 이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도, 심장을 뛰게 하는 멜로디에 발걸음을 멈추고, 무대를 바라보게 만드는 음악의 힘. 가슴이 반응하는 음악을 만났다면, 이 모든 과정은 단 1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음악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그 끌림에 기꺼이 몸을 맡겨보자.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또 하나의 멋진 하루를 선물해 줄 음악가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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