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에 온 맘이 들끓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

by 나루

방사성 원소 라듐을 발견해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초록빛 세계로 들어갔다. 매우 뜨거운 곳이었다. 관찰자인 나조차 가슴이 마구 뛸 만큼.


"마리, 당신은 과학을 왜 하십니까?" -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즐거움, 그러나 두려움과 책임


예측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에 온 맘이 들끓어

이 매혹적이고 흥미진진한 가설

내 안을 온통 타오르게 해


- 마리퀴리, 예측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은中-


세상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

수천 년 동안 이뤄진 규칙에 따라

미지의 세계


비밀과 법칙들

나를 재촉해

어서 날 찾으라고


-마리퀴리, 모든 것의 지도中-


극 속 다양한 넘버에서 마리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한다.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궁금증은 마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하게 만들었다. 반짝이는 마리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도 역시 같은 이유로 학창 시절 과학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때마다, 미지의 세상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마리도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전진했고, 새로운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리는 라듐 발견 이후에도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라듐의 의학적 가능성에 주목하고, 임상 실험을 이어가며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일에는 명암이 존재했다. 불확실성은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 우리를 앞으로 달려 나가게 하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데려와 우리를 주저앉히기도 한다. 마리가 발견한 '라듐'의 존재 또한 그러했다. 라듐은 방사능 연구를 본격화시키며 현대 핵물리학과 의학 방사선 치료의 발전을 이끌었으나, 강력한 방사선을 방출하여 치명적인 질병을 초래한다. 그러나, 당시 그 위험성을 알지 못했던 사회는 라듐이라는 신물질에 열광했고, 라듐을 이용한 제품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실제로 라듐을 야광 시계를 공장에서 일하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여성 직공 ‘라듐 걸스’를 모티프로 삼은 공장 직공들이 등장하며, 극의 긴장감은 최고조로 폭발한다.'빛을 발산한다'라는 뜻을 라틴어 'Radius'에서 유래한 라듐처럼,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행복해하던 직공들이, 그 푸르른 빛깔과 대비되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갈 때 마음이 아팠다. 무지에서 비롯된 참혹한 결과였다.


베일에 쌓인 장애물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뛰어넘어야 할지, 정면으로 부숴야 할지, 돌아가야 할지, 그 위험성을 예측할 수 없기에 쉬운 선택은 없다. 불확실한 것에는 설렘과 호기심 모두 존재하지만, 회피하고 싶은 두려움 또한 실재한다. 마리 또한, 라듐을 알아갈수록 그 위험성을 자각하며 죄책감에 빠진다.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 열망과 윤리적인 문제 사이에서 갈등하던 마리가 결국 택한 것은 '책임'이었다. 두려웠지만, 외면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과학자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마리는 묵묵히 라듐의 불확실성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나의 이름은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지금까지 마리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꿈을 이뤄가는 과정과 연구와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점을 조명했다면, 이쯤에서 잠시 마리가 여성이자 이민자로서 겪었을 애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에서는 '미스 폴란드',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고 나서는 '퀴리 부인'. 이들은 각기 출신과 성별을 앞세워 마리를 지칭하는 다양한 호칭이었다. 노벨상 시상식에서 피에르의 이름이 먼저 호명되고, 한참 후에 떨떠름한 목소리로 마리의 이름이 불리는 연출 또한 당시 취약했던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뮤지컬 마리 퀴리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마리 스클로도프스카’라는 인물에 주목한다. 노동자의 편에서 라듐의 유해성을 입증하려 애쓰는 인물이자, 마리의 벗인 안느는 뮤지컬의 서사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다.



넌 항상 나였어

너의 눈부신 꿈들이 날 빛나게 해

앞이 보이지 않아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

바로 너란 별 하나

언제나 같은 자리에

그댄 나의 별 하나

-마리퀴리, 그댄 내게 별中-


라듐으로 인해 갈등을 겪었던 두 사람은 "그댄 내게 별"이라는 넘버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라듐을 발견한 사람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자신이 아무 존재도 아닐까 두려웠다며 속마음을 터놓는 마리에게, 안느는 말한다. 마리는 언제나 라듐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별 같은 존재였다고. 어떤 역할이나 직책 이전에 ‘인간’ 마리를 응원했던 안느의 진심 어린 노래는, 마리는 물론 관객들의 마음까지 움직이며 사랑받는 넘버로 손꼽힌다.


안느의 응원에 힘입어 마리는 자기가 해야 하는 일, '라듐이, 방사선이 인류를 해치지 않는 길'을 찾아 묵묵히 걸어간다. 결국 다시 과학이었다.

문득 극 중 한 대사가 마음속에 되새겨졌다.


“그(과학) 안에선 내가 누구인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합니다. 과학!”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선언하던 마리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마리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출신지나 성별과 관계없이, 오직 진리를 탐구하며. 정답과 논리, 증명이 중심이 되는 학문. 그 세계 안에서 마리는 행복, 설렘, 두려움 같은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낯선 물질을 다루는 실험의 긴장감, 발견의 희열, 라듐이 지닌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감정들. 그런 감정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라듐의 가능성에 매료되어 함께 연구를 이어간 피에르, 시계 공장을 둘러싼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싸운 안느, 위험을 감수하고도 일자리를 선택해야 했던 직공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세계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들도 마리처럼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마음을 내주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과 두려움은 서로 닮아 있었다. 반짝이는 초록빛 미래를 좇는 여정 속엔 설렘과 아픔이 함께 존재했다. 라듐이 가져온 세상의 변화, 그 명암. 마리와 피에르, 수많은 라듐 걸스.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되는 일이고, 그렇지 않으리라는 확신조차 가질 수 없어 더욱 불안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날,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내는 것. 예측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았던 그 초록빛 세계를 이제 우리 모두 알게 되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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