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r in Music Festival 2025
비와 바람, 그리고 사랑과 음악으로 채워진 하루의 색
추운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의 마지막 온화함을 즐길 야외 페스티벌을 다녀왔다. 바로 빌보드코리아가 주최하고, 필링바이브가 주관하는 Color in Music Festival 2025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팔찌 만들기 부스였다. 알파벳, 비즈 등 다양하게 준비된 재료로 취향껏 조합하고 꿰어 나만의 팔찌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이니셜과 함께 좋아하는 색깔과 모양의 재료들을 골랐다. 페스티벌의 기억을 모조리 꿰어갈 수 있도록 팔찌의 길이는 조금 넉넉히 잡았다. 당시 무대에서 흘러나오던 Respect(- 안신애)의 선율도 함께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팔찌를 만들고 나니, 어느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 목소리는 나를 이끌어 무대로 데려다 놓았다. 알면서도 괜히 한 번 더 라인업을 보았다. 목에 걸고 다닐 수 있게 제작한 작은 리플렛 덕분에 빨리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페퍼톤스'. 올해는 꼭 라이브로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보리라 생각한 터였다. 셋리스트 중 계절의 끝에서는 가을에서 초겨울을 향해 가는 지금 딱 듣기 좋은 곡이었다. "흘러가는 시간들을 멈출 수는 없으니 다만 여기서 작은 축제를 열자"는 도입을 시작으로 그들은 30분간 웅장한 축제를 벌였다. 시간은 빨리 흘러가 꽉 찼었던 무대가 다시 비었지만, 노래의 후렴처럼 어렴풋한 즐거움은 분명히 남아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었건만,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뚝', '뚝'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사람들은 자리를 떠났다. 권진아의 무대였다. 그렇다. 야외 페스티벌의 가장 큰 변수는 날씨였다. 관객과 아티스트, 공연 관계자, 모두의 입장에 몰입하여 속상하던 차, 마법처럼 우비를 입은 관객들이 다시 하나둘 모여들었다. 운이 좋았지라는 노래와 함께 갑작스러운 비에도 최선을 다해 무대를 채워준 권진아를 응원했다. 가사 속의 화자가 자신보다도 사랑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도 놓치지 않도록 귀를 쫑긋 세웠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Color in Music Festival이라는 이름처럼, 아티스트 고유의 색과 개성이 가득한 무대가 이어졌다. 앞선 무대에서는 송소희가 힘 있는 보이스와 함께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쳐냈으며, 여러 장르를 소화하며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준 크러쉬, 탄탄한 보컬 실력을 입증한 우즈 역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분을 라인업에서 발견하고는 매우 궁금했다. 실험적인 무대와 진심 어린 메시지로 대중의 마음을 울리며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전폭적인 응원을 받고 있는 이찬혁. 그의 무대는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그야말로 유쾌함 그 자체였다. 무대를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이 보여 나까지 흥이 났고, 색소포니스트와 코러스와의 찰떡같은 호흡은 음악에 완벽히 어우러졌다. 한없는 행복을 느끼면서도 우리가 삶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문화생활 메이트 C언니는 규현의 무대를 제일 기대했다고 한다. 나 또한 그의 음악을 종종 즐겨들었기에 라이브가 궁금했다. 라이브는 음원보다도 좋았다. 규현은 한 번에 모든 감정을 다 쏟아내기보다 치밀하게 강약을 조절하여 음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노래했다. 특히 바람이란 노래가 인상 깊었다. 가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바람'은 따뜻한 멜로디에 실려 처음에는 봄바람처럼 느껴졌지만, 차가운 공기 속 훌쩍거림과 손을 녹이는 입김 소리가 어우러지자, 겨울밤 바람 속에 서 있는 소년을 떠올리게 했다. 계절마다 꺼내 듣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그 곡은 내 플레이리스트에 자연스레 새로 자리 잡았다.
공연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고, 뜨끈한 카레로 저녁을 해결하고 온 우리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들었다. 돗자리를 펴고 잔디 위에 앉아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멈춘 듯 평화롭고,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황홀히 공명했다. 무대가 끝난 후의 여운도 잠시, 다시 머리 위로 축축한 것이 느껴지더니 장대같이 퍼부었다. 이번에는 진짜 거센 소나기였다. 돗자리를 접고, 모두들 프라자로 피신했다. 공연이 재개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슬슬 생겨났다. 다행히 비가 젖어들고, 헤드라이너 잔나비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폭풍을 이겨낸 전사처럼 씩씩하게 노래하며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를 첫 곡으로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누가 내 가슴에다 불을 질렀나", "당신은 도대체가 누구 시길래'"라는 가사에 뒤이어 우리는 '잔나비'를 연호했다.
우후죽순 내린 비에 식어버린 공연장이 다시 끓어올랐다. 잔나비는 워낙 대중적인 노래도 많고, 팬층도 두텁지만, 다 같이 체온이 올라간 까닭은 그들의 무대 장악력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잔나비를 몰라도, 그들의 노래를 몰라도, 금새 좋아하고, 따라 부르게 되는 마법이 일어났다. 잔나비 콘서트에서도 등장하곤 하는 커다란 공이 머리 위를 날아다닐 때도 그랬다. 우리는 신나게 팔을 뻗어 공을 치며, 꿈나라에, 별나라에 닿기를 바랐다. 잔나비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마차는 여러 역에 정차했다. 어느 역에서는 새로운 앨범의 잭 케루악과 첫사랑은 안녕히를 들으며 함께 귀중한 시간을 보냈고, 또 다른 역에서는 초록을거머쥔우리는을 들으며 초록을 거닐었다. 이 여정의 종착역은 What’s up이었다. 지휘에 맞춰 자세를 낮췄다가, 손뼉을 치고, 뛰며, 모든 잡념을 떨쳐 버린 듯 What's going on을 목 놓아 외쳤다. 꽹과리 연주에 맞춰 머리를 흔들며, 순간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멋진 순간을 같이 보낸 후에도 끝까지 잔나비는 우리를 배웅했다. 손을 흔들며, 관객의 얼굴을 하나하나 담아갔다.
어쩌면, 완벽하지 않은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교통비를 많이 썼고, 맑은 하늘과 함께하다가도 얄궂은 비와 바람의 공격을 받았으며, 집으로 돌아갈 때는 버스가 끊겨 공항까지 걸어갔다. 색깔에 비유하지면, 마냥 밝고 화려한 색깔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과 비구름이 뒤섞인 색들마저 서로를 감싸 안으며 결국에는 무지개를 만들었다. 그 모든 순간이 모여서 웃음을 자아냈고, 예상치 못한 일들마저 행복의 조각으로 바꿔 주었다.
귀갓길에 내 귓가엔 잔나비의 작전명 청춘이 맴돌았다.
불어오는 바람 앞에 불꽃들이여
우린 모두 타오르는 젊음이기에
흔들릴 수 있어
그래 무너질 수 있어
일어나라 작전명 청춘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청춘이었다. 비바람을 헤치며 함께 음악을 즐긴 그들을 동지라 칭하고 싶다. 페퍼톤스가 21세기의 어떤 날을 부르며 전했듯, 2025년 11월 1일, 이세상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
무대 위에서, 무대 뒤에서, 공연을 만들고, 즐기고, 운영하며 우리는 하루를 서로의 색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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