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설득한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 리뷰

사람을 기획하는 일

by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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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표현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류승수 씨가 했던 말이다. 이 발언은 대중에게 자신의 삶을 노출해야 하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리스크로부터 기인했지만, 많은 대중에게 공감을 샀다. 여러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결국 그 공감의 중심에는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스트레스'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편은지 PD 역시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피로와 갈등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그는 사람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대부분의 직업과 삶이 결국 타인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과정 위에 놓여 있음을 짚어낸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살림하는 남자들], [주접이 풍년] 등을 연출한 편은지 PD가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온 과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콘텐츠 제작의 방법론을 넘어, 기획 과정 속에 축적된 저자의 관찰과 태도,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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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기획의 모든 것은 관찰로부터 시작됐다. 스스로를 사람 기획자라고 칭한 그에게 관찰은 필수적이었다. 그렇게 꾸준하고 치밀하게 사람을 바라보다 보면,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너머로 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내면 한구석에 있는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기획자는 그것을 포착하고, 자신이 본 것을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다듬어 낸다. 그렇게 다듬어낸 것은 콘텐츠 속 하나의 요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콘텐츠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기도 한다.


그럼 어떤 것을 주제로 삼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는 '보통 좋아 보이는 면'을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못나 보이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저자는 역설적으로,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불안과 결핍이야말로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포착한다. 그래서 그가 담고자 한 것은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살아내는'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저자는 주변의 인물을 다양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살림남]에서는 익숙한 연예인의 '낯선 생활', [주접이 풍년]에서는 덕질하는 부모 세대의 '진심'을 프로그램의 핵심 주제로 정했다. 이렇듯, 자신의 시선으로 본 캐릭터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 또한 저자의 프로그램 기획 비결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내가 담은 이야기를 보여줄 대상, 즉 기획물의 대화 상대를 정해야 한다. [살림하는 남자들]의 주 시청층은 중장년층이다. 따라서 자막 역시 그들의 시선에 맞춰 작성된다.


요즘 유행어 사용으로 트랜디한 느낌을 지향하기보다는, 주 타겟층이 쉽게 이해 가능한 표현을 선택한다. 영어는 한글을 병기하고, MBTI를 활용한 ‘T형 인간’, ‘F형 성향’ 같은 표현 대신 ‘이상적인’, ‘감성적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자막은 브랜딩과 타깃 설정이 반영된 하나의 예일 뿐이다. 어떤 무드와 톤으로 콘텐츠를 기억되게 할 것인지 정하고, 이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콘텐츠 제작 과정을 다루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작 과정 중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람 간의 마찰, 특히 '감정의 골'에서 비롯되는 갈등에 주목한다. 'No'라는 대답 뒤에 놓인 감정적 맥락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또한 콘텐츠 제작 이후 시청자의 반응을 마주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시청자는 냉정하다. 냉 온탕을 방불케 할 만큼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차갑다. 온갖 매체에 소개되고, 화젯거리가 될 만큼 뜨거운 반응이 올 때도 있지만, 프로그램을 '폐지하라'는 쓴소리, 어쩌면 그보다 더 속상한 무반응으로 돌아올 때도 있다. 안타깝게도 기획자는 탕의 온도를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야 한다. 피드백을 분석하고, 필요하다면 보완을 통해 다시 한번 다가가는 것이 기획자의 미덕이다.


책을 덮고 나면, 기획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기획을 결국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하는데, 나는 이 사랑이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과도 닮아 있다고 느꼈다. 즉, 확실한 마음에 대한 기약없이 내가 가진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이다. 기획자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타깃에게 맞는 세심한 언어를 고르고, 이야기에 돌아오는 반응을 달든 쓰든 삼켜낸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


아이러니하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사실, 이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기획이라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일거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삶을 기획해 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그 점을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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