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장의 시간들>, 이야기보다 오래 남는 것

영화 줄거리는 흐려져도, 극장에서 보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by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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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최대 화제작, <극장의 시간들>이 3월 개봉을 확정하였다. <극장의 시간들>은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만든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앤솔로지 영화로, 함께 웃고 울고 꿈꾸며 언제나 변치 않는 친구가 되어준 극장과 영화에게 보내는 시네마 러브레터다.



영화를 보기 앞서 3편의 단편, 앤솔로지의 의미


영화 관람에 앞서 ‘앤솔로지’라는 용어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리스어 안솔로기아(anthologia)에서 유래한 앤솔로지는 <꽃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현대에서는 다양한 창작물을 모아 하나로 엮어 놓은 작품을 시사한다.


창작물을 엮어내는 기준은 다양하다. 하나의 창작자를 중심으로 묶기도 하고, 특정한 주제나 정서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떠한가? 3편의 단편은 어떤 공통의 주제를 관통하는가?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유추해 보는 것은 관람의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첫 실마리는 역시 제목에 있다. <극장의 시간들>. 감독, 배우, 관객,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극장과 함께 축적된 시간들이 스크린 위에 겹쳐진다.



침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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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광화문, 고도(김대명/원슈타인), 모모(이수경), 제제(홍사빈)는 영화를 사랑한다는 공통의 관심사로 친구가 된다. 이 셋의 관계에서 침팬지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다. 핀란드에서 넘어온 침팬지 세 마리 중 두 마리는 죽고, 남은 한 마리가 동물원 지하에서 울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 이들은 이 주제에 깊이 빠져든다. 침팬지를 둘러싼 진실을 논의하다가, 직접 동물원에 찾아가 확인하기까지 한다.


2025년, 영화감독이 된 고도는 세 친구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며 다시금 침팬지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 침팬지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분명, 동물원 지하 공간에서 친구들과 침팬지를 보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고도는 이것이 진짜 있었던 일이었는지, 자신의 기억이 이상한 건지 혼란스러워한다.


<침팬지>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이종필 감독이 겪었던 일과 유사하다. 감독 역시, 책에서 접한 이야기를 토대로 동물원에 가서 침팬지를 찾아보고, 지하 공간에 혼자 남은 침팬지를 본 것이 그렇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책을 들여다봤을 때는 어디에도 그가 기억하고 있던 침팬지 이야기가 없었다. 감독은 침팬지 이야기가 자신의 착각이었다면, 침팬지를 찾아 다녔던 지난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고민하게 되고, 그것을 극장이라는 주제 안에 녹여 낸 것이 <침팬지>다.


이종필 감독이 찾던 지난 시간의 의미를 고도의 상황에 대입해 보고 싶다. 나는 고도가 진짜 찾아 헤매고, 의미를 두고 있던 것이 침팬지가 아닌 친구들과의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취향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들이 함께했던 시간은 스크린을 통해 보아도 반짝반짝 빛났다. 고도와 모모가 유명 영화감독의 성과 이름을 주거니 받으며, 공통의 취미를 바탕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는 장면에서는 나 또한 소울메이트를 만난 듯한 전율이 돋았다.


소중했던 인연들과 자주 나누었던 침팬지 이야기는 당연히 그들을 생각나게 하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고도는 침팬지가 잘 있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과거 친구와의 추억, 함께했던 시간의 흔적을 찾고 싶어 함과 동시에 친구들이 잘 있을 거라는 안도감을 느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나에게도 생각나는 몇 마리의 침팬지가 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 실재했는지조차 희미하지만,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사람들과의 시간만큼은 분명 따뜻하게 남아 있다. <침팬지>를 관람했다면, 그리운 인연들과의 추억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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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우거진 여름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어린이 배우들은 동네 곳곳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노는 장면을 연기 중이다. 그런데 감독(고아성)은 무언가 아쉬움을 느낀다. '자연스럽지가 않아.' 그렇게 자연스러운 연기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고군분투하는 촬영 현장이 <자연스럽게>에 담겼다. 실제로 이 영화는 자연스러움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시나리오도 대사가 아닌 줄글 형식의 간단한 설명의 형태를 띈다. 간략한 설정과 연출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는 윤가은 감독의 시도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극영화라기보다 촬영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의 에너지, 이를 조율하는 감독의 섬세한 디렉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정리하는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실제처럼 살아 있다.


그렇다면 연기에 완벽한 자연스러움은 존재할까. <연기>라는 단어의 정의는 '배우가 배역의 인물, 성격, 행동 따위를 표현해 내는 일', 즉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을 표현하는 일이기 때문에 꾸밈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만들어진 인물을 보고 자연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 그 인물인 줄 알았어요."라는 칭찬으로, 경의로움을 표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본질적으로 인위적일 수 밖에 없는 연기에서 자연스러움을 느낄까?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한 배우와 제작진의 노력이 빛을 발해서이지 않을까? 배우와 제작진이 인물을 이해하고, 관객의 시선에서 장면을 고민하며, 스크린 너머에 닿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결과다. 그 마음이 전달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이 영화는 그런 값진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기 위한 촬영 방식을 설정했으며, 영화 안에서 즉흥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갔던 배우들, 정확한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변수를 예측해 미리 대비하는 제작진의 노고가 있었다.


<자연스럽게>는 영화 속 영화 현장을 담아낸 연출과 함께, 가장 부자연스럽지만 자연스러운 연기 현장을 솔직하게 담아낸다. 영화 말미에는 배우들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는 장면으로 끝나면서, 이 모든 것이 연출된 장면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촬영의 시간만큼은 유난히 진짜처럼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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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 사는 영화(양말복)가 오랜만에 광화문을 찾는다. 학창 시절 추억을 되새기고자, 모교인 '이화여자고등학교'에 방문한다. 이후, 우연히 들어간 극장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 우연(장혜진)과 재회한다. 영화는 우연에게 공짜 표를 선물 받아 오랜만에 영화를 보게 된다.


여정이 고돼서였을까, 영화가 재미가 없어서였을까, 영화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꿈에서 어린 영화는 빗속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하고, 그가 처마 밑으로 들어가자, 환호가 터진다. 그 장소는 영화관이다. 왜 비를 피한 장소가 영화관이었을까? 영화에게 극장이 단순한 상영 공간이 아니라, 비를 피할 수 있는 곳,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 것은 아닐까. 현실에서 어딘가 그늘을 안고 있던 그는 극장 안에서 평온하게 잠든다.


영화 속 영화 상영 후 이어지는 GV에서, 감독은 자고 있는 관객들을 보며 자문자답한다.


잠이 오게 하는 영화는 안 좋은 영화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인상 깊은 말이었다. 표면적으로, 감독의 의견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사실 영화라는 게 개개인에 따라 감상이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감독의 말은 관객의 다양한 감상과 관람의 형태를 인정하고, 각자가 보내는 극장에서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에 집중하든, 노곤함에 꾸벅꾸벅 졸든, 각자의 방식대로 감상이 이루어지고, 극장은 그 모든 시간을 품는 공간이다.



<영화의 시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영사기사, 청소 노동자, 극장 매니저, 관객, 감독 등, 모두 극장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좋은 작품과 관객을 연결해 주는 극장 안에서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책임을 다한다. 영화가 주는 이야기도 좋지만, 극장이라는 장소가 주는 온정과 편안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극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극장의 시간들, 극장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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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화 제목이 <극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극장의 시간들>일까? 나는 이 영화가 ‘이야기’ 외에도, 이야기를 지탱해 온 시간과 그 안에 축적된 추억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 씨네큐브 공간을 통해 구체화된다. 상영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영화 속 장면처럼 로비 의자에 기대앉아 사진을 찍으며, 막 끝난 영화의 시간을 조금 더 붙잡아 두려 한다. 극장은 단순 이야기가 소비되는 곳이 아니라, 시간이 머무는 장소임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어쩌면 우리가 본 것은 어둠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없었던 이야기라고 단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침팬지>, -고도-



<극장의 시간들>의 주제는 <침팬지>에서 고도의 대사와도 맞닿아 있다. 언젠간 극장에서 봤던 영화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나 극장에 누구와 함께였는지, 어떤 마음으로 표를 샀는지, 상영이 끝난 뒤 어떤 표정으로 극장을 나섰는지 등 당시 느꼈던 감정들은 우리 마음 속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극장은 수많은 이야기가 스쳐 가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함께해 온 시간이 켜켜이 쌓이는 장소다. 스크린 위의 서사는 끝이 나도, 극장에서 보낸 시간은 각자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


극장과 함께했던 시간, 그 시간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왜 우리가 극장을 방문하고, 영화를 만들고, 감상하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앞으로 극장의 시간은 어떻게 채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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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 관객 수기 급감했다. 이후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2025년 극장 관람객 수는 2019년 대비 약 47% 줄었다. 영화 티켓 가격 상승 및 OTT, IPTV 서비스 확산 등의 영향으로 영화 관람 환경의 경쟁 구도가 현저히 달라진 상황이다.


극장은 이에 대응해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영화 상영을 넘어 K팝 콘서트·스포츠·e스포츠 중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도입하고, 리클라이너 좌석에서 두 시간 동안 낮잠을 즐기는 ‘낮잠 상영관’을 운영하는 등 공간의 활용 방식을 확장하고 있다. 극장을 단순한 상영 공간이 아닌 복합 체험 공간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흥행작이 나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극장의 본질이자 존재 이유인 영화 관람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은 남아있다. 침체된 극장가 분위기에서도 '파묘'와 '범죄도시 4'가 천만 영화가 되었고, 최근 '만약에 우리는'과 '왕과 사는 남자' 또한 흥행 반열에 올랐다.


이러한 사례는 여러 환경적 이유에도 불구하고,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공감하면 사람들은 여전히 극장을 찾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시사회에서 만난 관객들 또한 그렇다. 씨네큐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극장과 함께 보낸 시간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모였다. 영화는 극장과 함께한 그리움을 담았지만, 그리움은 동시에 애정을 뜻하기도 한다.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에도 그 시간을 이어가고 싶다는 뜻이다.


<극장의 시간들>은 지나온 극장의 시간과 함께 극장과 영화의 미래에 대해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제시한다. 한 번이라도 극장에서 울고 웃고, 때로는 졸며 시간을 흘려보낸 적이 있다면, 그 시간을 다시 극장으로 데려가 보기를 바란다. 우리의 시간이 머무는 한, 극장의 시간도 계속될 것이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9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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