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그러나 공적인.

나의 객관화, 그리고 당신은?

by 나린




사적인 이예은과 공적인 이예은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 이예은과, 어떤 수식어를 가지고있는 이예은의 괴리가 꽤나 크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우리는 여러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역시 시시각각 여러개의 얼굴을 한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해야만 조율을 잘할 수 있는지, 어느 하나를 잃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만 모든 모습을 스스로가 사랑 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인간 이예은은 예술가에 가깝다. 이것에는 좋은 의미와 안좋은 의미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영감과 창작을 쫒아 사는 생생함으로 가득한 인간임과 동시에 부정의 끝에 서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무언가 하나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표현되지 않는 내면에 무수히 많은 존재들로 인해 쉽게 망가지고 무너진다. 틀에 박힌 것보다는 변화하는것, 유동적이고 자유롭고 때로는 불안한것을 선호한다. 우울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탄생되는 것들로 부터 희열을 느끼는 약간의 마조히즘적인 경향도 있다. “자기 자신의 고통,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에 풍부한, 넘칠 정도의 즐거움이 있다.” 라고 말하는 니체의 말마따라, 정신적 고통으로부터오는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무책임하게 삶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필터가 없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민낯을 드러낸다. 고립을 즐기며 내향적인 모습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약해지고 망하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연약한 속에서 탄생하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누군가 물었다.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 자신이 잡아먹힐것 같을땐 어떻하냐고. 그럴때면 나는 나의 우울을 지나치게 객관화 시키곤한다. 나를 위협하는 대상은 무엇이며, 그것들을 대상으로 어떻게하면 가장 최상의 것들을 나에게 흡수 시킬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온 몸을 던져야하는 일들이 생기기도한다. 처절하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깊은 바닥으로 내려가 처절하게 무너질때 비로소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역설적이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러한 것들을 건강한 우울함이라고 부르며, 창작의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사적인 나는 불완전함 속에서 끊임없이 나의 것을 찾아내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이다.

반대로 공적인 이예은은 비교적 이성적이다. 해야하는 일과 정해진 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똘똘뭉친 사람이다. 지향하는 목표지점에 닿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짙은 인간이다. 순간적으로 몰아치는 감정을 처참히 짓밟기도한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기 위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정의 끝에 서 있는 사적인 이예은과 다르게 삶의 충만함과 감사함을 찾아내려하는 노력을 꽤나 많이 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내뱉는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정제하며 사람들에게 ‘선’이라고 하는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하는 긍정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때로는 따뜻함을 지닌 그런 모습을 할때도 많다. 개인의 일보다는 타인을 위한 사명감에 움직인다고나 할까. 물론 이러한 사명감 역시 스스로가 부여한것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차분함과 친절함 그런 것들에서 나오는 여유를 좋아한다. 가식적이고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다기 보다는 내면의 충만함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물론 실제 느끼는것보다 더 크게 표현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과하지 않기위해 한번씩 멈춰 생각해본다. 개인적인 영역에 포용을 한방울 떨어트린다. 선택적 관계속에서 외향적인, 활발하고 천진한 모습을 하기도 한다.

사적인 이예은과 공적인 이예은의 공통점은 하나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보다 더 깊은 밑 바탕엔 이상적인 삶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두가지 형태로 들어나는 ‘나’를 현실화 시키기위한 다양한 방법의 차이라고나 할까. 사적인 나와 공적인 나 사이의 적당한 조율 속에 삶을 지탱해간다. 그러다 가끔 어느 하나의 자아가 지나치게 지배적일때는 꼭 고된날들을 보내기도 한다. 끝없이 무너진다.
균열. 하나의 모습을 부정하고 싶어질때 그렇다.

분열과 통합 사이의 나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기위한 연습을 한다. 각자 가지고 있는 다른 결을 어떻게 삶에 적절히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두 손이 모여 깍지가 껴지듯 어둠에 빛이 내려 색깔이 생기듯이. 합을 통한 조화를 그린다.

삶의 낭만과 예술이 깃들기를 바란다.
그것이, 삶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