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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May 26. 2021

글은 느리다

프롤로그

주변에서 언제부터 글을 썼어요?라고 묻는다면, 어릴 때부터 글을 썼다고 답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글쓰기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완벽히 타의에 의한 시작이었다.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엄마였다. 국어국문과 출신의 문학소녀였던 엄마는 오랫동안 국어 선생님이 꿈이었고, 책을 좋아했다. 당연히 우리 집엔 늘 책이 많았고 어릴 때부터 독서의 중요성을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자연스레 독서와 관련된 교육도 일찍이 받아왔다. 하지만 어릴 때면 누구나 그렇듯 학원이라는 공간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곳이 독서 학원이라면 더더욱 친해질 수 없었다. 나 역시 '너 지금 책 안 읽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라는 어른들이 흔한 잔소리 따위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놀기 좋아하는 소녀였을뿐  방학 때 써야 하는 일기와 책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 세상에서 가장 귀 찮은일 중 하나였다. 그래도 그 당시 유일하게 재미있어하던 글쓰기가 있었다. 바로 소설 쓰기다. 그 시절 9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다 알법한 유명한 인터넷 소설 작가의 책을 닥치는대로 다 읽었더랬다. 꽃미남 얼굴을 가진 남주와 별 볼일 없는 여주의 신파 가득한 신데렐라 스토리는 많은 여학생들의 로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한 번은 엄마에게 오늘은 하루 종일 소설을 읽을 테니 건드리지 말라는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밥도 안 먹고 몇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있다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끝을 보고 나서야 대성통곡을 하며 거실로 나왔다. 엄마는 나의 탱탱부은 눈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때 소설을 읽으며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던 생각은 나도 로맨스 소설의 여주인공처럼 낭만적인 사랑을 하고 싶다는것과 글을 통해 이렇게 큰 감동을 받을 수도 있구나 라는 깨달음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감동이라 하기엔 얕은 감정일 수있겠지만 어린 나에겐 아주 커다란 계기였다.) 그런 깨달음과 함께 불행 중 다행히도 매일 같이 독후감을 쓰던 습관 덕분인지 어렵지 않게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터넷 소설을 친구 삼아 읽던 소녀는 곧바로 공책을 펼쳐 내가 주인공인 소설을 열심히 써 내려갔다. 왠지 나도 저런 소설쯤은 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났다고나 할까. 물론 언제나 그렇듯 초심은 온대간대 없어지고 열린 결말로 끝맺음 없이 막을 내렸지만 말이다. 아주 잠시 마나 소설 작가는 꿈꿨던 소녀는 학교에서, 학원에서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고 혼자서 키득거리며 나의 로망을 가득 담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중요한 것은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소설을 쓰면서 느낀 재미는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매력은 내 마음과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거였다. 시간이 지난 후에 공책에 빼곡히 적어놓은 그 시절의 글들을 보고 있으면 손발이 오글거려 다시는 펴보지 못할 것 같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다시 표현해 낼 수 없는 그 시절 나의 순수함이 오롯이 담긴 글이었다. 이렇게 나의 글쓰기 역사에는 타의와 자의가 적절히 섞여있었고 그 안에는 글쓰기에 매력을 느끼는 순간들도 더러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은 알게 모르게 나의 삶의 녹아들어 시간이 지난 후에 '글쓰기'에 손을 뻗는데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이렇듯 글쓰기는 오랜 시간 나와 함께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글쓰기라고 하는 것은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나 같은 경우 타의에 의해서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글을 쓰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익숙해지는 순간이 왔고, 그다음에야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 왔으며, 조금 더 시간이 지나 후에 글쓰기를 가장 친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글을 완벽히 나의 친구라고 느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글은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내가 바라봐 주지 않을때도, 잠시 떠나거나, 외면할 때도 한결같이 자리를 지켰다. 해가 질대까지 밖에서 놀다 들어가도 변치 않고 늘 그자리에 있는 반가운 집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가 올때면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오롯이 글에 담아냈고다. 행복하고 기쁜 순간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글은 느린 존재다. 변화가 더디지만 깊고 묵직하다. 빨리빨리가 익숙해진 사회에서 사람들이 글과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글쓰기를 자전거에 비유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정확한 비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비유가 사뭇 마음에 와닿았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달리 직접 넘어지며 스스로 페달을 굴리는 연습을 해야 하고 그 후에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특별한 기술 없이 그저 묵묵히 페달을 밟아 앞으로 향하는 것. 조금 느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스스로 해내는 것. 꾸준함 속에서 결국 빛을 보는 것. 나는 이것이 글쓰기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듣고 본인이 글쓰기를 시작하기에 늦은 건 아닐까 실망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퍼 할 필요는 없다. 글은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는 기다려 주는 존재다.  글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겹겹이 쌓인 역사를 품고 있기도 하고,  과거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며, 순간의 생생함을 담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이상을 그리기도 한다. 글의 가장 큰 힘은 순간을 모아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의 삶이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길 바란다. 어릴 적 순수함을 찾아내고, 가슴 뜨거움을 발견하고, 현재의 감사함을 느끼길 바란다. 느리지만 깊게, 그 속에서 나를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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