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교토
그렇게 여행을 다니면서도 그 흔한 오사카와 교토는 처음이었다. 바쁜 와중에 잡힌 일정이라 준비할 시간도 없이 도착한 일본. 첫날 일정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급행열차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운행이 중단되면서 신 오사카 역에 낙동이랑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아무래도 여행 중 기차와의 인연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짜증이 날법한 상황인데도 그러려니 했다. 북적이는 기차역만큼 재미있는 곳도 없다. 사람 구경, 세상 구경,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 나는 여행 중 자주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한다. 맥주와 샌드위치 하나를 사 들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매 여행지에서 꼭 빼놓지 않고 하는 루틴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것은 순간을 영원 속에 붙잡아 두는 나만의 방식이기도 했다.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로 한 시간을 헤맨 끝에 겨우 교토행 표를 끊고, 두어 번의 환승을 하고 나서야 출발 호텔에 도착했다. 한국을 떠나온 지 8시간 만이었다.
숱한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바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여유가 생겼다는 것. 아무리 완벽하게 계획을 해도 언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을 벌어진다. 마치 오늘처럼. 그럴 땐 그냥 앉아서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괜찮아지길 기다린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신기하게도 새로운 방법이 생겨난다. 두 번째로는 모든 상황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복잡한 기차에서 꿀 같은 20분의 쪽잠. 지나가던 어린아이의 환한 인사. 늦은 시간 도착해서 미리 준비된 이불 깔린 다다미방. 한적한 호텔 라운지에서 마시는 샹그리아 한 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의 의미를 발견한다. 이곳은 아직 벚꽃이 채 지지 않았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하나둘 떨어진다. 교토 특유의 고즈넉함이 내 안의 고요를 불러온다. 어느새 나는 평화를 찾아내는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오사카에서 교토로 선생님께서 편지 한 통을 보내오셨다.
"하고 싶은 갈망이 많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간 속을 걷고 있는 그대. 욕망과 욕구가 회오리 칠 때면, 오늘 아침의 호수를 바라보듯 내면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거라. 덜 익은 청춘이 아름답게 여물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남을 대할 때 자신을 대하듯 어여쁘게 대할 수 있기를.'
벚꽃이 그려진 편지지 위로 꽃잎 같은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