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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Nov 08. 2018

만원滿員 버스

‘나’보다는 ‘우리’


‘덜컹.덜컹’ 오늘도 만원 버스의 손잡이는 우리들의 유일한 안식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람들 속에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면서도, 이 손잡이 마저 없었다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겠지. 하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문득, 사무치게 느껴지는 공허함에 잡아먹힐뻔 했지만, 사실 이런 감정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속임수라는것을 잘 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만 잘 살면 된다고 믿고 있었고, 이 명제가 증명되기 위해서는 ‘혼자’의 삶을 택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삶이라고 하는건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거였다. 오늘마저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 섞여 삶을 살아내는 한 명의 인간 일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것은 나누면 나눌수록 기쁨은 배가 된다는 이런 입에 발린 식상한 말들은 직접 느끼기 전에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이런 말에 틀린건 없었다는걸 알지만,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대한 받아들임의 차이와 기준의 차이로부터 오는 거부감이 우리를 ’홀로’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기쁨의 척도는 ‘자신’이 아닌 ‘세상’이 되었고, 그것에 맞춰가느라 더 높고, 거창한것들만 선택하면서 살게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을 선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파했으며 점점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고, 나누는것 자체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소소한 삶을 나누는것만으로도 행복이 될 수 있다는건, 대단한 것에서부터 얻어지는것은 아니였다. 마음을 다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가치있어 질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은 매우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긴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굳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모든 삶이 무거움과 가벼움, 익숙함과 생소함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해야하는 것이라면 때로는 이런 모습, 저런 모습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만원 버스의 손잡이는 바쁘다. 손잡이조차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오히려 정신 없이 달리는 만원버스 안에서 ‘덜컹.덜컹’ 하고 흔들리는 순간이 그에게는 기쁨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잡아주는 ‘누군가’가 없다면 손잡이의 존재도 무의미해질테니까.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살아내었다.

‘내’가 아닌 ‘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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