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어느 날 밤의 운전

by 나린

늦은 밤이었다.


와이퍼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좌우. 좌우. 최고 속도로 올려 두었는데도 앞 유리는 닦이기도 전에 다시 흐려졌다. 빗소리는 차 지붕을 두드리는 수준을 넘어 쏟아붓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하늘에서 양동이째 퍼붓는 것처럼, 끊임없이.


헤드라이트를 켰다. 쨍한 빛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그런데 그 빛은 도로를 채 비추기도 전에 고인 빗물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사방으로 튀는 빛들 사이에서 아스팔트는 그냥 검고 젖은 면이 되어 버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선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을 리는 없었다. 분명 거기 그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없었다. 빗물에 잠겨서, 반사되어서.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이 스티어링 휠을 파고들었다. 숨을 짧게 쉬었다. 게다가 그 길은 처음 가는 길이었다. 이 도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다음 출구가 언제 나오는지도 몰랐다. 오로지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갈 뿐이었다. 하지만 비가 세게 내리자 그것마저도 자꾸 눈에서 놓쳤다.


온몸이 경직된 채 생각했다.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보이지 않아도 그 선을 따라가야 했다.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규칙이었다. 눈에 없는 것을 몸으로 지키는 일. 그것은 도로 위에도 있고, 인생에도 있었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따라야 하는 것들 중에 눈에 보이는 건 거의 없다. 내가 지금 괜찮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중요한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나다운 속도로 살고 있는지. 이런 것들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처럼 "삼백 미터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하고 친절하게 말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다가, 밥을 먹다가, 아무 이유 없이 창밖을 보다가 몸이 먼저 안다.


어깨가 조금 굳어 있을 때. 잠이 조금 얕아졌을 때. 웃음이 조금 늦어질 때.

'아, 내가 어딘가에서 방향을 잃고 있구나.'


그리고 그 순간에도 한 가지는 변하지 않는다. 아무도 대신 운전해 줄 수 없다는 것.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어도 마찬가지다. 조수석에서 같이 앞을 바라보고, 같이 숨을 죽이고 있어도 방향을 결정하는 건 언제나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다. 그게 참 냉정한데, 동시에 묘하게 공평했다. 누구든 다 그렇게 자기 길을 가니까.


그때 내비게이션이 말했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출구를 놓쳐버린 것이다. 눈앞에 집중하느라 정작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놓쳐버린 것이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한참을 더 직진했다.


어쩌면 차선을 지킨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을 잃지 않는 일이고, 내비게이션을 본다는 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기억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잠시 두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냥 빗소리를 들었다. 차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와이퍼가 유리를 쓸고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중얼거렸다. "나 지금 어디 가고 있는 거지..."


뒤에서 차가 온다. 비는 계속 내린다. 세상은 내가 멍하든 말든 굴러간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멈추는 것도, 급하게 방향을 트는 것도 아니었다. 속도를 조금 낮추고,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찾아 나아가는 것.


그날 밤, 짜증 한 번 내고는 그냥 웃었다. 삼십 분이 더 걸리는 길 위에서, 비를 맞으며. 늦어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길을 잘못 들었다'는 말을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 본다. 이전에는 실패 같았다. 모든 게 내 탓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시선을 바꿔본다. 아직 움직이고 있다는 뜻.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뜻. 그리고 무엇보다 길은 생각보다 계속 이어져 있다는 것.


때때로 인생에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날의 비를 떠올린다. 아무리 무서워도 운전은 계속됐다. 집에 가야 하니까. 사실, 멈추는 게 더 위험하니까.


요즘 나는, 인생이 안 풀린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비오던 그날 밤의 운전을 떠올린다. 지금 차선이 안 보인다고 해서 길이 사라진 건 아니라고. 내 눈에 없을 뿐, 분명히 거기 이어져 있다고.


그렇다면 오늘 내가 할 일은 딱 하나다.

포기하지 않는 것.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다이빙을 했다.

밤을 통과하고 들어온 사람만이 아는 온기였다.

잠깐 그 자리에 누워 따뜻함을 누렸다.


그날은, 그걸로 충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오늘의 등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