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한 걸음 나의 속도로
금요일 오전, 운동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스쳤다. 산에 가야겠다고. 그게 전부였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어둠이 덜 걷힌 시간에 일어나 물 한 병만 들고 청계산으로 향했다. 봄이 오려는지, 공기가 폭닥하면서도 어딘가 맑았다.
나는 일 년에 두세 번쯤 산을 탄다. 계절로 치면 봄, 가을, 그리고 겨울이다. 그중에서도 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설산을 좋아한다. 하얗게 덮여 있으면서도 군데군데 흙이 드러난 길. 겨울과 봄이 서로 밀고 당기는 그 애매한 틈. 계절이 완전히 바뀌기 직전의 숨결 같은 풍경이 좋다.
예전에 이런 말한 적이 있다. 산을 타는 일은 명상과 닮아 있다고. 오르막을 오를 때는 생각이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내가 딛는 발에 집중하게 된다. 눈앞의 정상만 바라보면 금방 숨이 찬다. ’언제 도착하지?’라는 생각이 몸보다 먼저 지친다. 대신 나는 발을 본다. 땅에 닿는 발바닥. 종아리를 타고 올라오는 묵직한 힘. 서서히 차오르는 숨. 한 걸음. 한 걸음. 멈추지 않는 한 걸음. 그러다 잠시 멈춰 호흡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 본다.
이른 시간인데도 이미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나같이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사뭇 가볍고 경쾌한, 무언가를 다 내려놓은 듯한 얼굴들. 그런데 묘하게도, 그 표정은 올라가는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내려오는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반짝임이었다.
우리는 종종 산을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인생의 숱한 오르내림이 산등성이와 닮아 있듯이.
생각해보면 산에서는 내려오는 길이 가장 경쾌하다. 몸은 가벼워지고, 발걸음은 빨라진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인생에서 ‘내려가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할까. 누군가는 그것을 추락이라 하고, 누군가는 퇴보라 말한다. 하지만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사람의 얼굴에는, 올라가는 내내 없던 여유가 있다. 성취를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것.
정상은 머무는 곳이 아니다. 그저 잠시 숨을 고르고, 풍경을 눈에 담고, 다시 발을 돌리는 자리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산을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등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페이스다. 앞서가는 사람을 억지로 따라잡을 필요도, 반대로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조급해져 빠르게 걸을 필요도 없다. 따라잡아봤자 또 앞서가는 사람이 있고, 숨만 거칠어질 뿐이다. 무엇보다 그렇게해서는 정상까지 갈 수 없다. 자신의 속도를 잃는 순간, 산은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조금은 천천히 걷는다. 발이 미끄러지지 않는지, 호흡이 너무 거칠어지지는 않았는지. 그러다 잠시 힘을 내서 속도를 높혀보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속도를 반복하며 오르는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고요해진다.
사실 이번에 산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운동을 하다가, 불현듯 아주 갑자기 삶에서 작은 성취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가슴을 세게 두드렸다.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오늘 하나 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 감각. 나를 다시 세우는 작은 힘. 그래서 산이 떠올랐다.
한참을 묵묵히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물 한 모금을 벌컥벌컥 마셨다. 온 몸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이란. 그 순간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가장 달콤했다.
아직은 찬 바람에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느껴졌다. 내심 뿌듯했다. 왜인지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아, 해냈구나’하는 감각. 하지만 언제고 거기서 머물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야 한다. 현실로, 일상으로, 각자의 속도로.
그러고보니 오랜만의 혼자 산행이었다. 홀로여서 그런지, 조금 더 차분해지는 등산이었다.
올 해는 등산을 조금 더 자주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나는 잠시 그 품에 머물다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면 될테니.
그간 몸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집에 오자마자 엄청난 피곤함이 몰려왔다. 근육통은 덤으로...
어쩌면 인생은, 오르는 법보다 내려오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의미에서의 ‘현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