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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Sep 08. 2019

그녀들의 밤

청춘의 여백

그녀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었다. 반가웠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 말하던 그녀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향했다. 이내 곧 눈물 자국 가득한 얼굴로 돌아온 후 미안하다고 했다. 정말 미안해야 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괜찮아. 지금까지 남들에게 미안했던 시간만큼 너에게 미안해."

달달한 막걸리  잔에 쓰디쓴 눈물  방울, 묻어뒀던 시간  스푼, 힘들었던 감정  스푼. 그리고 쌓여가는 휴지 조각들. 미안함 , 반가움 , 안쓰러움 . 이렇게 모이고 모인 불안의 요소로 가득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경청이 몸에 베어있었다고나 할까. 그리고는 나즈막히 몇마디를 건네고서는 너에게 하는 이야기가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였다는 말을 했다. 지금 나도  앞에 앉아있는 너를 통해,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였다.

울어도 된다고 아파도 된다고 감추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살면서  한순간쯤은 스스로에게 그런 날을 허락해도 괜찮지 않을까.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웃고 적당히 만나는 그런 일상이 때론 스스로를 파괴시키고 있던  지도 몰라. 어쨌든 적당히라는 단어 속에 감추고 눌러왔던 순간들이  존재했을 테니까.”

괜스레 나도 한번쯤은 이성적이고 언니 같은 모습이고 싶다며 되지도 않는 위로를  보따리 쏟아냈다. 감정을 증폭시키는 위로 속에 적당히 농도를 맞춰주는 장난과 농담도 함께였다. 우리만의 방식이었다.

어둠이 내려앉고 달이 지고 아침이 오늘 새벽 어스름,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며 거리를 누볐다. 한적하고    거리의  모퉁이를 의자 삼아 앉았다. 힘이 풀린 다리, 흔들리는 별빛, 서글프지만 행복한, 미처 풀어내지 못한 것들을 쏟아내기에 충분히 넓고 깊은 밤이었다.

누가 미쳤다고 해도 괜찮다.
오늘은 ‘우리 밤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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