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 소란스러운 경건함

by 나린


“뭐해? 나 술 좀 사줘.”

무작정 그녀에게 달려갔다. 오늘은 소주 한 병이면 다 될 것 같았다. 우울할 때 마시는 술은 쥐약이라고 했는데 버틸 수 없는 날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다짐과 함께 또다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본다.

역시나 그녀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알겠다고 했다. 괜히 감동스러워서 낯간지러운 말들이 떠올랐지만 애써 삼켰다. 나중에 해야지 하고. 어색하고 간지러운 이 감정도 고스란히 느끼고 싶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묻어나는 빈티지한 술집에서 우린 그렇게 시답지 않은 대화들과 가슴이 터질 듯이 복잡한 고민들과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반복해가며 그렇게 울고 웃었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었다.

“떨어져 있을 때의 추위와 붙으면 가시에 찔리는 아픔 사이를 반복하다가, 결국 우리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쇼펜하우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뒤늦게 남아있는 것들에 대해 깊은 되새김질을 했다. 나와 우리 그리고 그 경계선에 있는 미래. 이제는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 유지는 충분했다. 타인보다는 나와의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차갑고, 칼 같고, 견고한 것보다 조금은 무르고 어설퍼도 따뜻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살다 보면, 우린 스스로가 하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게 된다. 그저 살아지니 살고, 일들이 벌어지니 겪는 것이다. 하고 싶었던 것들이 의무가 되기도 하고, 당위성 같은 건 버려진 지 오래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다그친다. ‘저곳에 가야 해, 손에 넣어야 해, 아직 부족해.”하며.

한껏 쏟아낸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나는 네가 이제야 진짜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말을 끝으로, 달고 쓴 소주 한 잔에 나의 가면도 함께 삼켰다.


“저기요. 에어컨 좀 다시 켜주세요.”

열병 같던 여름을 보내려니 내심 아쉬움이 밀려오는 듯했다.



- 제목 발췌 “나를 위로하는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