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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Aug 28. 2019

일상, 그 소란스러운 경건함


“뭐해? 나 술 좀 사줘.”

무작정 그녀에게 달려갔다. 오늘은 소주 한 병이면 다 될 것 같았다. 우울할 때 마시는 술은 쥐약이라고 했는데 버틸 수 없는 날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다짐과 함께 또다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본다.

역시나 그녀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알겠다고 했다. 괜히 감동스러워서 낯간지러운 말들이 떠올랐지만 애써 삼켰다. 나중에 해야지 하고. 어색하고 간지러운 이 감정도 고스란히 느끼고 싶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묻어나는 빈티지한 술집에서 우린 그렇게 시답지 않은 대화들과 가슴이 터질 듯이 복잡한 고민들과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반복해가며 그렇게 울고 웃었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었다.

“떨어져 있을 때의 추위와 붙으면 가시에 찔리는 아픔 사이를 반복하다가, 결국 우리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쇼펜하우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뒤늦게 남아있는 것들에 대해 깊은 되새김질을 했다. 나와 우리 그리고  경계선에 있는 미래. 이제는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 유지는 충분했다. 타인보다는 나와의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차갑고,  같고, 견고한 것보다 조금은 무르고 어설퍼도 따뜻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살다 보면, 우린 스스로가 하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  의미 부여를 하지 않게 된다. 그저 살아지니 살고, 일들이 벌어지니 겪는 것이다. 하고 싶었던 것들이 의무가 되기도 하고, 당위성 같은  버려진  오래다.  속에서 끊임없이 다그친다. ‘저곳에 가야 , 손에 넣어야 , 아직 부족해.”하며.

한껏 쏟아낸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나는 네가 이제야 진짜 솔직해질  있을  같은데.”

그녀의 말을 끝으로, 달고  소주  잔에 나의 가면도 함께 삼켰다.


“저기요. 에어컨 좀 다시 켜주세요.”

열병 같던 여름을 보내려니 내심 아쉬움이 밀려오는 듯했다.



- 제목 발췌 “나를 위로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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