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동생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
쌍둥이로 산다는 건 내 개인적으론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가뜩이나 남과 비교당하며 사는 게 일상인 한국 사회에서 비교할 수 있는 또래가 실시간으로 같이 자란다는 건 매 순간 부모님, 친구, 친척, 이웃 등 비교를 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어려서부터 쌍둥이 내 남동생은 머리가 좋았다. 같이 자란 나도 인정할 만큼 머리가 좋아서 한번 읽은 건 잊어버리지 않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해서 아는 것도 많았다. 배우는 모든 게 빨랐고 성격도 활달했다.
반면에 나는 평범했다. 엄마는 내가 뭐든지 좀 느렸다고 했지만, 남동생과 비교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려 보인 거지 난 굉장히 평범한 수준의 아이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떼고 이 학년 때 구구단을 떼고 받아쓰기를 보면 거의 70~80점을 맞는 딱 보통 수준의 평범한 아이였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과학책을 읽고 구구단을 한 달 만에 외우고 받아쓰기를 항상 90-100점을 맞는 동생과 비교해선 좀 느린 아이로 여겨졌다.
그래서 엄마는 과제를 줄 때 나에겐 ‘한 시간만 공부하고 나가 놀아’라고 했고, 동생에겐 ‘5페이지만 풀고 나가 놀아’라고 했다. 그러면 동생은 30분도 안 돼서 다 풀고 나가 놀았고 나는 한 시간 내내 끙끙대고 풀어도 2장을 겨우 풀었던 것 같다. 그게 나는 싫지 않았다. 사실 그런 걸로는 비교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나고 내 동생은 내 동생이니깐, 그리고 내 동생은 실제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생이 시험 점수를 잘 받아도 칭찬을 많이 받아도 기분이 나쁘거나 섭섭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비교당해서 싫었을 때는 어린이날이다. 아빠는 크리스마스는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챙겨주지 않았지만, 어린이날만큼은 내가 고등학교 올라가기 전까지 꼬박꼬박 선물을 사주셨는데 초등학교 4학년 내가 내 선물을 직접 고르기 전까지 내 선물은 항상 인형으로 고정되었다. 처음 큰 토끼 인형을 받았을 때, 그리고 아기인형 주주를 받았을 때까진 좋았던 거 같은데 사실 난 인형보단 레고나 블록을 또 자동차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동생이 받은 장난감이 더 탐이 날 때가 많았는데 고리타분한 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때라 여자는 인형을 가지고 놀고 남자는 자동차나 블록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내 장난감은 어느 순간 구석에 버려지고 나는 놀이터나 뒷산에서 남자 친구들과 남동생까지 뛰어논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중학교 때 교복을 입기 전까진 치마 입는 걸 아주 싫어했다. 어린 마음에 동생은 안 입는 치마를 나만 입는 게 싫었고 치마를 입고 나가면 이쁜척하는 공주가 된 기분이라 다른 사람들 앞에 서기가 싫었다. 엄마는 그래도 딸이라고 이쁜 옷만 입히고 싶어 분홍색, 노란색 옷을 자주 사주었지만 그나마 노란색 옷은 자주 입었지만, 분홍색 옷은 입지 않았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치마를 좋아하고 옷장에 분홍색 옷이 한가득하지만 어렸을 땐 왜 그리 고집을 부렸는지 나조차도 어린 나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동생과 비교당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는 남동생과 엮이는 걸 아주 싫어했다. 지금은 극 E로 모임도 좋아하고 활발하지만 어렸을 땐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학교에서도 조용히 그림만 그리는 학생이었는데 동생은 반대로 성격도 활발하고 질문도 많아서 학교에서 좀 유별난 아이였다. 수업 시간마다 이상한 질문을 해서 수업이 끝나지 못하게 하고 선생님이 말문이 막혀서 당황한 모습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변인은 모두 ‘애가 머리가 좋아서, 아는 게 많아서’라도 했지만, 나는 그런 동생의 모습을 한 공간에서 보는 게 부끄러웠다. 한 번은 동생과 내가 같은 미술 대회에 나가서 나는 동상으로 트로피를 받고 동생은 은상으로 메달을 받았는데 동생이 왜 자기는 트로피를 주지 않냐고 떼를 써서 종례를 마치고 가야 하는데 종례가 끝나지 않고 있었다. 동생은 자기도 트로피를 줄 때까지 안 움직일 거라고 하도 떼를 써 내가 크레파스로 상장에 내 이름을 지우고 동생 이름을 크게 써서 트로피와 함께 줬다. 아직도 그 트로피는 우리 집에 있다. 그때 결심했던 것 같다. ‘이놈과 같이 학교를 못 다니겠다.’
쌍둥이는 부모님이 돌보기 편하기 위해 보통 같은 반으로 배정을 해줘서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동생과 같은 반이었다. 2학년 때도 같은 반을 시켜준 선생님께 학기 말 겨울 방학이 시작하기 전날 그 어린아이가 선생님과 방과 후 면담을 신청해서 ‘동생과 같은 반을 3학년 때도 시켜주시면 전 학교를 안 다닐 거예요’라고 선언하면서 나는 동생과 분리됐다. 물론, 이후에도 쉬는 시간이면 동생 친구들 친하지 않은 친구들이 나에게 와 ‘너 동생 또 oo 하는 중이다.’라고 실시간으로 생중계를 해줘서 일거수일투족을 알았지만, 동생과 분리된 그때부터 내 학교생활이 진짜 시작된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동생과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걸 좋아했고 생각이 많아서 내 생각을 남에게 쉽게 말하기보단 속으로 삭이는 일이 많았다. 반면에 동생은 책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친구들이랑 뛰어놀고 어울리길 좋아했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거리낌 없이 요구하고 말하는 성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생은 상대적으로 자기 의견을 더 표현한 것뿐인데 말로 하므로 더 사고 날 일이 많았고 또 사춘기가 왔을 때 부모님과 부딪힌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나는 조용한 아이였긴 때문에 부모님 입장에선 ‘딸은 느리지만 착하고 조용한 아이, 아들은 머리가 좋지만, 성격이 드세고 활달한 아이’로 규정해 놓고 비교했던 것 같다. 물론 부모님뿐 아니라 대부분 주변인이 그렇게 평가했다.
그걸 생각으로만 했으면 좋았건만 우리가 대두될 때마다 설명문처럼 저 정의는 따라다녔고 어느 순간 나는 저 틀에 나를 꿰맞춘 것 같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못하고 하고 싶은 걸 요구하는 일도 드물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린 맘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당당히 요구하는 그런 동생이 모습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동생은 자기가 두드러지면서 손해 본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저 정의에서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감사해하며 얻은 게 있다면 ‘느리지만’이다. 나는 내가 뭘 하든, 뭘 배우든 항상 시간이 걸리는 걸 알았기 때문에 좀 못 하거나 오래 걸려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진짜 꾸준히 해왔다. 처음 꾸준히 한 건 초등학교 때 미술대회에 나간 것이다. 공부보다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해서 교내 미술대회, 도내 미술대회, 전국 대회 등 하나하나 찾아서 미술대회에 나가기 시작해 졸업할 때쯤엔 일 년에 10개 이상의 상장을 받을 정도로 미술대회를 꾸준히 나갔다.
그러다가 공부가 더 중요해진 중학교에 진입하면서 미술대회는 나가지 못했지만,,,
중학교 첫 중간고사를 보고 나는 겨우 평균이 80점을 넘었다. 난생처음 여러 개의 과목을 기간을 정해두고 시험을 보는 게 도무지 적응이 안 갔다. 반면에 내 동생은 첫 시험부터 88점의 평균 점수를 받았다. 원래 잘하는 수학 등에선 거의 만점을 받았고 공부가 필요한 암기과목에서 점수를 못 받아서 그렇지 100점도 꽤 있었다. 부모님은 늘 있는 일이나 당연하게 여겼지만, 미술대회도 못 나가고 공부만으로 평가받는 첫 성적표는 나에게 굉장히 충격이었다. 동생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점수를 이거밖에 못 받은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그리고 다음 기말시험 준비를 두 달 전부터 했고 이번엔 나름 시간표도 짜서 열심히 했는데 원래 느린 데다가 기말에 과목이 더 늘어나면서 내 시험 점수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충격적 이게도…
그래서 방학 때도 공부했다. 동생은 좋은 성적표를 가지고 친구들과 피시방을 전전하며 놀러 다녔지만 나는 영어 단어도 외우고 제일 못하는 수학 공식도 외우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시험 한 달 전부턴 새벽까지 공부하는 일도 많았다. 고작 중학교 1학년이..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했나 싶지만 끈기 하나 타고난 나는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2학기 중간고사에서 무려 평균 점수가 8점이나 올라 나는 평균 89점으로 동급생들 앞에서 선생님께 성적이 가장 많이 점프한 아이로 칭찬받았다. 이날 느낀 뿌듯함 때문에 중학교 3년 내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 성적표는 백 점이 많아졌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 나는 동생의 성적을 압도적으로 뛰어넘었다. 이때 느낀 게 있다. 부모님은 동생이 사춘기가 오면서 성적이 떨어진 거라고 하지만 동생을 옆에서 계속 봐온 내가 생각하기에 동생의 치명적 약점은 ‘머리가 좋은’ 이였다. 머리가 좋은 탓에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일이 없었고 그러면서 동생의 집중력은 점차 낮아졌다. 또 자기 머리를 너무 믿었기 때문에 공부를 계획적으로 하지 않고 벼락치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교과서를 통째로 외운 내 점수를 따라올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쌍둥이를 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규정하지 말라고! 그 규정된 틀 안에 아이가 갇혀 버리면 아이의 성장 방향성이 많이 틀어진다. 머리가 좋았던 동생에게 너도 똑같이 한 시간을 앉아서 공부하라고 했다면 동생도 책상에 오래 앉아 공부하는 끈기가 생기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