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대화를 통한 인사이트
최근에 친구가 자기가 아무래도 정신병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벌레가 보여" 당황하지 않았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나왔던 에피소드 중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으로 벌레를 보는 환자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그 환자는 심각했지만. 얘기를 듣고 웃었다. 친구가 가볍게 생각하길 바랐고, 실제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를 들어줬다. 왜 그렇게 됐는지. 친구는 그 뒤로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고 근본적인 불안을 해결해서 이젠 벌레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 같았으면 어떻게 하면 받아들였을까?
몇 년 전인가 회사가 어수선한 적이 있었다. 한 신입사원 중 하나가 정말 똑 부러지고 일 잘하고 야무진 친구였는데 갑자기 근무지 무단 일탈을 하고 한 선배가 한 말에 상처받았다며 오후에 나타나서 면담하더니 며칠 동안 쉰 적이 있었다. 업무상 일 처리도 하나도 안 돼 있었고, 선배들은 너무 실망해서 상황이 안 좋았던 적이 있다. 당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내가 아늑한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복귀해서 보여준 행동도 하나같이 엉망이어서 결국 좋지 않게 나갔는데 당시에 듣기론 공황장애라고 했다. 그땐, 공황장애라고 해도 너무하지 않나? 왜 피해를 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이 일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그 당시엔 회사에 공황장애로 그만두는 사람도 꽤 있었고, 주변에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이 많아서 그 단어는 익숙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싫으면 그만두면 되지. 싫다고 하면 되지. 왜 마음에 쌓아두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몰랐다. 그 말조차 하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땐 몰랐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정신병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한 명씩은 있었는데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도 컸고, 드러나게 아프지 않으니깐 꾀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작년쯤 나도 굉장히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물론 공황장애 증세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누구도 만나기 싫고 가라앉았던 기간이 있다. 그때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 친구도 이랬겠구나. 아무 생각도 하기 싫고 의지도 없고 잠만 자고 싶은…. 물론 나는 그 친구가 겪었던 것에 새 발의 피였겠지만. 갑자기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작년엔 트렌드로도 정신병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인지 관련 콘텐츠도 많이 나왔다. 그중 위에서 언급했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면 한국 사회에서 정신병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나 또한 비슷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반성도 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특히 조현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 이사하여서도 선뜻 주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주민들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내가 저 상황에 내 이웃으로 조현병 환자가 온다면 나 또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다.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읽었는데 그 책 속 여자 주인공도 정신병을 앓고 치료를 위해 요양원에 들어가는데 그 책 속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던 나오코가 '그저 나를 만나러 와줘', 그리고 '나를 기억해 줘'라는 대사가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실제로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던 친구에게 들은 말이 '위로하지 말아라, 그냥 알리는 거다. 내 상태를. 의사 선생님이 치료를 위해선 내 상태를 인정하고 주변 사람한테 알리는 걸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라고 했었다.
직접 상처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의 병을 알리는 걸로 상처를 드러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야 드러난 상처를 볼 수 있으니깐.
정신병에 관심이 생긴 후 주변을 돌아보니, 저 사람도 저런 병을 앓고 있구나. 저 사람은 저런 성향이라 힘들었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는 화병이 있는 것 같고, 누구는 피해망상에 있는 것 같고, 누구는 우울증이 있는 것 같고 증상이 심하지 않다 뿐이지 다들 하나씩 앓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감기처럼 어쩔 땐 우울증을 앓다 회복하고 화병을 앓다 회복하고…. 다만 다른 점은 자연치유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유럽 사람들이 감기를 자연 치유하는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의 병을 자연 치유할 정도의 면역력이 있고, 딱 심하지 않은 정도 마음의 병에 걸린다. 그리고 치유하고 나서 더 튼튼해진달까?
스스로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면역력을 가지기 위해선, 우선 내 마음에 관심을 두고 어떻게 튼튼하게 만들지 단련해야 한다.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몸을 따뜻하게 하고 건강에 좋은 것을 먹는 것처럼 마음에 좋은 소리를 듣고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내 경우엔, 마음이 좋지 않고 어수선할 때마다 혼자 여행을 가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라앉으면서 나를 화나게 했던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랬구나' '그럴 수 있겠다.' 별거 아니게 넘길 수도 있게 된다.
마음의 병은 비염이나 감기 보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는 알지만, 그런 환경을 만들고 습관을 갖기란 쉽지 않다. 내 맘대로 통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염도 그렇고 감기에 걸렸을 때 이제 이렇게 하면 금방 나을 거라는 각자의 방법이 있는 것처럼 마음의 병도 자신만의 치료 방법을 갖춰두면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