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로 자라면서 얻은 인사이트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땐 말도 못 하게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선생님을 협박했다. “3학년 땐 동생이랑 다른 반 안 해주시면 저 학교 안 다닐 거예요!” 쌍둥이들은 엄마의 편의를 위해 원하면 초등 6년 내내 같은 반을 해준다. 엄마가 원해서 나는 1, 2학년 쌍둥이 동생과 같은 반이었다. 동생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2년의 학교생활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같은 나이의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다른 성향, 성격을 가진 나와 동생은 너무 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더 못났다 잘났다는 비교가 아니더라도, 같은 조건의 놓여있는 쌍둥이의 삶은 타인에 의해 비교당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학원에 다니고 같은 시험을 보면 특히나 등수가 나오는 시험에선 항상 비교된다. 동생은 N 등이네.. 00점이네가 따라다닌다. 내 점수, 내 등수만 신경 써도 머리가 아픈데 타인이라 할 수 없는 내 쌍둥이 점수와 등수까지 같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
거기다 내 쌍둥이 동생은 머리가 정말 좋았다. 공부하지 않아도 좋은 점수를 받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해서 아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아이여서 어디를 가든 눈에 띄는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누구보다 질문을 많이 했고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선생님을 당황스럽게 만들 때가 많았다. 반면에 나는 조용하고 소심하고 느린 아이였다. 말도 느리고 뭐든 생각한 후에 천천히 하는 것을 좋아했다.
둘이 너무 다르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들은 둘이 쌍둥이라는 것을 아니 남매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동생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지만 나는 매 순간 비교당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러다 보니 동생이랑도 자연스럽게 사이가 안 좋아졌던 것 같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화를 내고 마음을 주지 않았다. 요즘은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외국에서 자랐으면 사이가 지금보단 더 좋았을까?
외국 사람들은 내가 쌍둥이인지 크게 관심도 없고 독립적인 인격으로 생각하니깐 더 가까운 사이로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쌍둥이라고 말하면 바로 나오는 질문이 있다. 항상 "어때? 쌍둥이로 자라는 게 어땠어?"를 물어본다. 그러면 고민이 된다. 무슨 답을 기대하는 걸까? 사실 크게 다른 게 없는데... 다른 남매가 자라는 것처럼 자랐다. 2분 간격을 두고 태어났을 뿐. 그리고 부모님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누가 더 나아? 누가 더 공부 잘해?"였다. 몇 살 차이 나는 남매예요.라고 하면, 쟤는 동생이니깐, 오빠니깐 이란 변명이 따르면서 둘의 다름을 받아들이지만, 쌍둥이에겐 너무 가혹하다. "왜? 왜 달라?" "쟤는 그림 잘 그리는데 너는 왜 못 그려?" "쟤는 저렇게 활발한데 너는 왜 내성적이야?" 왜긴 왜겠어. 우린 다르니깐. 속으로 맨날 삼킨 이야기다.
왜 다르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달랐는데 쌍둥이라고 하면 당연히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아이를 낳기 시작하면서 종종 쌍둥이를 낳는 친구들을 보면 그 친구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보통은 쌍둥이를 키운 엄마 아빠에게 조언을 얻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쌍둥이를 키우는 부모님도 힘든 점이 많았겠지만, 쌍둥이를 경험한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다.
물론 쌍둥이로 사이좋게 행복하게 사는 형제들도 많을 것이다. 이건 개인차, 환경 차도 있을 거니깐. 쌍둥이로 사는 게 힘들고 어렵다고 일반화하고 싶진 않지만, 쌍둥이로 자라면서 이런 점이 있을 수 있는지를 주변에서 알고 더 조심히 대했으면 좋겠다.
쌍둥이라도 더 예민하고 더 소심한 아이는 분명히 있고 계속 비교하며 상처받는 아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