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담배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만달이가 있었는데, 천달이가 그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어이~ 만달이! 자네 그러다가 일찍 죽어! 술, 담배 좀 줄여!"
"에이! 아침부터 재수 없게시리 왜 그래? 그런 말 하지 마! 말이 씨가 돼!"
"무슨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러나? 자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그 말 취소하게! 아침부터 술맛 떨어지게시리!"
"...."
친한 친구의 조언을 재수 없게만 여기고 귀담아듣지 않았던 만달이는 1년 후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그는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실주의자적인 글쓴이의 시점에서 말은 씨가 될 수 없다. 은연중에 지인들의 행동양식을 관찰하게 된 것이고, 주변인들은 당사자의 앞에서든 뒤에서든지 간에 그 분석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저놈은 싹수가 노래서 글러먹었어!"
"저 사람은 술을 주야장천 마셔대니, 조만간 무슨 사달이 나도 나겠네!"
"저저저! 운전하는 싸가지 보세! 저러다 언제 한 번 큰 사고 나지!!"
"저 청년은 항상 근면 성실하니, 잘 될꺼여!"
그냥 지나가는 덕담이나 한낱 잔소리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소리들을 주변 지인들로부터 여러 번 듣게 된다면, 자아성찰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사소한 악담이나 훈담으로만 들을 것이 아니라, 나의 행동을 반증하는 주변인들의 분석 결과물을 듣는다고 생각해보자. 이 보다 더 좋은 지적이나 칭찬은 없을 것이다.
남들의 눈치를 봐가며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남들의 듣기 싫은 말들도 귀담아들을 수 있는 넓은 아량과 나쁜 지적들도 기꺼이 수긍하며 그것들을 수정하려고 하는 끈기와 인내력이 있다면, 그 말들은 '씨의 저주'가 아니라, 우리들 인생의 '소중한 양분'이 될 것임이 자명하다.
잔소리에 답이 있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지 말고,
듣기 싫은 말도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말이 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 씨가 되는 것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