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잔소리

수동적 삶 VS 능동적 삶

능동의 악마가 되다

by JJ

글쓴이는 절실한 기독교 신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도 없이 교회 목사님에 의해 세례를 받고 주님 앞에 봉헌되었다. 모태 신앙이라고 불리는 그것 말이다. 그렇게 나의 의사는 무시된 채, 부모님의 강압과 권유로 인해 가기도 싫은 교회를 성인이 되어서까지 다녀야만 했다. 간혹 내가 교회를 다니기 싫은 낌새라도 내비치는 경우에는 엄청난 꾸지람과 탄압을 받아야 했었기에, 싫은 티를 꼭꼭 감춰야만 편안한 삶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각종 성금과 십일조 등을 거르지 않고 갖다 바치셨다. 그 돈이 하나님께 가는 돈도 아닌 것 같았는데 말이다. IMF 전 한국 경제가 활황일 때는 교회 십일조로 100만 원 가까운 돈을 헌금한 적도 허다했다. 그럴 때곤 교회 목사님은 강단 앞에서 누구 성도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많은 기여를 하셨다며, 우리 가족을 공개적으로 추켜세웠다. 교회 안에서도 헌금을 경쟁적으로 더 많이 내게 하기 위한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혹여라도 교회를 결석할 때곤 교회 목사님, 장로님, 청년회장 등등의 무리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왔고, 만남을 요구하며 교회에 잘 출석할 것을 다짐받았다. 그들의 영업 기술은 화려한 기술이 전혀 없었지만, 매우 집요하고 꾸준하였다. 그렇게 나의 마음에 반하는 교회를 다니는 행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더욱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다. 마음속 반감은 커져만 갔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다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이렇게 잘 먹고살 수 있는 것이라며, 신앙에 의구심을 갖지 말고, 교회에 잘 다닐 것을 더욱 강요하셨다.


매주 교회를 가기 위해 아름답게 치장하고 차려입는 주일 아침만 되면, 어김없이 항상 부부싸움이 시작됐다. 화장을 하느라 준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시는 어머니를 아버지가 다그치면서 윽박을 지르고 핏대를 세우며 저주의 말을 퍼붓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곤 어머니께서는, 이럴 거면 이런 마음으로 뭐하러 교회를 가냐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우셨다. 그렇게 서로 으르렁 거리시며 무슨 사단이라도 날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 속에, 기어코 꾸역꾸역 나를 동반해서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셨다. 교회로 이동하는 차 안은 정적과 거친 분노의 숨소리만 가득했다. 나는 숨죽인 채 뒷 좌석에 앉아 부모님의 눈치만 보기에 바빴다. 가족 모두가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교회로 향했지만, 교회에 도착하는 동시에 부모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교인들과 인사를 하시기에 바빴다. 처음에는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에 적지 않게 당황을 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였지만, 이러한 순간들이 반복되어 일상이 될수록 아버지의 이중성에 반감을 키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언젠가 이러한 원치 않는 순간에서 반드시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했다.


'신은 존재하는가?'


교회를 다닐수록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점점 커져나갔다. 교회에 내는 헌금으로 차라리 눈앞에 보이는 불우 이웃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했고, 밑도 끝도 없는 그들의 무조건식 신앙 강요에 오만정이 떨어져 나갔다. 내 마음속 능동의 물결이 수동적 삶을 더욱 거세게 배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인간을 통치하기 위한 도구로써 왕권이 필요했듯이, 신의 존재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잘 되면 하나님의 은혜, 안 되면 하나님의 꾸지람이라는 그들의 논리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이러한 억지성 비논리적 대화는 말도 안 된다.'
'교인으로서 모범이 되지 않고, 앞뒤가 다른 그들의 행태에 염증이 난다.'
'하나님을 믿으러 가는 교회인데, 왜 다른 교회들과 비교해 가며 성도 수 늘리기에만 급급한 걸까?'
'목사님이 우리 부모님께 자신도 골프 치는 것 참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은 돈인가?'


교회를 다니면 일주일간 저질렀던 모든 악행이 용서될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아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의 염증 섞인 시선이 옳지 못한 시선일 수도 있겠지만 오랜 기간 지켜봐 온 교회의 비논리적인 그리고 이중적인 행태는 나의 반감을 사그라들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교회로부터의 독립을 결심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교회에 나가기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나선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울그락 불그락해진 얼굴과 목소리로 방문을 부술 듯이 두들겨 대며 나를 강하게 위협하셨다.


"문 안 열어?!!! 쾅쾅쾅쾅!!!!"
"싫어요!!! 교회 안 나갈 거예요!!"
"뭐라고!!! 어디서 사탄이 깃들어서 이상한 소리를 해대고 지랄이야!!"
"전 교회 안 나갈 거예요!! 애초부터 제 선택으로 간 교회도 아니라고요!!"
"이 놈이 미쳤나?! 악마가 틈탔나?! 어서 문 열어!! 쾅쾅쾅쾅!!!!"
"종교의 자유도 있다고요!! 전 제가 믿고 싶은 종교가 있으면, 그때 다닐 거예요!!"
"넌 하나님께 태어날 때부터 봉헌됐어!! 넌 기독교 믿어야 해!!"
"싫어요!!!!"
"너 혼나고 싶어?! 어서 당장 문 못 열어?! 여보!! 빨리 방 열쇠 좀 가지고 와 보세요!!"


한 집안에 사는 아버지의 무력 앞에 두려움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방문을 못 열게끔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버티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버티다 보니, 아무리 힘이 센 아버지일지라도 문을 열 수 있는 도리가 없었다. 겁에 잔뜩 질려 30분 이상을 그렇게 대치하다가 다행스럽게도 교회 갈 시간이 늦어지자, 부랴부랴 부모님은 교회로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한동안 아버지는 나에게 악마라며, 사탄이라며, 온갖 핍박과 강압으로 짓누리기 시작했지만, 나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했고, 백년전쟁이라도 불사할 생각이었다. 집을 나가라는 압박부터, 용돈 제한, 온갖 회유와 설득 그리고 주변 교인 및 친척들의 도움으로 나를 다시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끈질기게 시도하셨지만 확고한 나의 결심을 쉽사리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 어떠한 방법도 통하지 않을 것임을 인지하신 아버지께서 드디어 어느 정도 포기 수순에 들어가시는 듯싶었다. 하지만 포기한 척 연기만 하셨을 뿐, 여전히 전방위적으로 꾸준한 압박을 전개하고 계셨다.


"아들아, 아빠가 나쁜 거면 너에게 이렇게 까지 권하겠니? 아빠 소원이다. 교회에 다시 나가자꾸나!"
"전 안 나가는 게 좋아요. 아버지께서 좋으시면 아버지는 믿으세요. 하지만 저에게 강요는 하지 말아 주세요!"
"나쁜 새끼!!!!!"


끝이 없어 보이는 종교 전쟁으로 인하여 여러 친척 어르신들을 방문할 때마다 몇 시간씩 끝날 줄 모르는 '기독교의 당위성'이란 연설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어야 했지만, 결코 나의 신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기독교는 무조건 믿어야 한다.'라는 말도 안 되는 설득만 계속 반복되었었기 때문이었다. 정신력이 강한 나의 정신줄을 놓게 만들 정도로 견디기 힘든 큰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것이라며, 오기로 버텨가는 나의 속을 긁어놓았다.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시련을 주는 것이라는 둥, 말도 안 되는 발언들이었지만 심신이 너무나도 힘들고 괴로워서 심약했던 시기에는 간혹 정말로 그런 것일까라는 자기 합리화의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렇게 모든 시련과 고초를 견디고 이겨내며 나는 나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의 계획대로 그 당시에는 내 주변에 흔치 않았던 어학연수를 힘겹게 다녀왔고, 취업난의 고통과 비교질 속에 시름을 하다가 오랜 기다림 끝에 가까스로 좋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게 됐다. 해내었다는 성취감과 자부심에 가장 먼저 부모님께 이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기 위해 전화를 드렸는데, 아버지께서 찬물을 제대로 끼얹으셨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좋은 회사에 취업했구나!"
"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너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셨단다! 너무 행복하구나!"
"왜죠?"
"그야 너는 주님의 자식이기 때문이지!"
"언제는 제가 교회를 안 다녀서 벌을 주셨다면서요?"
"그때는 벌을 주셨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상을 또 이렇게 주시잖니?"
"그럼 제가 힘들게 노력해서 연수 다녀오고, 영어 성적 취득해서 취업된 게 전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요?"
"그렇단다. 항상 범사에 감사하려무나!"
"제가 노력 하나도 안 하고 망나니처럼 굴었어도 취업했겠네요?"
"이놈의 자식이!!!!!"
"그냥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힘드세요?"
"그런 말 하지 마! 그러다가 하나님께 벌 받아!!"
"아.. 알겠어요.. 제가 이제부턴 제대로 막살아서 어떻게 막 나가는지 보여드릴게요!"
"말 조심히 못해?! 넌 도대체 얘가 왜 이렇게 삐뚜니?!!!"
"아.. 진짜!! 그만 말할게요! 저 이런 말 하는 거 싫어요!! 말이 전혀 안 통하네요!!"

부모님의 신앙에 대한 강압과 강요는 그 수위가 많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끝날 줄을 몰라했다. 이래서 종교 전쟁이 인류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많았을 것이라고 몸서리치며 실감을 하려던 찰나, 부모님께서 또다시 다른 카드를 꺼내셨다. 교인이 아닌 여성과는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인인 여성과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나는 차라리 독신으로 살겠다고 선언하였다. 아버지는 나의 선택에 적지 않게 당황하신 듯보였으나, 내색하지 않으시려 애쓰셨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부모님께 소개를 해드리게 되었다. 아버지는 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탐탁지 않아하셨지만 나의 고집을 잘 인지하고 계셨었기 때문에 큰 반대는 하지 못하셨다. 교제를 반대하는 대신에 나 몰래 내 와이프를 붙잡아 두시곤, 아들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아들을 다시 교회에 다닐 수 있도록 설득하라고 나의 아내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나에게 조심스레 고민 상담을 한 덕분에, 모든 사건의 전말을 속속들이 파악하게 되었고, 나는 부모님께 더 이상 교회 문제로 저와 제 와이프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리며 매우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 이후에는 접근하시는 그 강도나 빈도나 매우 약해지기는 하였지만, 혹시라도 부모님 댁 방문 중 목욕탕을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잠시 외출을 해서 내가 와이프와 잠깐이라도 떨어져 있는 순간이 온다면, 여전히 지체 없이 교회 설득을 강요하신다고 한다. 이보다 더 끈질기고 포기할 줄 모르는 무대뽀 스타일의 영업 사원이 또 어디에 있을까?




종교, 정치 이야기는 남들과 섞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글쓴이의 종교 전쟁 스토리를 들려줘야만 오늘의 주제에 부합하는 글을 쓸 수 있었기에 쉽지 않은 결정을 하였다. 글의 목적은 기독교를 다니는 분들을 모두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 누가 무슨 종교를 믿든지, 말든지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종교를 영업하는 행위, 즉 전도하기 위해 스트레스 주는 이들은 나에게 있어서 배척의 대상일 따름이다. 그들이 좋다고 믿는 신앙이 남들에게까지 좋으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수 십 년간의 가정 내 종교 전쟁으로 인해 불교로 귀의할까도 고민해 보았지만, 본인의 성향상 누군가에게 믿고 의지하며 매달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교인 무교를 선택했다.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하늘이 도움을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하늘이 돕는 경우의 수 보다는 내 자신이 길을 개척해감으로써 잘될 확률이 더 높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나의 소중한 시간의 대부분을 나와 내 가족들만을 위해서 쓰기로 결정했다.


글쓴이의 부모님께서는 참 수동적인 분들 이시다. 성향이 그러신 건지, 기독교를 믿으셔서 그러신 건지, 사회적 배경과 영향 때문에 그러신 건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 항상 예수님과 하나님에게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의지하시고 기도로 여쭤보신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시려고 노력하시기보다는 그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응답을 기다리시는 것이다. 설령 해결의 응답이 없고, 그 일로 인하여 고난과 역경에 빠지시더라도 그것 또한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 담겨 있을 거라는 허황되고 수동적인 태도를 여태까지 견지하고 계신다. 반백 년 가까이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오신 부모님을 나의 능동적인 문제 해결 능력으로 도와서 해결이라도 해드린다 싶으면, 주님의 은혜로 아들인 내가 슬기롭게 해결하도록 주관해 주셨다고 말씀하시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며 첨언을 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자신에게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책임이 요구된다. 수동적인 삶의 그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하지만 한 번 밖에 못 사는 인생, 너무 수동적으로만 살다가 가는 것도 아쉽지 아니한가? 글쓴이는 내가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아버지로부터 악마, 사탄이라고 불리는 큰 결단을 하였다. 물론 그 당시에는 집에서 쫓겨날 뻔도 하였고, 하루하루가 곤욕스러운 삶의 연속이었지만 이제는 서로의 선을 넘지 않는 무언의 아슬아슬한 휴전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잡음은 피하면 좋지만, 피하기만 한다고 모든 것이 전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과감한 결단력과 의지를 가지고, 현실에 부딪히며 그 정답을 스스로 갈구하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정답은 없다. 단지 현재로선 이것이 가장 정답과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능동이 좋고, 수동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점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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