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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Nov 30. 2022

Ep 43: 여유와 자유, 책임을 배우다!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의 달콤한 유혹

 당시 이따금씩 영어로 꿈을 꾸면 잠에서 깨어난 후 한참을 아리송해했다. 나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주로 방관하는 듯보였고, 등장인물들로 보이는 외국인들은 내가 못 알아들을 정도로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했기 때문이다.


'아니, 남의 꿈도 아니고 내 꿈인데 저 녀석들은 영어를 어떻게 저리도 유창하게 한단 말인가?'
'나의 잠재의식은 이미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있는데 내가 못 끌어내고 있는 걸까?'


 신기한 꿈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꿈속에서도 공부를 한 것만 같은 독특한 체험 덕분이었다. 그렇게 다시 거울을 바라보며 자기 암시를 하고 간단히 푸시업을 한 후, 비니를 푹 눌러쓴 채 MP3로 팝송을 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1등으로 학원에 도착해서 단어를 되뇌고 있다 보니, 출근 당번 선생님이 헐레벌떡 뛰어왔고, 그렇게 유쾌한 어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학원을 마치면 어김없이 일본인 친구들과 BBQ파티를 계획했고 그 덕분에 나의 가방 속에는 교재 이외에도 BBQ 장비들이 항상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에곤 이 상점, 저 상점을 기웃기웃 거리며 상점 직원들과 대화를 하기에 바빴고, 항상 주먹 인사로 유쾌한 마무리를 하였다. 그러다가 자신감이 좀 붙으면 무료 전화를 할 수 있는 통신회사나 은행 고객센터 같은 곳에 전화를 해서 영어 회화의 감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정도 영어를 준비해 온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에는 영어 실력이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성장했다. 동사와 목적어의 위치가 자꾸만 헷갈려서 머릿속으로 버퍼링이 생기기는 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버퍼링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지루할 만도 하였지만 솔직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다.'라고 생각했던 나의 작은 사고방식의 틀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그 틀이 연성 작용으로 인해 넓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 이래서 사람은 견문을 넓혀야 한다라고 하는 거구나..'

 

 영어 실력에 정체기가 올 때쯤, 비슷한 듯 달라 보이는 그들의 생활양식과 문화에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순풍이 온몸 구석구석을 쓸어가며 스쳐 지나가듯,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견문이 확장되는 듯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건, 겪어보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확실해! 호주에 오길 잘했군!'


 아등바등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만 하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물론 1년여의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감도 적지 않았지만, 학교를 일 년 빨리 들어간 빠른 생일자의 불이익이 처음으로 이익의 순간이 되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자신들이 범죄자들의 후손이라고 큰 목소리로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내가 바라본 호주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해학적인 시각으로 그렇게 풀이하는 듯 보였다. 범죄자들의 후손 답지 않게 사회 전반적으로 자연 친화적인 삶과 인도주의적 태도를 견지했으며, 과거 본인들의 호주 대륙 침략행위를 공식적으로 사죄하면서 책임지고 보상하려는 듯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솔직하고 괜찮은 사람들일세?'


 어마어마한 범칙금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항상 사람이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 주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여유로운 관대함에 감탄을 하며 속으로 박수를 쳐댔다.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곤 기사가 직접 내려서 몇 분이 걸리든 안전하게 탑승시키고, 하차시켜주었다. 주변에 탑승이나 하차를 기다리던 시민들 또한 자발적으로 삼삼오오 도와주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시민성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삭막하기만 했던 한국에서의 회색빛 감정이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꽃들로 가득 찬 아름다운 정원을 연상캐하듯 나의 감정도 칼라풀한  아름다운 색들을 머금으며 그들의 생활 방식에 매료되기 시작하였다.


 비염이 도져서 주변 눈치를 봐가며 콧물을 질질 흘리고 재채기를 연신해대고 있을 때면, 일면식도 없는 호주인들은 짜증을 내기보다는 나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Bless you!(몸조심하시오!)"라고 편안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그들의 따뜻한 시선과 말 한마디는 나의 차가웠던 가슴을 녹여내리기에 이미 충분했다. 'Easy going(느긋함)'이라는 삶의 모토를 기준 삼아 인도주의와 자연주의를 몸소 실천하던 그들의 삶은 비슷한 줄 알았지만 비슷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세상이었다. 자칫 그들을 게으르다고 판단할 뻔하였으나 부지런하면 부지런했지 절대 게으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단지 한국과 달리 일이 삶의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게으르고 답답해 보일 수 있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호주 만족도 높은 워라밸 수준으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는 여러 가지 시너지 효과가 창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업무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엄격한 기준하에 진행되었고, 정해진 업무 시간 안에서만 업무를 완료해야만 하는 업무 생태계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보니 그들의 시장은 낮 시간 내내 항상 활기가 넘쳐났다.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에 힘쓰는 호주 정부의 힘들지만 올바른 선택에 많은 귀감을 얻었던 순간이었다. 이러한 기억의 파편들이 훗날 나에게 불공정함을 볼 수 있는 눈을 선물해주었으니 나로서는 영어뿐만이 아니라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음이 확실했다.




 가식적인 친절이라고 할지라도 가식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니 기분이 좋았다. 사회적 약자와 장애인들을 귀찮아하기보다는 그들을 포용하고 함께 나아가려고 하는 시민의식 덕분에 처음으로 사람이라는 동물로 태어났음을 감사하게끔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건축 종사자들을 대할 때, 어릴 때 공부를 안 해서 저렇게 지저분한 옷을 입고 몸 쓰는 일을 하며 고생한다고 은근히 험담하며 깔보기에만 급급하지만 호주에서는 그대들이 나 대신 힘든 일을 해줘서 우리들이 이렇게 같은 고생을 하지 않고 편안히 지낼 수 있다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사람이 쉽게 바뀔 수 없는 것처럼, 국가의 이러한 분위기 또한 한순간에 바뀌거나 사라질 수 없다. 결국 국민 한 명 한 명의 의결권에 의해 국가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움직여 가는 것이니, 시민 한 명 한 명의 의식이 국민 의식의 토대가 됨은 가히 부정할 수 없다.


 한국에만 있었다면 절대 배울 수 없었을 이러한 소중한 경험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나도 모르는 사이 나 자신도 내면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뤄내고 있음을 느꼈다.


견문을 넓힌다는 거..
팍팍한 내 마음에도 숨 쉴틈을 주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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