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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Nov 16. 2022

Ep 42: 절실함의 목표 설정

Only English!

 나는 나에게 나름 독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독한 면을 한번 잘 활용해 보기로 결심했다.


Only English....


 3000만 원이라는 종잣돈을 들여서 어학연수를 왔었기 때문에 나의 상황은 그냥 절실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절실한 상황이었다. 여행 겸 공부 겸 편안한 느낌으로 왔을 수도 있을 여느 사람들과는 임하는 자세부터가 달랐다. 전 재산을 걸고 진행했던 어학연수였기 때문에 반드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이뤄내야만 했다.


 나의 목표 설정은 그다지 화려해 보이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 영어로만 말하기!
- 하루 최소 단어 30개 외우고 반복하기!
- 배울 내용 예습, 배운 내용 복습하기!


 조촐해 보이는 이 목표들이 약 1년여간의 어학연수 기간 동안, 내가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나와의 약속이다. 너무 복잡하고 장대하게 목표 설정을 하면 따라가기 힘들까 봐, 최대한 간결하고 쉽게 설정을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자리를 정돈한 후 팔 굽혀 펴기를 43회 실시했다. 다른 운동은 못하더라도 팔 굽혀 펴기 43회는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했다. 그 이후에는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서서 미친놈처럼 나에게 말을 걸어댔다.


"Good morning! Handsome! (좋은 아침! 이 녀석아!)"
"Only English! (영어만 사용!)"
"Memorise 30 words everyday! (매일 30 단어씩 외우기!)"
"Preparation what will learn and review what I have learnt about! (배울 내용 예습, 배운 내용 복습!)"
"Then.... (그러면....)"
"Have a good day JJ! (좋은 하루 되자 JJ!)"


 미친놈처럼 거울 앞에서 중얼거리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약간의 똘끼도 필요했다. 간단히 아침 샌드위치를 먹으며 약속대로 단어를 외우고 예습 복습을 한 후, 선생님께 질문할 내용들을 미리 정리해 놓았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어서 아침 시간은 늘 해야 할 일들로 홀로 바쁘다. 모든 채비를 마치면 마음에 드는 옷을 챙겨 입고 머리에는 비니를 푹 눌러썼다. 머리 미용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는 MP3를 두 귀에 꽂고, 잘 들리지도 않는 팝송을 무한 반복으로 들었다. 그 당시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곡은 페리스 힐튼의 노래들이었다. 여성 가수여서 비교적 발음이 명료했고, 밝은 느낌이 가득한 그녀의 노래를 듣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문이 굳게 닫힌 어학원 정문에서 단어를 외우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 보면 항상 출근 담당 선생님이 뒤늦게 도착하면서 멋쩍은 표정으로 황급히 문을 열어줬다.


"Good morning JJ! You are early today as well! (안녕 JJ! 너 오늘도 빨리 왔네?)"
"Good morning Nick! You look tired today! Haha (안녕 닉! 넌 오늘 좀 피곤해 보이네? 하하)"


 평범한 대화를 형식적으로 주고받으며 학원 문이 열리자마자 재빨리 입장했다. 입장하자마자 나는 컴퓨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당시만 해도 호주의 인터넷은 매우 느렸고, 공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장소도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Share house에서는 인터넷 사용 용량을 체크하는 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설치하였었는데, 그 용량 이상을 사용하게 되면 인터넷 사용료를 더 냈어야 했기 때문에 수업 시작 전 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실은 나에게 있어서는 천국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어학원 내부에서는 나의 목표 중 하나와 동일한 'Only English Policy'가 버젓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의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곧잘 그 정책을 무시하곤 했다. 수업을 들어가게 되면 한국인과 일본인이 반 정원의 70% 이상을 차지하였었으니, 오롯이 영어로만 말하기의 목표는 쉽지 않은 도전 과제였다. 그러나 나의 절실함은 나의 정신무장을 매우 단단하게 해 주었고, 영어만 사용하겠다는 나의 고집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투자한 돈이 얼만데....'


 반 정원은 15명 내외였는데,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사람은 항상 한 명만 있었다. 그 이름도 너무나도 유명한 'JJ'. 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의 질문 세례는 끊일 줄을 몰라했고, 다른 학생들은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다소 눈치가 보이기는 하였지만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내가 얻어야 할 학문적 식을 포기하기는 싫었던지라 따가운 눈초리를 무시하고, 내가 이해할 때까지 질문을 쉬지 않고 이어갔다. 가끔은 선생님께서도 답변을 못해주시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는데, 그런 경우에는 내가 선생님들에게 숙제를 내어주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같은 반 학생들의 따가운 시선은 그들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더라도, 무슨 말을 속으로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저 새끼 또 나대네..'
'재수 없어..'
'지 혼자 학원 전세 냈대?'
'왜 저런대?'


 말을 하지 않아도 감정은 연결된다고 했던가? 나는 이미 그들이 뿜어내는 감정의 욕설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절실함이 나를 철면피로 만들었다. 뭐라도 하나 더 건져내야만 했던 나의 절실함으로 인해 점잖떨고 예의를 갖추며 체면을 차리는 나의 본모습을 잠시 마음속 깊은 곳에 가둬 두기로 했다. 궁금한 것이 천지여서 이렇게 수업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다 보니 처음에는 같은 반 친구가 없었다. 아니, 친구를 사귀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올바른 표현이었던 것 같다. 어학원 광고와는 달리 어학원생 대부분이 한국인들이어서 한국말을 사용하게 될까 봐 의도적으로 그들을 적대시하며 기피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 또한 내가 마음에 들진 않았을 것 또한 안 봐도 비디오인 상황이었다. 대신 어학원 입학식 때 만났던 일본, 스위스, 그리고 체코에서 온 친구들과 중점적으로 사귐을 가졌다. 비록 입학 영어 시험 결과에 따라 그 친구들과는 모두 뿔뿔이 흩어지며 같은 반 생활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 후에는 그 친구들과 서로 낮은 수준의 영어 구사력을 주고받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그룹의 리더로서 그들과 함께 즐거운 나날을 계획하고 있었으니, 직업병이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행복한 그들과의 일상과는 달리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에게는 여전히 시기와 미움을 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당당하게 행동했고 그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나의 배움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가끔은 선생님께서 진도를 나가야 한다며 중재를 하시기까지 하셨으니, 그 당시 나의 집요함이 얼마나 대단했을지는 대충 짐작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1주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뜬금없이 어학원 부원장님이 나를 긴급히 호출하였다. 뭔가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Hello, how are you doing JJ? (JJ 학교 생활은 어때?)"
"I am good and trying to improve my English skills as soon as possible. (저는 잘 지내요.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영어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Oh, I see. I have heard from teachers that you are very hard working and doing great. (그렇군요. 선생님들이 말하는데, JJ가 매우 열심히 하고 잘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Thank you for your compliments. Buy the way, what makes you bring me here today? (칭찬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저를 부르신 용건은 무엇인가요?)"
"Oh, I almost forgot! My bad. Hoho. The reason why I summon you today is I would like to level up your grade from lower intermidiate to upper intermidiate. (오! 깜빡했네요! 이런. 호호호. 오늘 JJ를 부른 이유는 중하급 반에서 중상급반으로 승급시키고 싶어서 불렀어요.)"
"Oh, is that so? I think it is too quick to be in upper intermidiate class for me as my English is not that good. (아, 그런가요? 제 생각에 중상급반으로 승급하는 게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아직 제 영어실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거든요.)
"I believe your English deserve upper intermidiate reffered from teachers. This is rare situation for me as well in very short time like this.(JJ의 영어실력은 중상급반에 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고 선생님들이 말해줬어요. 이렇게 빨리 승급하는 경우는 제게도 매우 흔치 않은 일이에요.)"
"I am very grateful that teachers see me in good ways but if it is possible, could I level up to intermidiate rather than upper intermidiate so that I could prepare for upper lever properly?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만약 가능하다면 제가 중상급반으로 갈 준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중상급반 대신 중급반으로 승급 가능할까요?)"
"That would be no problems at all. No worries. (전혀 문제 되지 않아요. 걱정 마세요.)
"Thank you so much Cassey. I will study harder and harder. (고마워요 캐씨. 더 열심히 공부할게요!)
"Oh, it is enough JJ. Take it easy! Hoho. (오, 지금도 충분해요 JJ. 살살하셔도 돼요! 호호호.)"


 혹여라도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고, 주의를 받으러 가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승급 관련 제안이었다. 그렇게 나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홀연히 중급반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걸고, 그때 당시에는 필수 코스가 아니었던 어학연수의 길을 시간과 돈을 투자해가며 선택했었으니, 이때만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함과 걱정스러움으로 간절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3000만 원을 투자한 성과를 얻어내야만 했기 때문에 정말 제대로 집중했다. 그 덕에 나의 영어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했다. 비록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기나긴 슬럼프 성 정체기에 직면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그 성장 속도가 실로 엄청났다.


 학원에서 유래 없이 1주일 만에 중급반으로 승급한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기존 중하급반에서 1주일간 같이 수업했었던 낯익은 얼굴의 동급생들을 또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나를 싫어했던 그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사치스러운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는 한결같이 모르는 것은 알기 위해 수시로 질문하였으나 나를 싫어하던 그 친구들의 행동에 미세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하던 나에게 경계심을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수업 내용 질문 등을 핑계로 접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심지어 수업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적극적인 분위기로 변모하였다. 더 이상 나만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우들도 자유롭게 손을 들며 질문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었다. 내가 질문하려고 했던 내용들을 다른 친구들이 대신 질문해주니, 자연스레 나의 질문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궁금증은 해결되니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그 한국인 친구들은 내가 영어로만 말하길래 처음에 내가 재수 없는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추후에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서로 친해졌다. 아무튼 내가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영어만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친구들은, 스스럼없이 나에게 만큼은 영어로 말을 걸었다. 같은 한국인들끼리는 좀 창피하고 거리껴지는 상황이었지만, 나의 확고한 Only English 정책에 결국에는 그들도 동조를 해줬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나는 어학원에서 선생님들로부터 나의 이름을 갖다 붙인 JJ Syndrome을 새롭게 낳으며, 어학원 내에서 큰 Sensation을 일으켰다. JJ처럼 하면 영어실력이 빠르게 상승한다는 식의 그런 신드롬 말이다.


절실함이라는 무기를
절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끌어내는 것이
현명한 절실함 사용법이다.

 내 마음속의 절심함을 일깨워 보자.
그 녀석이 무슨 초능력을 가졌는지는
그 녀석을 깨워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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