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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판사, 기득권 직장의 논리와 그들의 횡포

기득권자: 사회,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권리를 누리고 있는 사람

by JJ

권력을 가진 특정 직군, 특히 법조계 내의 기득권 직장은 일반적인 상식이나 합리적인 논리와 거리가 먼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들은 임용 과정을 거쳐 자리를 확보한 뒤, 퇴직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으며, 면직 후에도 재임용이란 독특한 특권을 갖고 있다. 이보다 더 안정적이고 완벽한 직업 안정성을 갖춘 직업이 또 있을는지 의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사회적 위치를 이용하여 재임용이나 각 기관의 기관장 혹은 정치인, 공사 사장 등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직력은 그들만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그리고 온갖 사회적, 경제적 이익들을 독점하기 위해서, 그 검은손을 끊임없이 이곳, 저곳에 뻗쳐대며 자신들에게 유리하고, 만족스러운 환경을 조성하려고 애쓴다. 자신들의 전공 분야가 법조계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회적 욕구는 산업 전분야를 가리지 않고 고위 간부로 파견 나가거나, 재취업할 수도 있는 말도 안 되는 골든 카드를 마구 휘둘러대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기득을 넘어 특권의식이 팽배한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일반 서민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그들의 선서는 정의롭고 공정함을 내포하고 있지만, 정녕 그들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하려는 자세로 임한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단편적으로 법조계 관련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좀 더 심도 깊게 들여다보면, 이는 단지 법조계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의료계, 산업계, 노동계 등, 사회 전반에 이미 만연한 인간 본성의 무자비함과 악랄함을 증명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자 표상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다. 사회적 부와 명예를 사수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일도 저지를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우리네들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기득권 세력들의 횡포를 구조적으로 보장한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시스템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유지하며 공고히 한다. 이는 그들만의 리그를 견고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들의 출발점과 일반 대중의 출발점 사이에는 종종 일반적으로 채워질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하며, 이 차이는 곧 그들이 누리는 안정과 일반 대중이 짊어져야 하는 걱정의 크기를 결정한다.


기득권 세력들의 논리가 공고해질수록, 사회 시스템 전반은 '신봉건주의'와 다름없는 형태로 변화한다. 관료주의와 노예제도가 절묘하게 일치하는 이러한 시스템은, 사실상 피지배계층을 창살 없는 감옥에 억류하기 위한 '증서 사회'를 만들고, 사람들을 '돈의 노예'로 종속시킨다. 노예임에도 노예인 줄 모르고 자유인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게끔 만든 자본주의 사회의 치밀한 설계자에게 심심한 경외감을 표하는 바이다.




전관예우가 말이나 되는 말인가? 살인을 저질러도 전관예우 변호사만 잘 구하면 무죄를 받을 수 있다는 개떡 같은 현실이 우리네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현주소이다. 그 요망한 전관예우라는 무기 덕분에 그들의 변호인 생활의 첫걸음은 순탄하기 그지없다. 수많은 법률 업체들은 무적 카드를 들고 있는 그들을 영입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액수의 러브콜을 보낼 것이고, 그 당사자 변호인은 아무런 고생 없이 변호인 생활 초반부터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되니, 그런 변호사가 피고를 변호한다면, 피고 입장에서는 근심 걱정이 사라질 것이고, 원고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이러한 불편한 현실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그것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이 사회의 양상은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할까?'


평등하다면 과연 전관예우 같은 불상사가 지속적인 사회적 관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결국 법이라는 것도 인간 사회에서의 불공정함을 예방하기 위해, 인간들이 만들어낸 규칙과 규범인데, 그 말도 안 되는 다양하고 야비한 해석으로 한 인간을 한 순간에 멍텅구리로 만들어 버리는 뱀의 혀를 가진 자들에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정직하면 손해 본다라는 말이 괜히 세간을 떠돌아다니는 것은 아닌가 보다. 정직하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아무 문제 일으키지 말고, 노동자로서의 삶을 영위해 가며 살아가라는 것 자체가 그들이 원하는 통제하기 쉬운 사회적 그림이지 아니한가?


무전유죄 유전무죄

전의 유무 여부가 죄의 유무를 판단하니,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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