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편안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성향에 빗대어 그것에 부합하게끔 환경을 조성해주면 된다. 하지만 개인보다는 집단생활을 중시하는 공동체 생활이라는 것을 하다 보면,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개인의 성향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와 반대로 타협과 공존 없이 개인적 성향만 내세운다는 것의 의미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타인에게 내적 불협화음을 증대시켜 또 다른 갈등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처럼 모든 개인은 본인이 본인다워야 정서적 안정과 마음의 평안을 이루게 될 것인데, 외부 환경의 지속적인 간섭과 자극으로 인해 내적 마찰 압력이 점차 높아지게 되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매 순간 겪어야만 하는 산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다수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은 통념을 서로 공유하며 서로의 경계선을 지나치게 침범하지 않도록 암암리에 약속을 지켜가며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대 사회의 실정이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만 한다. 개인의 성향과 맞는 직업을 유지하고 있는지, 혹은 그러한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인간은 20대를 전후로 경제적 독립을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20년 혹은 그 이상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성향이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였기 때문에 경제 활동의 쓰라림을 미처 제대로 방어할 틈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속사포로 때려 맞는다. 비록 직무 적성 검사나 개인 성격 유형 검사 등을 진행하여도, 그것 역시 개개인이 모두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는 80억 세계 인구의 성향 그룹화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적 성향이 큰 충돌음을 일으키게 되면 공황 장애, 우울감, 스트레스, 짜증, 분노 등등 전방위적인 압박으로 인해 삶의 질은 떨어지고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는 이 공간을 탈주하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목줄과 얼기설기 엮여있는 사회적 빚쟁이들 덕에 좀처럼 본인의 성향대로 움직일 각오를 다지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때 바로 필요한 것이 남보다는 자신을 이해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나의 성향은 무엇인지, 내 꿈은 무엇인지, 나의 생각을 실행할 의지와 투지는 있는지.
사람의 성향은 바뀌기 힘들다. 아니, 바뀔 수 없다는 편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바뀔 수 없는 것보다는 바뀔 수 있는 요소와 환경들을 스스로 바꿔나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단순히 나 자신이 원하고, 성취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향과 능력을 세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원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백세 시대에 인생의 황금기를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으며 불편하게 버텨나갈 것인가? 서두가 길었지만 나의 성향을 가장 잘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 환경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곳이 가시밭길이더라도 당신의 마음은 더 이상 힘들지 않을 것이다. 맞춤복은 기성복처럼 대량 생산으로 미리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나만의 맞춤복을 원한다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을 너무 짓누르며 무시하지는 말자. 누구든 무시당하면 기분 나쁘고, 불쾌하기 마련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