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용자와 법지킴이 사이의 괴리감
법이 계층을 초월하여 공정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비판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고질적인 문제이다. 이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포착하는 표현이 바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냉소적인 구호이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법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과거 대비 과연 얼마만큼이나 공정과 상식의 궤도로 진입하였을까? 그들이 알고 있는 공정과 상식은, 우리네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공정과 상식과 다른 의미일까? 법 개혁의 필요성은 법 시스템이 정의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특정 계층의 이익과 논리를 반영하는 구조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우리네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야욕과 욕망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그 부조리와 자기 편향적인 판단과 선택들은 그냥 그렇게 그들과 우리네들이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그렇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법 개혁이 절실한 첫 번째 이유는 법 시스템 자체가 일반 대중을 배제하고 기득권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설계되었다는 데 있다. 그 내용 자체가 법에 생소한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러한 배타성은 법률 용어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려운 용어와 한문의 사용은 법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장벽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복잡한 방식과 생소한 업무의 구조는 특정 전문가 집단에게 직업 보장을 제공하는 안전한 수단이 되었다. 법의 지식과 해석 권한이 소수에게 독점되면서, 무지에서 오는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세상사 이치와 마찬가지로, 법의 영역에서도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모르는 만큼 못 보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법의 모호성을 제거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법 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이다.
법 시스템의 불공정성은 법률 자체의 모호성을 넘어, 법을 집행하는 주체들의 행태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검사, 판사 등의 직책은 특정한 조건을 통과하면, 특별하고 거대한 권력을 자신의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일반 서민들과는 별개로 죄지은 자들을 심문하거나 판결할 수 있는 권능을 쥐어줌으로써, 그 권세를 합법적으로 사용할 권한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일지라도 그것을 검은 의도로 쓰려고 한다면, 양면성의 법칙에 따라 그 기술은 옳지 못한 성질의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법을 아는 만큼 잘 지키면 좋을 텐데, 자신들이 아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법을 이용하고, 개인적,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부정한 무리들에 의해, 우리네들이 알던 공정과 상식의 세계는 그들만의 해석과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비정상적인 사리사욕 집단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는 우리네들이 정의롭다고 믿는 법 집행이 공익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연유로, 권력층은 때때로 이치와 논리에 맞지 않는 기득권세력들의 횡포를 행사하는 집단으로 간주된다. 법이 공정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법이용자들에 의해 오남용 될 여지가 크다. 이러한 기득권 세력의 논리와 횡포를 근절하고, 법 집행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만, 과연 이 사회가 그것을 허용할는지 의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법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오명을 오래도록 벗어낼 수 없을 것이다.
법적 불평등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불평등, 즉 계층사다리, 그리고 부와 권력의 대물림 현상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우리네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에는 명백히 서로 다른 출발점이 존재하며, 법의 불공정한 적용은 이 차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자원의 한정성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경쟁은 필수적이며, 누군가는 반드시 굶주려야 한다는 끔찍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쟁에서 기득세력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차이는 극명하다. 넘쳐나는 원조를 받으며 다양한 교육을 받는 차세대 기득세력의 삶과, 공부를 하고 싶어도 생계에 치여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불우한 개인, 혹은 제대로 된 원조나 방향성 제시를 받지 못하여, 그 부모들이 살아왔던 삶을 비슷하게 이어가고 있는 평범한 노동자의 삶이 그러한 것이다. 이는 다른 출발점과 걱정의 깊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은 법적 분쟁에 직면했을 때도 최상의 방어 수단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그러한 여유조차 없다. 법 개혁은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이 법 적용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모든 시민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법의 불공정성은 자칫 시민들의 삶 전체를 억압하는 구조적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피지배계층을 억류하기 위한 창살 없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불평등한 처사이다. 이 자본주의 사회 구조 안에서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며, 본인들에겐 그다지 큰 선택권이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개인이 무언가를 바꾸고 싶더라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강한 억눌림은 개인에게 떨쳐낼 수 없는 무력감을 선사한다. 법이 기득권의 논리를 옹호하고 횡포를 묵인하는 도구로 전락할 때, 개개인은 자신의 삶이 남에 의해 결정되는지도 알게 모르게,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답답함을 호소하며 탈출할 수 없는 괴로움에 흐느낀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 풀리는 이유는 상상외로 간단하다. 바로 우리네들의 삶은 항상 선택과 결정을 기다려야 하며, 다음 단계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나에게는 없는 결정권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거대한 집단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필요조건이다. 이러한 창살 없는 감옥의 논리를 오롯이 깨뜨릴 수는 없겠지만, 시민들에게 이 사회가 지향하는 공정과 상식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분위기는 개인들에게 자그마한 안도의 안식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법이 더 이상 기득권들의 리그나 횡포의 수단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불명예를 벗어내 버리고 보편적인 정의와 공정성을 실현하는 사회의 근간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법의 모호성을 제거하고, 권력의 사유화를 막으며,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오는 불공정함에 대해서 모든 이에게 동등한 법적 보호를 제공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법 존재의 원래 취지이다. 하지만 과연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이러한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강한 염증이 올라온다.
법을 이용해 먹으라고 만들었던가?
서로 지키자고 만든 것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