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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May 13. 2022

Ep 1: 출생

세상에 태어나는 것

1983년 02월 어느 날 저녁 17시 10분경, 

글쓴이는 우량아의 몸으로 강원도 원주 소재 기독병원에서 자연분만으로 출산되었다. 어머니께서는 허벅지 핏줄이 다 터질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느끼셨었을 음에도 나의 출생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고 한다. 아직 자식이 없는 입장에서 그 감정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아직도 가끔씩 나를 출산하실 때의 무용담을 말씀하실 때곤 나오는 어머니의 얼굴 표정에서 그때 당시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듯하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이렇게 4 가족으로 구성되어있는 전형적인 핵가족 형태이다. 현재까지 부모님의 과거사를 속속들이 들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아버지는 집안의 막내로 불우한 집안 형편에 둘째 큰형 밑에서 눈칫밥을 먹어가며 자라온 이야기를 언뜻 하시곤 하셨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도시락을 싸올 형편이 안돼서 점심시간에 수돗가로 달려가서 혼자 물을 마시며 주린 배를 채우거나 막걸리 양조장 근처에 가서 막걸리를 만들고 버린 찌꺼기들을 주워 먹다가 알싸하게 취했다는 등 현시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어려웠던 생활을 경험하셨던 세대이시다. 그래서 아버지는 꿈도 소박하셨다. '우리 가족 쌀밥 먹이기', '술은 소주 이상만 마시기', '아파트 사기'등등 이셨다. 지금으로썬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이지만 그 꿈에서 견줘볼 수 있듯이 그 시대상 가난의 설움이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아버지는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11월 24일에 출생하셨다. 친할아버지께서도 한창 전쟁 중인 피난길에 아이를 만드는 행위를 하셨으니, 참 대단하신 분이란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서울 한남동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셨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성인이 되어서 들어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슬픈 과거가 있으셨던 것 같다. 부모님이 어린 시절 이혼하셨고, 다른 지인의 집에 입양되어 그곳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성년이 될 때까지 지내신듯하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두 분이 눈이 맞으셨고, 그렇게 결혼을 하셔서 살림을 차리셨다고 한다. 신혼 초기에는 양가 모두 기댈 곳이 없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궁핍하여 지금은 없는 사글셋방을 구해 숟가락 2개와 이불 한 보따리로 살림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누나는 나보다 4살이 위인데, 한 번은 누나가 갓난아기일 때 열은 치솟는데 약국 문은 통금으로 모두 닫히고 병원 갈 돈은 없어서 펑펑 울며 목숨줄을 운명에 걸으셔야 했던 과거사를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하셨는데,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얼마나 절망적이고 끔찍할지 상상조차 해보기도 싫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고 글쓴이가 태어날 때쯤에는 한국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부모님 가정도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계셨다. 더 이상 쌀이 떨어져서 굶을 걱정도 없으셨고, 원주에 조그마한 아파트도 한채 구입하셨으니, 무일푼에서 시작하셔서 많은 것들을 이뤄내신 시점이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항상 나더러 복덩어리라고 하신다. 그냥 한국 경제가 고성장하는 시점에 겹쳐서 내가 태어난 것이고 부모님도 GDP가 성장하니 더 기회가 있으셨을 뿐이었을 텐데 내가 태어난 이후로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잘 해결되었다며 복덩이라고 아직도 그렇게 좋아하신다. 감사하게도 글쓴이는 부모님이 겪으셨던 처절한 가난과 설움은 크게 느끼지 못하며 성장하게 된다. 기회가 많은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난과 투쟁하시며 가족들을 지키느라 헌신하셨던 우리네 부모님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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