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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May 13. 2022

EP 2: 교통사고

차의 교통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한 것

갓 태어났을 즈음 아버지께서 흡연을 하시며 빌린 봉고차를 운행하시다가 한눈을 팔아 차량 전복사고가 났었다고 한다. 글쓴이는 기억에 없지만 글쓴이 몸에는 남들과 다른 큰 흉터 2개가 왼쪽 허벅지 안쪽과 바깥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때 탑승했던 어른들은 다행히 경미한 부상만 얻었다고 하지만, 몸을 가눌 수 없었던 갓 태어난 아기는 차량 이곳저곳을 부딪히며 상처를 꽤나 심하게 얻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큰 상처로 인하여 어마어마한 출혈이 있었고, 간신히 지나가던 고속버스의 도움으로 제 시간 안에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기에 과다 출혈로 인한 비극을 빗겨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갸녀린 아기 몸에 꽂힌 주삿바늘과 꿰맨 상처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고,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나의 태어난 운이라면 운인 것을.... 한때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꿈이었던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그 꿈을 접어야만 했다. 조종사는 몸에 꿰맨 상처가 있으면 안됐기 때문이다. 스스로 꿈을 포기했던 첫번째 사례였다. 아무튼 다행스럽게도 나는 사고와 관련된 아무런 기억도 고통도 없다. 그저 내 몸에 남아있는 이 상처들로 인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할 뿐이다.


 어머니의 말씀을 빌리면 글쓴이는 4살 때까지 말을 안 했다고 한다. 혹시나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벙어리가 된 건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셨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괴롭히던 수다스러운 누나를 향해 갑자기 한마디를 내뱉었다고 한다.


"아이, 시끄러워!"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확인할 도리는 없지만, 그제야 벙어리가 아님을 확인하시고 한시름 놓으셨다고 한다. 참 독특하지 아니한가?


어릴 적 다리 흉터 콤플렉스로 인하여 반바지를 기피하고 남들에게 흉터를 보여주기가 싫었다. 동네 친구들이 우연히 나의 흉터를 발견할 때곤 그들은 유심히 나의 흉터를 관찰하다가 다리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기 일쑤였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앵무새처럼 어릴 때 교통사고가 난 수술 자국이라고 답변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이 다름을 인지하고 물어보는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트라우마가 생겼었던 것 같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삶을 그렇게 피곤하게 하고 때론 힘들게도 하는 것 같다.


사고의 후유증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어린 시절 내내 소화불량에 시달려야 했다. 대략적인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랬었던 것 같은데 나도 그 이유는 모르겠다. 음식을 많이 허겁지겁 먹는 스타일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아팠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시도 때도 없이 소화가 안돼서 아프다 보니 원기소와 소화제는 나의 필수 약품이었다. 속이 울렁거리면서 눈 커플 쪽이 무언가로 쿡쿡 찌르는 듯한 두통이 항상 나를 괴롭혔다. 그럴 때곤 아버지는 왜 또 아프냐며 화가 난 듯 물으셨고, 나는 아무런 답변도 못하며 그런 물음에 이유 없이 서러웠다.


'누군 아프고 싶어서 아픈가.... 나도 아프고 싶지 않다.'


아이가 자꾸 아프니 속상하셨겠지만, 나는 그런 다그침보다는 위로가 필요했다. 유난히 몸이 약했던 탓일까? 툭하면 어깨뼈가 빠지고, 엎어져서 찰과상을 입는 등 유달리 유약한 유년기를 보낸 것 같다. 부모님께서도 걱정이 되셨는지 어렸을 때부터 끊이지 않고 보약을 먹였음에도 불구하고 잦은 체기는 항상 나를 괴롭히는 암적인 존재였다. 다행히 초등학교 4학년 이후에는 체기가 좀 전처럼 자주 발생하지 않았고, 그때부터는 좀 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만약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공군 비행사가 됐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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