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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May 13. 2022

EP 3: 적응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에 맞추어 잘 어울림

글쓴이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1학년 때부터 성적을 매겨 순위를 공개하였었다. 

그렇게 무한 경쟁 시대로의 한걸음 한걸음을 옮기고 있음을 나 자신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나 보다.


'쟤는 나보다 공부를 못하고, 쟤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고....'


아무리 어린아이 일지언정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느끼고 있었나 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잘하는 아이들끼리, 못하는 아이들은 못하는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패거리를 형성하였고, 덩치가 좋고 똑똑한 아이들의 집단이 우위에 서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약육강식, 유유상종

원주에서 태어나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탄한 생활을 하다가 초등학교 1학년에 안양시 비산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이별이라는 슬픈 감정과 새로운 환경, 친구들과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나를 시나브로 옭매여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끔 했다. 직업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실 때마다 나는 덩달아 슬픔과 걱정 등과 같은 만감에 괴로워하며 고민에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나: "이사 가기 싫어요, 친구들 다시 사귀는 것도 힘들고.."

아버지: "같이 가야 한단다. 나중에는 이사 안 가는 방향도 알아보자꾸나"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정해져 있었지만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서툴게 해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투정 부리는 아이를 달래어가며 우여곡절 끝에 안양시 비산동에 위치하고 있는 군인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그곳에는 나와 항상 함께했던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고, 그 동네 아이들에게 나는 그저 새로 이사 온 낯선 아이로 비춰졌을 뿐이었을 것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하루 종일 아무 말도 못 하고 끙끙거리기를 며칠간 지속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안양에 있는 관양 초등학교에서는 별 탈 없이 잘 적응한 것 같았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니 동네 친구들도 제법 사귀었고, 공부도 열심히 하다 보니 반내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달리기도 잘하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에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평화롭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악몽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강원도 화천으로 전학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3학년에 올라가는 시점에 2년여간 정들었던 곳을 떠나서 또 낯선 이방인의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불현듯 과거의 힘들었던 적응 기간이 떠오르며 그 악몽을 또다시 겪기는 싫었다. 나는 울며불며 가기 싫다고 저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함께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세워놓은 세상은 그렇게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항상 무너지고 새로 세워지기 일쑤였다. 두렵고 힘들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나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소재의 사내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도시에 있다가 강원도 최전방으로 이사를 가니, 모든 것이 불편해 보였고 사람들도 촌스러워 보였다. 집으로 가는 버스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시간마다 탈 수 있었는데 대합실에는 군복 입은 군인 아저씨들이 정신없이 오고 가는 그런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 지나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면 헌병 초소가 하나 나오는데, 군인 아저씨가 항상 버스를 잠시 정차시켜 버스 안쪽을 휙 하고 순찰하고는 버스를 다시 출발시켰다. 그 이후로 10분 ~ 20분가량 더 가게 되면 주택 형태로 된 군인 관사촌이 있었는데, 글쓴이의 집은 버스 하차 후 10분 정도 오르막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스스로 매일 편도 1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등하굣길을 오고 가며 힘겨운 학교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조용히 학교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가운데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가 찾아온다. 한 패거리의 대장처럼 보이는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아이: "너 서울에서 왔다며?"

나: "서울은 아니고, 서울 근처 안양이라는 곳이야."

그 아이: "내가 우리 반에서 달리기 제일 잘하는데, 너 달리기 잘하냐?"

나: "못하지는 않아."

그 아이: "야, 그럼 나랑 한번 달리기 시합하자!"

나: "구두를 신어서 불편한데...."

그 아이: "나한테 질까 봐 그러냐?"

나: "좋아! 달려보자!"



뜻하지 않게 빅매치가 성사되었다. 많은 아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우리 둘은 출발선에 섰고, 나는 그 까불거리는 친구를 이 기기 위해 사력을 다 쏟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너 따위한테 질까 보냐?'


어릴 적부터 항상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상대의 전력을 분석하지도 못했었기 때문에 한편으론 패배에 대한 불안감도 엄습하였다. 그렇게 1:1 경주는 시작되었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달리고 나서 옆이 허전해서 보니, 그 친구는 나보다 몇 보는 뒤쳐져서 헥헥거리고 있었다.



그 친구: "제법 달리는데? 내가 방심했는걸? 한번 더하자!"

나: "그래.."



주변 패거리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나에게 다시 한번 결투를 신청하는 그 녀석을 보고 있자니, 체면이 많이 구겨져서 당황한 듯 보였다. 그와는 반대로 그 패거리에 있던 친구들은 나를 경계의 눈빛에서 선망의 눈빛으로 바꿔 바라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가벼운 나의 승리. 그 녀석이 또다시 신청하면 열 번이라도 달려줄 심산이었다.


그 친구: "야! 너 제법 달린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컨디션이 안 좋네.. 다음에 다시 달리자"

나: "그래. 너도 잘 달리더라."

그 친구: (자신의 패거리를 향해)"얘들아 자리 옮기자! 저기로 이동한다."


그렇게 승부는 결정 났고, 그 녀석은 자신의 패거리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놀이를 계속했다. 그날 이후로 나의 입지는 자연스레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2번째 전학도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다. 글쓴이는 집→학교→학원→집→학교→학원→집의 환상적인 초등학교 3학년의 삶을 가녀린 두 어깨로 지탱하며 꿋꿋이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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