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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May 16. 2022

Ep 4: 후회

이전에 자신이 내린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는 감정

사내 초등학교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갈 무렵,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호출하셨다. 어린 마음에 긴가민가하며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교무실로 향했다.


"똑똑똑"


여닫이 문을 드르륵 열자 선생님들이 문쪽을 쳐다보았다. 선생님들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긴장한 조그마한 학생에게 궁금증이 생긴 모양이었다.


"어쩐 일로 왔니?"

"저는 3학년 ❍반 아무개입니다. 담임 선생님이 호출하셔서 왔어요."

"어, 그렇구나.. 저기 저쪽으로 가렴."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보니 담임 선생님이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계셨다.


"어, JJ 왔구나.. 다름이 아니라.. JJ는 공부도 참 열심히 잘하고, 학교 생활도 잘하는 것 같아서 불렀단다."


'칭찬해 주시려고 부르신 건가?'


어리둥절하고 있던 나를 붙잡고 한참을 칭찬하시더니 갑자기 반 아이중 한 명의 이름을 내뱉으셨다.


"철수라고 알지?"

"네.."


철수(가명)라는 그 아이는 반 내에서 저능아 취급을 당하는 아이였는데,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바지에 똥을 싼 적이 있다고 하여 별명이 똥싸개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아이와 거리를 두며 가까이 지내기를 꺼려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선생님이 말씀을 이어나갔다.


"철수가 수업시간에 적응을 잘 못해서 이렇게 JJ를 불렀단다. JJ는 산수(수학)도 잘하고 그러니깐 방과 후에 철수가 잘 따라올 수 있게끔 지도해 줄 수 있겠니?"

"................"


나는 아마도 온몸과 표정으로 선생님에게 거부감을 표현했을 것이다. 싫었지만 싫다고 말하는 것이 예의가 아님을 알았었기에 선생님께 질문을 하였다.


"왜 저인 가요?"

"JJ는 공부도 잘하고, 철수랑 같은 반 급우이다 보니깐 같은 눈높이에서 잘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단다."

"저는....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이 없는데요?"

"JJ가 선생님이 됐다고 생각하고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 거란다."


이미 확고하게 마음을 궂힌 선생님의 마음을 돌릴 길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를 하고는 결국 선생님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똥싸개랑 친하게 지내다가 친구들이 놀리면 어떻게 하지?'


"선생님, 사실은 철수가 바지에 똥을 싸서 놀림을 당하는데, 저도 같이 놀림을 당할까 봐 걱정돼요."

"그건 걱정하지 말고, 철수를 잘 가르쳐주렴."

"예, 알겠습니다.."


찝찝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렇게 교무실을 나섰다. 그날은 잘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처음으로 들었던 날이었던 듯하다. 잘만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잘하니까 이런저런 것들을 더 해야 한다는 게 어린 나이의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을 듯싶다. 사회생활의 양면성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니었을까?


다음날 조회시간에 선생님은 공개적으로 반 아이들에게 공표하셨다.


"다들 주목! 오늘부터 JJ는 방과 후 철수를 가르치게 될 거란다. 선생님이 없을 때는 JJ가 선생님이니깐 모두 JJ말 잘 듣고 협조해 주도록~"


아무튼 그날 이후로 나는 보이지 않는 감투를 쓰고 약속대로 철수라는 아이를 방과 후에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바쁜 스케줄에 동급생을 가르치는 일정 하나가 더 늘었으니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버스터미널로 정신없이 뛰어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던 어느날, 빡빡한 일정으로 인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놓치게 된다. 1시간마다 오는 버스도 그날따라 더욱 안 오는 것 같았고, 날이 저물어 땅거미가 깔리고서야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듯 나를 붙잡으시곤 따지듯이 물었다.


"왜 이리 늦게 왔니? 걱정했잖니?"

"학교에서 늦게 끝나서 학원도 늦게 끝났고, 열심히 뛰어갔지만 버스를 놓쳤어요.."

"학교에서는 왜 늦게 끝났니?"

"담임 선생님이 같은 반 아이 방과 후 과외해주라고 하셔서 늦었어요.."

"방과 후 과외???"

"네, 산수를 잘 못하는 아이가 있는데, 도움을 주자고 하셔서 방과 후에 가르치고 있어요."

"음..... 가르치는 건 할만하니?"

"별로 하고 싶지는 않은데, 같은 반 친구 도와주는 거라고 해서 하고 있어요."

"하기 싫다는 거니?"

"도움을 주고는 싶지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게 취조 조의 대화를 마친 후 어머니가 학교에 연락을 하셨던 모양이다. 

다음날 등교를 하니, 담임선생님께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며 이제는 철수를 그만 가르쳐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왠지 모를 해방감에 뛸 듯이 기뻤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어머니와의 대화 때문에 이렇게 된 거 같아서 죄책감이 들기도 하였다.


'선생님 얼굴이 화난것 같은데, 어머니께 괜히 사실대로 말했나?'


마음속에 응어리가 생긴 것처럼 담임 선생님께 괜히 눈치를 보게 되었다. 나는 큰 고민 끝에 선생님께서 오해하실까 봐 따로 교무실로 찾아가 전후 상황을 설명하였다.


"집에 늦게 들어가서 어머니와 대화를 했는데 그 대화 때문에 어머니가 학교에 연락을해서 이렇게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JJ는 죄송할 것이 하나도 없단다. 그리고 그런 일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니 걱정 안 해도 된단다."


담임 선생님은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해 주셨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고 하였던가?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나니 선생님 표정도 밝아 보였고, 기분이 한결 나아진 내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혼자서 끙끙 앓기만 하다가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시니 괜한 걱정을 했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는 여느 초등학교 3학년생처럼 다시금 티 없이 웃으며 학교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대화는 모든 문제 해결의 첫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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