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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May 18. 2022

Ep 5: 신뢰

믿고 의지함

어릴 적 부모님의 말씀은 '똥으로 메주를 쑨다'라고 하여도 믿을 정도로 신뢰도가 100%에 가까웠다.

글쓴이는 어려서부터 잔꾀를 부리거나 엄살을 피기보다는 정직과 성실, 깔끔함의 아이콘이었다. 이러한 순진함이 어른들의 눈에는 어리숙하게 보였을까? 어머니는 몇 가지 사건으로 인하여 필자가 덜떨어진 아이인 줄 걱정하셨다고 한다.


첫 번째 사건은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전편에서 설명했듯이 글쓴이는 뛰어난 달리기 실력과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깊고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긴장이 잔뜩 된 채로 저 멀리 손을 흔들어 주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출발선 상에 섰다.


"땅"


경쾌한 화약 신호 총소리와 함께 나는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했다. 중간에 초코파이 바구니에서 초코파이를 하나 집은 후 결승선까지 들어가면 되는 시합이었다.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압도적인 1등으로 달리고 있던 나는 무난히 초코파이를 하나 집어 들고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 신중히 골라 들었던 초코파이였지만 달리던 도중 부스러진 부분이 눈에 보였다. 당시에는 초코파이 포장이 투명했었기에 확인이 가능했다.


'아뿔싸, 부스러진 못생긴 초코파이를 들고 왔네?'

'어쩌지?'


.

.

.


'돌아가야겠다.'


나는 압도적 1등을 뒤로하고 역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응원을 하던 어른들의 눈에는 이해하기 힘든 기이한 관경이 펼쳐지고 있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바구니에 도착하자 2등으로 달리던 아이가 초코파이를 고른 후 결승점을 향해 달려간다. 마음이 조급했지만 아무런 손상이 없는 초코파이를 가져가고 싶었다. 한참을 뒤적뒤적거리다가 마지막 아이가 중간 지점을 출발하자 멀쩡한 초코파이를 포기한 채 다시 결승선을 향해 달렸다. 압도적인 스피드로 꼴등은 면했지만 1등 상은 이미 다른 아이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어머니는 의아하시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들아, 왜 달려가다 멈추고 돌아갔니?"

"달리다 보니 초코파이가 부서져 있었어요."

"초코파이는 중요한 게 아닌데.... 그냥 끝까지 달리지 그랬니?"

"저는 멀쩡한 초코파이를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고요.."


주변 어른들은 앞으론 초코파이가 안 부서지게 잘 놓아야겠다며 하하호호 웃으며 이 상황을 넘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필자는 어릴 적부터 꼼꼼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른들은 이해 못 했겠지만 저 시절의 나에게는 멀쩡한 초코파이가 중요했다. 으스러지고 못생긴 초코파이 더미들이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그때의 감정이 아직까지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해야 하는 이러한 성향은 지금의 차 관리, 집 관리, 잔디 관리, 온갖 정리정돈에 신경을 쓰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두 번째 사건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와 식탁에서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마시면서 발생한다. 며칠 전 옆집 형이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콘프러스트를 우유에 말아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형 우리 집에도 그거 있어, 치킨 그림 그려져 있는 아몬드 후레이크인데 난 맛이 없더라."

"응? 이건 호랑이 그림 그려진 콘프러스트야. 이거 맛있어."


그 형은 정말 맛있다는 듯이 냠냠냠 거리며 먹어댔다.


"그거 맛이 없을 텐데.... 이상하네...."

"진짜 맛있는데? 한 숟가락 먹어볼래?"

"어, 한 숟갈만 줘봐."


한입을 먹는 순간 머리가 띵하며 시간이 잠시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느껴보지 못했던 이 맛은 뭐지?'


더 먹고 싶었지만 남의 것이기에 단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 후 어머니께 전후 상황을 설명하며 다음번에는 반드시 호랑이 그림으로 사다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렸다. 단 것을 많이 먹이기 싫었던 어머니는 생각해보겠다고 하셨으나 이미 신세계를 경험한 나의 입맛은 호랑이 그림 콘프러스트를 계속 갈망하게 되었다. 집요하고 끈질기게 요구하자 어머니는 차선책으로 설탕을 조금 넣어주겠다고 말씀하셨고, 호랑이 그림 콘프러스트와는 똑같은 맛은 아니었지만 그냥 먹는 아몬드 후레이크보다는 훨씬 맛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제안에 수긍하고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스산한 날씨에 몸을 따뜻하게 녹이라며 어머니는 뜨끈한 흰 우유를 식탁에 준비해주셨다.


"JJ야, 우유 마시고 어서 자려무나."

"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계셨고, 나는 식탁에 앉은 채 우유를 작은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마셨다.


'이 시큼한 맛은 뭐지?'

"엄마, 우유가 맛이 이상해요!"


어머니는 내가 잔꾀를 쓰려고 하는 줄 알고 착각하신 모양이다. 잔꾀 자체를 안 하는 거짓 없는 아이였던 것은 잊으셨던 듯이...


"JJ야, 그냥 마시렴"

"마실 순 있는데 맛이 진짜 이상해요.."

"얘가......... 왜 이럴까?"


어머니는 찬장에서 설탕통을 꺼내시더니 무심코 설탕을 한 스푼 섞어주시곤 식탁에 마주 앉으셨다.


"자, 이제 됐니? 다음부터는 설탕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말하렴! 어디서 나쁜 짓을 배웠네.."

"그게 아닌데요.... 알겠어요...."


어머니 심기가 불편해 보여서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네며 만들어 주신 우유를 다 마시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 저 진짜 맛이 이상해서 못 먹겠어요...."

"장난치지 말고 다 먹으렴.. 설탕도 넣어줬잖니? 음식 남기는 거 아니란다!"


어머니의 매서운 말투와 눈빛에 오금이 저려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어머니의 화에 당황한 나는 그만 머그컵에 있던 우유를 식탁 위에 절반 정도 흘리고 만다.


"아..... 죄송해요.........."


한껏 풀이 죽은 나는 눈치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미 엎질러진 우유는 식탁 위를 유영하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성급히 엎질러진 우유 컵을 원래대로 놓으시곤 한동안 나를 말없이 차갑게 쳐다보셨다.


"......................"


한동안의 침묵이 나를 옥죄어 오는 듯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엄마......... 죄송해요....."

"엄마가 먹을 때는 장난치면서 먹지 말라고 말했지?"

"더 따라 버리렴... 더 버려..."


냉소적인 어투로 더 따라 버리라는 어머니의 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살기 어린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엎질러졌던 컵을 잡고, 컵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또르르르륵..."


안 되는 줄 알았지만 최대한 조심히 눈치를 보며 따라내던 중, 어머니가 갑자기 화를 버럭 내시며 내 손을 휘어잡으셨다.


"이게 뭐하는 짓이니? 뭐가 문제니?"

"........."

"엄마가 하라고 해서......"

"너 바보니????"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은 어느새 얼굴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남은 우유는 다 마시렴!"

"네...."


마시는 시늉만 하고 마시기를 꺼려하는 듯 보이자 어머니는 또다시 매섭게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저.. 정말로 맛이 이상해서 다 못 먹겠어요...."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어머니는 내가 들고 있던 우유 냄새를 맡고 맛을 보셨다.


"어머나! 어머나!!!! 우유가 상했네.... 왜 이걸 마시고 있니?"

"우유가 상했으면 상했다고 해야지...."

"우유가 상한 게 뭔 줄 몰랐어요...."

"................"

"어머, 어떡하니, 엄마가 미안하다...."


황급히 냉장고로 가서 우유를 다시 확인하시곤 그 우유를 모두 싱크대에 버리셨다. 싱크대에 우유를 버리는데 뭔가 물컹물컹해 보이는 덩어리들도 함께 나오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부랴부랴 정리를 하시곤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서 식중독으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으니 어서 집에 들어오라고 당황한 듯 통화했다. 나를 눕히시곤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몸은 좀 어떻니?"

"저는 괜찮아요.. 속이 좀 울렁거리는 것 같기만 하고.."

"얼마나 마셨니?"

"맛이 이상해서 몇 모금 안 마셨어요.."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버지는 운전병과 함께 군용 지프를 타고 오셨다. 신속하게 나를 담요로 감싼 후 차에 태운 후 사내면 시내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병원에 문제없이 도착했고 의사 선생님은 나를 진료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꾹꾹 여기저기를 눌러보기도 하시고, 체온도 재보시고, 증상 등을 물어보시더니 다행히 식중독은 아닌 것 같다고 집에 가서 따뜻한 차 먹이고 잘 쉬게 하면 괜찮을 거라는 소견을 주셨다. 부모님은 한시름 놓으셨다는 듯이 표정이 밝아지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연신 미안하다며 앞으로는 더 정확하게 말해줄 것을 당부했다. 나는 계속 정확히 말했다고 대답하자 어머니는 이내 말을 잊지 못하고 미안하다고 하며 나를 안아주셨다. 


병원에서 나오자 아버지가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보셨다.


"배고프면 500ml 흰 우유라도 사줄까?"

"싫어요."


한바탕 소동을 겪고 나니 장난을 치고 싶으셨나 보다. 




 글쓴이는 이 날을 기점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100%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 안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하였다. 어찌 보면 부모님에 대한 나의 무한 신뢰가 깨졌던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아이와 대화를 할 때는 항상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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