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10명,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식적인 사람이 싫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게 답한 이들은 본인 자신 또한 싫어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가식적이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가식이라고 다 나쁜 것일까? 가식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가식적이라고 불리는 것은 최악의 악평과도 같다. 실상은 우리 모두 가식적인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 가식이라는 것의 정도가 많고 적음에 따라 혹은 사회적 통념에 의해 악의와 선의 등으로 구분되는 것에 따라서 많게는 수만 가지까지 분류할 수 있는 것이 가식이라는 것이다. 모든 가식들이 하나 같이 자신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말이나 행동을 거짓으로 고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가식이라는 이 녀석은 우리들의 삶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꼴 보기 싫은 진상 손님이 진상 짓을 하더라도 화를 다스리고 웃으며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는 것부터,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꼬리 치기 위해 술 못 마시는 척 연기를 하고, 시험 준비를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준비했으면서 주변에는 공부 하나도 못했다며 손사래를 치는 행위, 상관의 똥구멍이라도 빨 기세로 무한 충성을 포함한 아부와 아첨을 밥먹듯이 하는 사회생활의 달인, 앞에선 청순한 척했지만 뒤에선 마약 중독과 변태적인 섹스를 탐닉하며 청순가련한 이미지로 광고를 했었던 모 배우..
결국 가식이란 개개 인격체의 진실됨과 거짓됨을 판가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만, 그 의의가 옳지 못할수록 가식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쉬워진다. 인간은 모름지기 태생이 거짓말에 능하고 거짓이 만연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습관처럼 거짓을 내뱉는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모호한 정도의 차이 때문에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연합하여 구성된 타의에 의해 한 순간에 본인이 가식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 우리네들이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세상이다.
모두들 한 번쯤 회사 입사 면접을 하기 위해 귀찮지만 멋들어지도록 이쁘게 꾸미고, 회사의 철학과 인재상 등을 달달 외운 후, 면접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당당하고 밝은 지원자인 척 연기한 적은 없었던가? 온갖 감언이설로 이성을 현혹하기 위해 노력한 적은 없었던가? 소개팅에 나온 못생긴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귀엽다거나 남자답게 생겼다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던가?
진실되고 거짓을 혐오하는 글쓴이조차 기분이 안 좋아도 좋은 척하느라 애를 쓰고, 사회의 분위기를 따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식적으로 예의를 갖추며 사람을 대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다.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 또한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싫은 척했던 경험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모두가 가식적인 이 세상 속에서 나와 결이 안 맞고, 야비해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혹은 그녀를 가식적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아니한가?
물론 글쓴이 역시 야비하고 비열하면서 가식적인 인간은 경멸한다. 하지만 그 이들을 욕해가며 뒷담화하는 것 역시 나의 인격을 갉아먹는 행위임을 명심하자. 우리네들의 아름다운 입을 버려가며 그들을 뒤에서 욕하는 행태 또한 겉으론 착한 척하면서 뒤로는 사람들 호박씨나 까는 그런 가식적인 행위를 하는 것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가식적인 동물이다. 거짓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식으로 포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