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끄적끄적

친구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

by JJ

매캐한 서울의 밤공기를 가르며 세 친구들이 한 식당에 입장했다. 한눈에 봐도 허름한 외관이, 이곳의 전통과 역사를 짐작하게끔 해준다.


"기가 막히는구먼!"
"그러게 말이야! 해장하기 딱 좋아 보이네, 가격도 저렴해 보이고!"
"또, 이 형님이 우리 아우들을 위해 아껴 놓았던 맛집 하나를 이렇게 공개합니다! 하하하"


벌써 거나하게 술을 마셨던 세 사람은 불편한 속을 달래기 위해 해장국 집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모! 여기 선지 해장국 셋이요! 선지는 서비스로 더 주시면 감사히 먹을게요!"
"네! 삼촌들 술은?"
"배부르니깐 소주 한 병만 주세요!"
"무슨 소주?"
"에이, 알면서 능청은~ 늘 마시던 그것으로 부탁해요!
"알겠어요. 단골님!"


제법 친해 보이는 두 사람 간의 대화에 나머지 두 사람은 귀를 기울이다가 이내 밑반찬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쪼로로로록. 표면장력! 사랑하는 만큼! 흘리는 사람은 벌주! 하하하"
"야, 이거 잔 들다가 다 흘리겠어! 잔 위가 볼록해!"
"그럼 맑은 소리로 짠해 볼까? 하하하하하하"
"짠!"
"땡그랑!"
"소리 죽이고, 분위기 좋고, 술맛도 좋고!"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해장국이 나오기도 전에 벌써 소주를 2병이나 비웠다. 한 사람은 그대로 탁자에 머리를 박고는 코를 드르렁드르렁 거리며 자고, 나머지도 혀가 꼬일 대로 꼬여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자웅을 계속 겨뤘다.


"야, 수를 뫄실땡, 좐에 낭기면 쏴냥?"
"무어라귀? 너 웨궤어 곤부허냥?"
"푸하하하하하하"
"너 그 술 안 마시면 내가 이긴그도!"
"그으리애, 난 더 못 마시게 트아, 웩!"
"까부르지 말코, 더 마쇼! 내가 노 조량을 아능데!"


부어라 마셔라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넘겼고, 그들은 술자리를 파하기로 하고 자리를 나섰다.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선 인사불성이 된 친구를 택시에 태워 보낸 뒤, 나머지 두 친구는 무엇이 아쉬웠는지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과 비엔나소시지를 사서는 파라솔 앞에 자리를 잡았다.


"친구야! 오늘 술 지겹게 마셨다. 그렇지?"
"하하하, 역시 해장엔 맥주만 한 게 없지! 짠!"
"벌컥벌컥~ 캬~"
"우리가 친구가 된 지 벌써 햇수로 10년이 넘었네? 세월 참 빠르다!"
"그러게 말이다. 이젠 다들 직장인에 대화 주제도 많이 바뀌었고.."
"근데, 너는 나 믿냐?"
"왜 그러냐? 무섭게? 돈 필요하냐? 친구끼리 돈거래하는 거 아니다! 하하하"
"아니, 그냥 갑자기 우리들이 어떻게 친구가 됐나 싶어서.."
"너는 처음엔 재수 없었지. 근데 알고 보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렇게 서로 연락하며 지내다 보니 벌써 10년이 넘는 우정을 키워갈 수 있었던 것 같고!"
"재수 없기는 네가 더 재수 없었지! 하하하하하. 너 기억나냐? 그때 거기서..."


그렇게 두 친구는 서로의 추억을 안주 삼아 오늘도 술잔을 기울였다.


"오늘은 술이 참 달다. 너랑 마셔서 그런가?"




말하지 않아도 함께하면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던 친구들이 있었다. 세상사에 이리저리 치이고,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며 살아가다 보니, 연락도 뜸해지고 조금은 소원해졌지만 여전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고마운 녀석들이다. 어려운 일이라도 있노라면, 두 팔 걷어 부치고 자신의 일처럼 한 걸음에 달려와주는 나의 벗들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우리들의 왁자지껄한 방랑 생활도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또 결혼을 하면서 점점 그 청춘의 빛깔은 어른들의 빛깔로 변색되어 갔다. 내가 돈을 더 벌면, 친구들에게 더 베풀고 좋을 줄 알았는데, 막상 즐거운 마음으로 베풀려고 해도, 친구들은 나의 베풂이 반복될수록 그 상황에 다소 불편해하는 듯한 내색을 표출하는 듯 보였다. 마냥 얻어먹기에는 미안해서였을까? 경제적 여건에 따라, 친구들과의 취미 생활과 여가 생활에도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어쩔 수 없는 외압에 못 이겨 골프 동호회에 가입하고, 주말만 되면 새벽마다 골프장으로 끌려나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필드를 누빌 밝은 상상을 하며, 조심스레 골프 쳐볼 생각 없냐고 제안해 보았지만 실상은 너무나도 달랐다. 금전적 여유에 따라 친구들과의 놀이 문화도 하향되거나 상향되는 것을 느끼며, 자본주의의 잔인함을 새삼 깨달았다. 자금적 여력이 제각각 틀리다 보니 만남의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결혼을 한 이후에는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회사 모임이 있다는 이유 등으로 가뭄에 콩 나듯 여러 번의 조율 끝에 근근이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친구 다 필요 없다! 가족이 최고다!"


친구들이 없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나의 십 대, 이십 대에는 반복되던 아버지의 저 말씀이 귀에 전혀 들어오지도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을 만나느라 집에 붙어있지 않던 나를 못마땅해하시며 귀가 따갑도록 내뱉으시던 잔소리였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제는 저 말씀이 맞다고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서럽기도 하지만, 나보다 이삼십 년은 족히 먼저 이러한 경험을 하셨을 아버지의 경험담을 귀담아듣기 싫었던 모양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것에는 '때'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 그때가 조금은 일찍 혹은 조금 늦게 올 수도 있겠지만 서로 간의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때는 반드시 지나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자식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으니,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다해보라고.


사귐을 가질 때
우정을 키울 때
친구를 지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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