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끄적끄적

위로의 방법

남들 다하는 똑같은 말은 위로가 될 수 없다

by JJ

스토리가 뻔히 들여다 보이는 영화를 보는 것은 즐겁지 않다. 시간과 돈을 허비했다는 느낌은 둘째 치고, 전혀 감흥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뻔한 스토리와 뻔한 결말은 그 누구에게감동을 주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지만, 축하와 위로를 전하는 방법은 그 수단이 상당히 정형화돼있고, 획일적이다.


"축하드립니다."
"꾸물이의 100일을 축하합니다!"
"앞으로 더 꽃길만 걷자!"

"많이 놀라셨겠어요. 빠른 쾌차를 기원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이 힘들지? 뭐라 전할 말이 없다. 나중에 술이나 한 잔 하자."


뻔한 저 말들은 축하의 분위기에서는 그나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에너지가 극도로 다운되어있는 부정적인 분위기에선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일반적인 위로의 대화들이 당사자들을 더욱 피곤하고 지치게끔 만든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조금만 더 자세히 알아보면 당사자들과 좀 더 심도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네들은 상대적으로 편하고 쉬운 형식적인 문안인사를 쉼 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똑같은 음악을 1000번 이상 계속 듣고 또 듣는다면 그 피로감은 얼마나 클까? 그 반복적이고 획일적인 인사치레를 수백 번 듣는 당사자들 또한 사람들의 얼굴만 바뀌는 비슷한 말들의 향연으로 인하여 형식적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되뇌고 또 되뇌고만 있을 것이다.


지속되는 감정 피로도 상승으로 본인의 마음은 살필 시간도 없는 위로 당사자들의 마음은 아마도 다음과 같지 않을까?


'또, 저 소리군..'
'그만 듣고 싶다. 똑같은 물음과 답변만 벌써 몇 번째인가?'
'그냥 차라리 날 좀 가만 내버려 둬! 나도 내 마음을 위로할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야."


돈이 전부가 아닌 뜻깊은 위로의 말을 전달하고 싶다면, 위로를 전할 상대방에 대해 심도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자.


위로 당사자가 지겹게 들었을 것 같은 심기를 건드리는 위로의 말은 하지 말자.

위로 당사자의 사건의 경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말실수를 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자.

위로 당사자의 입장에 선 후, 진정으로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 보자.

이도 저도 모르겠다면, 그냥 가만히 들어주자.


항상 주변 지인들이 힘겨워하거나, 슬픔에 사로잡혀 있을 때곤, 나는 그저 조용히 그들이 먼저 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또 기다려줬다. 혹여라도 아무 말도 하기 싫어 보이면, 그냥 편안한 주제의 대화로 산책을 시작하였다. 간혹 나에게 비슷한 경험 사례라도 있노라면, 꺼내보여 주기 싫은 나의 경험을 선뜻 그들에게 공유해 주기도 하였다. 나의 숨겨진 치부를 그들에게 들려준다면, 그들 역시 쉽게 공유하기 힘든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나에게 공유하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 속 이야기들을 듣고 또 들음으로써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였고, 남들은 해주지 못했을 것 같은 진심 어린 위로와 조언의 말을 조심스럽게 전달하였다. 대부분의 상대방은 이런 위로와 고민상담은 받아본 적이 없다며 고마워하였고, 동시에 획일적이고 상투적인 위로와 조언들에 대해 불평불만을 토로하였다.


위로도, 칭찬도, 조언도 잘해줄 수만 있다면, 그 감동의 물결은 배가 된다.


대부분의 위로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많이 해소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건의 본질을 속 시원하게 공유할 만큼 믿음직한 사람이 내 주변에 많이 있지 않다면,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할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에 사무치게 될 수도 있다. 아마도 이러한 현실은 삭막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들의 현실에 대한 반증일 수도 있다. 주변을 돌아보고, 오늘 내 주변에서 힘겨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집중해보자. 그리고 운이 좋아서 그들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들의 이야기 안에서 그들에게 들려줄만한 나만의 이야기를 보태어보자.


마음의 대화는 마음으로 하는 거야.
머리는 잠시 거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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