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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Aug 09. 2021

기대만큼 실망도 컸던 심리상담

심리상담에 대한 개인적인 오해

불면증이 내 마음까지 갉아먹어 엉망이 되었을 즈음, 친한 친구의 소개로 심리치료사를 만나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기대가 컸다. 심리상담 전문가이니 나도 모르는 나의 내면을 읽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금요일 저녁에 소개받고 바로 다음 주 월요일 오후에 만났다. 처음 만난 선생님은 차분하고 따뜻한 인상이었다. 전화통화로 통성명은 했지만 처음 얼굴을 보는 지라 정식으로 인사하고 간단한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첫인사를 마치자 선생님은 나를 방으로 인도했다. 조금은 어둡고 한쪽에 긴 소파가 있고, 소파 앞과 뒤에 편안한 의자가 하나씩 놓여 있는 방이었다. 


선생님은 소파에 누워도 되고, 그냥 의자에 앉아도 된다며 내가 가장 편한 자세로 있기를 권했다. 몸이 피곤해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소파에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냥 선생님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선생님은 상담을 진행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알려주었다. 1회 45분이 기본이며,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기면 상담을 받지 않고도 1회 비용을 내야 하는데, 하루 전에 미리 연락하면 괜찮다는 내용이었다. 브리핑을 마친 후 선생님은 내 얘기를 듣고 싶어 했다. 워낙 믿고 의지했던 친구가 소개해준 분이기도 하고,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하는 걸 불편해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다. 불면증이 시작한 날부터 선생님을 찾게 되기까지 내게 일어났던 변화와 혼란을 가능한 한 상세하게 설명했다. 선생님이 나를 잘 이해해야 나에게 딱 맞는 심리 처방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45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거의 나 혼자 떠들었다. 선생님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얘기를 하다 만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약속한 45분이 다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매주 월요일 4시에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지만 첫 만남을 한 다음 주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상담 장소에 가려면 약 1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오후가 되면서 가라앉기 시작한 몸은 영 회복할 기미가 없었다. 미리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자연스럽게 다음 주 월요일로 약속이 미뤄졌다. 그 다음 주에도 컨디션이 엉망이었지만 또 약속을 미루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꾸역꾸역 약속장소에 갔다. 


상담은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주로 나 혼자 떠드는 형태로 진행됐다. 에너지가 바닥이라 말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안간힘을 쓰며 말하다보니 입이 바짝 마른다. 그러는 동안 45분이 훌쩍 지나버렸다. 왠지 모를 허탈감이 밀려왔다. 나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내 안에 어떤 불안감이 있다는데, 나도 모르는 그 불안을 전문가는 꿰뚫어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선생님이 저를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해요. 그런데 시간이 다 되었으니 다음 주 약속을 미리 당겨쓰면 어떨까요?”


정말 궁금했다. 45분씩, 두 번의 상담으로 나를 완전히 알 수는 없겠지만 전문가니 조금은 나에게 해줄 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음․․․․․․, 지금은 참아보고 다음번에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들을 때는 살짝 서운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참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난 성격이 급해서 잘 참지를 못한다. 생각하면 바로 실행에 옮겨야 했고, 그런 성격이 일을 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불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조급함이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선생님도 그걸 알기에 참아보라고 조언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단 한마디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선생님은 역시 전문가라는 생각이 들며, 이후 상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이후 3번을 더 선생님을 만났다. 세 번째 만남에서는 솔직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요청했다. 


“제가 상담치료를 받는 이유는 저도 모르는 내 안의 불안감을 찾아내고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입니다.”


그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역시 또 나 혼자 내 얘기만 잔뜩 늘어놓다 상담이 끝났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상담치료를 계속 해야 하나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당시 나로서는 약속시간에 맞춰 1시간가량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힘들다고 포기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질 것이란 불안감과 상담을 통해 지금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으리란 기대감으로 어떻게든 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렇게 힘들게 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45분 동안 나 혼자만 떠들고 끝나니 허탈하기도 했다. 

3번의 상담을 마치고 이미 마음은 그만 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만 하겠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처음 만남에서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혹시 상담을 끝내고 싶으면 꼭 만나서 이야기해주세요. 말하기가 어려워서 문자로 대신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맞는 말이고, 문자가 아닌 직접 만나 말하는 것이 예의다. 하지만 4번째 만남에서도, 5번째 만남에서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4번째와 5번째 만남에서는 선생님이 중간 중간 질문을 해 완전히 일방적으로 나 혼자 떠든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여전히 듣지 못했다. 결국 그 다음번 만남에서 정말 힘들게 상담을 그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나를 도와주고 싶다며 진심으로 만류했지만 나는 ‘지금은 누군가와 내 문제를 공유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볼 때’라며 선생님의 걱정스런 눈빛을 외면했다. 


나중에 심리상담은 원래 내담자가 이야기하고 상담자는 듣는다는 것을 알았다. 상담자는 의사처럼 어떤 구체적인 치료법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또 다른 단면을 알아차리게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상담사가 불면의 원인일 수 있는 나의 불안감을 없애주기를 기대하고,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고 그만두겠다고 했으니 민망하고 미안하다. 


좀 더 꾸준히 심리 상담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성격상 할 말을 잘하지 못하거나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심리 상담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고,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난 꼭 심리 상담이 아니더라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기 일처럼 아파할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두는 성격도 아니고, 체면이나 허세 때문에 속에 있는 아픔을 꽁꽁 속에 숨겨두지도 않는다.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는 성격이다 보니 심리 상담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심리 상담을 그렇게 짧게 끝낸 것에 후회는 없다. 혹시 몸 상태가 좋았다면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혼자 말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심리 상담이라면 글을 쓰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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