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런치를 다시 꺼내며
오랫 동안 잊고 있었다. 잊을만큼 신경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이다. 글 창고로 쓰는 블로그는 따로 있으나 창고는 창고일 뿐 마당은 될 수 없고 곳간에 넣은 곡식은 그저 곡식일 뿐, 맛있는 밥상으로 차려질 리 만무하니까.
먼지를 털고 거미줄을 치고, 브런치를 만들어 보자. 창고와도 다르고 소셜 미디어와도 다른 뭔가를 찾아 '브런치'를 즐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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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도그마는 도전받는다. 그 도그마가 얼마나 옳든 그르든 그것과는 관계가 적다. 그 도그마가 얼마나 신성한 가치가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것과도 무관하다.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이든 독립운동에 대한 폄하이든 이순신에 대한 모욕이든 세종 대왕에 대한 불경이든 다 마찬가지. 그저 그것이 사실이면 수용되고 거짓이면 산산이 가루져 공중에 흩어질 뿐.
"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게 하라. 누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된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진리의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밀턴의 말이다. 하지만 대개 권력자들이나 도그마의 엄중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은 이 말에 반대한다. "철모르는 소리! 그것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들인데."
나아가 심지어 자신들의 도그마에 그리 위배되지 않는 주장이나 예술 작품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몽둥이를 드는 일도 발생한다. 그 배경은 역시 도그마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절대화하고, 그 절대성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넘치는 정의감으로 응징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 한 예가 1964년 12월 18일 반공법으로 입건된 이만희 감독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반공영화로 만든 <7인의 여포로>에서 인민군이 "멋있게 나왔다는 이유" 그리고 "인민군이 여자들 성폭행을 막기 해 중공군을 쏘아 죽이는 설정 자체가 불온"하다는 이유로 기소된다.1964년 당시의 반공 도그마는 고작 그 정도의 설정조차 용납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4.19 때, 그 혁명적 분위기에서도 "빨갱이도 싫고 이기붕도 싫다."고 데모하던 나라고, 80년 광주에도 김일성 오판말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던 나라다.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수시로 제2의 한국전쟁을 가상하고 살던 나라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는 신성불가침의 도그마였다.
다시 한 번 그게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절대 '교리'는 도전받게 돼 있고 희화화될 수 있을 뿐더러, 스스로의 내부에서 자기 분열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나는 7,80년대의 불바다가 이뤘던 민주주의 쟁취의 역사, 그 자랑찬 과거의 가치가 도그마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드라마 <설강화>에서 일어난 논란에 마음이 무겁다.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를 가로막고 중지시키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80년대의 역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은 폄하할 수도 있고 왜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진실의 편에 서지 않은 이상, 그 삐딱선들은 궁극적으로, 장기적으로 힘을 가질 수 없다. 80년대 희생자들의 아픔이 살아 있는데 어떻게 그런 것을 좌시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일면 공감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의 비참함을 겪은 이들의 고통 역시 살아 있는데 그들이 우리더러 다른 생각을 금한다면 뭐라 말할까.
정부가 검열하는 것하고 자발적으로 국민들이 중단과 금지를 호소하는 것과 같으냐 하는 문제 제기도 있었지만 그 기저와 발상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설강화 사례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은 쉽사리 '민의'를 조작할 수 있다. 더하여 민의 또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황우석 사태 때 MBC를 압박한 것은 정권이 아니라 민의였다. 건전한 민의를 형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인 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민의'에는 도저히 찬성하기 어렵다.
<7인의 여포로 사건>과 설강화... 유튜브로 만들어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ojOpOBpVda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