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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민 Nov 16. 2022

은비령 가는 길

은비령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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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麟蹄)는 기린의 발굽이라는 뜻이다. 이 기린이란 아프리카에 사는 목 긴 기린이 아니라 일종의 영물에 해당하는 전설 속 동물이고 ‘기린의 발굽’ 하니 뭔가 그럴싸한 사연이 있어 뵈지만 내력을 따지면 피식 웃음이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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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고구려 시대에는 저족(猪足)현이라고 불렸다. 즉 돼지 족발이라는 뜻이다. 신라 때 희제(狶蹄)로 바뀌었으나 같은 의미였고 고려 시대에 들어서서야 돼지 족발 고을을 면하고 인제라고 불리게 된다. 이름만 놓고 보면 돼지가 기린이 됐으니 팔자(?)를 고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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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발굽 제(蹄)자가 빠지지 않는 것은 인제가 생긴 모양이 남북으로 길쭉하고 폭이 좁아 초식동물의 발굽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남북으로 길다 보니 북한과도 맞닿고 남으로 홍천까지 뻗는다.  그렇다면 사통팔달의 교통의 요지가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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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이는 전국 2위 (1위는 홍천)이지만 인구밀도는 가장 적은 곳이고 길쭉한 족발 모양 땅에는 천 미터 이상의 산들이 오와 열을 지어 서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병풍같은 산들 사이로 그나마 오를만한 틈을 찾아 고갯길을 냈고 그 칼날 같고 실낱같은 길 위에서 끊어지지 않는 삶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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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통행으로 다져진 고갯길은 거미줄처럼 기린 발굽 곳곳에 닿았으나 세월이 가고 바퀴 달린 차들의 도로가 뚫리고 산 아래로 터널이 나면서 빠르게 잊혀져갔다.  발걸음이 낸 길은 발걸음이 끊기면 금세 시든다.  애써 찾지 않으면 찾기조차 어렵고 더듬어 살피지 않으면 있었던 것조차 잊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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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찌르는 산들로 둘러싸인 이 기린의 발굽 고장에서 어디 그런 길이 한 둘이었을까. 이 길들을 모아 다듬고 새로이 이름을 붙이고 이정표를 만든 것이 인제 천리길이다.  그 중 ‘은비령길’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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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비령(隱祕嶺)은 지도에 나오지 않는 이름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이는 1997년 현대문학상 중편 부문 수상작인 이순원의 <은비령>의 공이다. 소설 속에서 “한계령에서 가리산으로 사는 길”로 묘사되는 이 은비령은 소설 속에서 강원도 산골로 공부하러 들어온 두 고시생이 자기들끼리만 지어 부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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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명은 행정고시에 패스하여 공무원이 되고 한 명은 고시 작파하고 문단으로 나선다. 하지만 공무원은 격포 여객선 침몰 참사의 희생양이 돼 아내와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났고 작가는 가정 불화로 아내와 별거하고 있다.  이 작가와친구의 미망인(이 단어를 쓰기 싫은데 대체할 단어가 없다)은 우연히 조우한 뒤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키워가게 되지만 맺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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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을 사랑하는 사람들> 팀에 끼어서 더듬은 답사길은 소설 속 내용과는 반대로 ‘가리산에서 한계령 가는 길’ 코스였다.  초입의 시멘트 길을 벗어나면 곧 사람 둘도 어깨를 부딪쳐야 지나는 소로(小路)의 산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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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고개를 넘으면 한계령이 나오고 한계령을 넘으면 영동 지역이다. 한계령의 위명에 눌려 한자 이름도 없이 ‘큰눈이 고개’ 정도로 안내서에 적힌 이 고개는 이순원의 소설 덕에 오늘날 근사한 이름을 덧쓴다.  소설 속에서 두 고시생 친구는 꽤 낭만적이었다. 둘은 고개 이름 뿐 아니라 은비‘팔경’까지 선정해 둔 것이다. 



 제 1경은 삼형제봉과 주걱봉, 가리봉을 병풍처럼 우뚝 막아선 ‘삼가주병풍’ 2경은.은비은비(隱秘銀飛)라 하여 은비령의 눈 내리는 풍경, 제3경은 마을 서쪽 한석산에 지는 저녁 노을인  한석자운(寒石紫雲)을 꼽았다. 제4경은 맑은 날 아침에도 걸쳐지는 우풍재의 안개, 풍령무진(風嶺霧陣), 제5경은 가리봉을 주봉으로 한 가리산의 가을 단풍,가리추단(佳里秋丹) 제6경은 필례골의 흰 돌 틈 사이로 가파르게 흐르는 여울,필동옥천(筆洞玉川), 제7경으로 장작으로 밥을 지을 때 피어오르는 그들의 공부집의 저녁 연기,은자당취연(隱者堂炊煙), 마지막 8경으로는 맨눈으로도 밤하늘의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은궁성라(銀宮星羅)였다.   (소설 <은비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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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비령길을 넘으며 우리 일행은 은비령길 제5경의 초입을 즐긴다. 단풍 일찍 드는 당단풍나무는 소설 <은비령>에서 주인공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바람꽃같은’ 두 여자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가을 나그네들의 평정을 깨고, 어떤 은행잎은 노란 물 뚝뚝 떨어지듯 샛노란 봄꽃처럼 가을을 빛낸다. 봄에는 흐드러지게 하얀 꽃을 휘감았던 벚나무는 가을 바람에 붉은 치맛바람을 일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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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가을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소설로 생명을 얻고 이제는 사람들의 입에도 붙은 은비령길의 가을은 가히 ‘은비팔경’의 하나라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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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눈이고개, 즉 은비령 마루에 오르는 막판 비탈길은 좁고도 급하다. 이곳 화전에서 밭 일구던 화전민 아버지가 인제읍내나 양양 항구에 나무며 곡식이며 팔러 나갔음직한, 그리고 장터에서 진귀한 물건 괴나리봇짐에 싸고 고등어 몇 손 소금에 절여 돌아왔을 듯한 외길.  어쩌면 조선 후기의 무인(武人)으로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했던 무사 백동수가 무과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얻지 못해 인제에 파묻혀 살 때 무예를 연마하며 종횡무진으로 달렸을 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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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한국군 11사단이 가리봉 거쳐 한계령으로 진출하여 백담사 일대의 중공군을 몰아내고 설악산을 우리 땅으로 만들 때, 병사들의 거친 군홧발과 숨소리를 담아냈을 협로.  번다하지는 않아도 끊임은 없었을 사람들의 발길 위에서 저 단풍은 몇 하늘 몇 해를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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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은비령>에서 주인공과 그가 연정을 품은 죽은 친구의 아내 선혜는 별 관찰하러 왔다는 사내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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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일이란 일은 모두 2천 5백만 년을 한 주기로 되풀이해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2천 5백만 년이 될 때마다 다시 원상의 주기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2천 5백만 년이 지나면 그때 우리는 윤회의 윤회를 거듭하다 다시 지금과 똑같이 이렇게 여기에 모여 우리 곁으로 온 별을 쳐다보며 도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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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근거도 없고 어느 종교의 신화에도 나오지 않는 숫자 2500만이지만 그 숫자 정도 거치면 웬지 그렇게 돌고 돌아서 다시 이 은비령길에 설 것 같기도 하다. 그 동안 각양각색으로, 또 다양한 장소에서 2천 5백만의 세월을 잇는 생명들의 릴레이를 펼쳐 나가겠지. 지금 내 앞의 나무들이나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 눈 앞을 요란한 소리 내며 날아가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던 장수말벌 한 마리도 어쩌면 그 윤회의 나날 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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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비령길은 종착점이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듯, 우리의 살아가는 여정도 끝이 있되 끝이 없지 않을까.  그래서 2천5백만년쯤 뒤에는 내 주변 사람들과, 아내와 아이들과 다시 마주하는 굽이에 들어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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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허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숫자 ‘2천5백만’이지만, 소설 속 별 보는 사내에 따르면 화성의 위성을 처음 발견한 미국의 천문학자 홀이 즐겨 쓰던 유머라고 한다. 어느 날 홀은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주인인 중년 부인에게 위 얘기를 능청스럽게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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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사값은 2천5백만년 뒤에 드리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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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중년 부인은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 “외상으로 해 드리죠. 그런데 2천5백만년전에도 똑같이 외상하셨을 테니 그 돈은 주셔야겠어요.” 천문학적 숫자 앞에서 문득 감상에 젖는 2022년 가을의 한 중년 사내의 감흥을 깜찍하게 깨우는 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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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천5백만년이든 2억 5천만년이든 무엇으로 이어지든 말든 그저 소중한 것은 오늘일 뿐이다. 은비령 넘어 필례골로 내려올 때 만나는 필례약수, 한때 철분 많고 몸에 좋기로 이름났던 필례 약수가 필례 온천이 생기면서 못먹을 물이 돼 버린 것처럼, 짧은 우리 삶 동안에도 경천동지와 상전벽해는 수시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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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칫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찰나와 순간의 무게는 2천5백만년의 질리도록 긴 세월만큼이나 무겁고도 중하다. 어제 술 먹으면서도 한 선배가 그랬다.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내가 술 살 수 있는 사람들,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시간을 늘리는 거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공감이다.  ‘술 얻어먹을 수 있는 사람들’만 추가하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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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2022년 10월도 가운데가 접혔다.  짧은 가을이 우리 앞을 줄달음쳐 지나가고 있다. 이제 또 다른 겨울이 오고 또 다른 봄이 오리라.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갈 수 있는 길을 가며 볼 수 있는 풍경을 많이 눈에 담아 두리라. 소설 속  그들만의 고개 ‘은비령’에서 선을 넘지 못한 사랑의 끝을 보내는 주인공의 독백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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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2천 5백만 년 전의 생애에도 그랬고 이 생애에도 다시 비껴 지나가는 별을 내 가슴에 묻었다.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어 묻고 묻히는 동안 은비령의 칼 바람처럼 거친 숨결 속에서도 우리는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작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길다면 길지 않다면 길지 않은 것. 그게 은비령 가는 길이다. 우리가 사는 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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