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내가 뭐라고.
내가 무슨 작가라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첫 책을 낸 건 작년 1월이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모든 게 달라졌어요』
한 달 만에 썼다.
거친 초고에서 퇴고도 거의 못 했다.
그냥 비문만 없애자.
사람들이 읽기 불편하지만 않게 하자.
멋진 문장, 수려한 문장.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내 생각, 내 경험이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도 솔직히 부끄러웠다.
페이지 수도 적었다.
이걸로 작가라고 할 수 있나, 마음 한구석이 계속 쿡쿡 찔렸다.
그런데 책을 읽어주신 분들 중 두 분이 연락을 주셨다.
둘째를 낳기로 결심했다고.
그리고 정말 임신하고 출산까지 하셨다.
지금 그 아기들이 8개월쯤 되었다.
나의 경험이 누군가의 결심이 되었다.
나의 글이 누군가의 인생을 살짝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뿌듯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두 번째 책은 그해 5월.
『미안해,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이번엔 출판사 대표님이 피드백을 주셨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전문적으로.
"가인 작가님은 스펀지 같아요."
피드백을 잘 흡수한다고.
그 말이 낯설면서도 좋았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아, 내 글도 다듬으면 빛나는 게 있구나.
그래도 여전히 생각했다.
내가 무슨 작가라고.
좋다고, 잘한다고 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도
내 안에서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의심이 남아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나눈 게 비판이 되어 돌아온 적도 있다.
내가 아는 것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돌아온 건 차가운 말들이었다.
그 이후로는 내 생각을 펼치기가 어려워졌다.
내 안의 것을 꺼내는 일이
조금은 위험한 일처럼 느껴졌다.
내 마음을 다시 숨기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내고 엄마가 읽으셨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사랑한다."
멈칫했다.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우리 집은 그렇게 애정 표현을 많이 하는 집이 아니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가정.
어릴 때는 뽀뽀도 받았던 것 같은데.
크고 나서는 전혀.
나는 내 아이들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는 부모님한테 사랑한다고 들어본 게 언제였지?
내가 사랑한다고 말한 건 또 언제였지?
둘 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책에 먼저 써 보았다.
나에게 내가 말해주기로 했다고.
가인아, 사랑해.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조금씩 강해지려고 했다.
그런 내게 엄마가 사랑한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감사했다.
그리고 나도 말할 수 있게 됐다.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입 안에서 맴돌다 나온 그 말들이
조금 어색했지만,
참 좋았다.
책을 쓰면서 생긴, 나답지 않은 용기였다.
며칠 전,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나에 대한 글.
솔직하게, 부끄럽게, 그래도 용기 내서.
댓글이 달렸다.
"작가님의 힘듦과, 그 힘듦을 견디게 하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느껴져요."
"같은 여자로서의 삶을 보며 다시 한번 엄마는 훌륭하다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님도 분명 행복한 엄마가 될 거라 믿어요. 이미 그런 엄마인걸요."
한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작가라는 페르소나도 살리면 좋겠어요."
그 말에 멈칫했다.
나는 계속 생각했었다.
내가 무슨 작가라고.
그런데 누군가는 나를 이미 작가로 보고 있었다.
내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믿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믿고 싶다.
내 글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분들도 있다.
모든 사람과 결이 맞을 수는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저 조용히 지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래서 나도,
조금 더 솔직하게,
조금 더 나답게
내 생각을 글로 천천히 나누어 보기로 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왜 작가가 되고 싶은 걸까.
나를 위해 쓴다.
글을 쓰면 내가 보인다.
몰랐던 내가 하나씩 드러난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나를
누군가가 멀리서 조용히 함께 바라봐 준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에서 말했다.
인생의 점들은 앞으로 볼 때는 연결되지 않고,
뒤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연결된다고.
2년 전, 서울도서관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작년, 첫 책을 냈다.
올해, 두 권을 더 냈다.
그리고 브런치를 시작했다.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된다.
돌이켜보니,
느슨하게 흩어져 있던 순간들이
어느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무슨 작가라고.
그 생각은 여전히 들 때가 있다.
그래도 쓴다.
완벽하지 않아도 쓴다.
조금 부끄러워도 쓴다.
쓰다 보면
나를 알아가게 되고,
가끔은 나와 닮은 누군가가
조용히 손을 흔들어 준다.
그래서 오늘도 쓴다.
나를 위해.
그리고 어딘가에서,
이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갈
당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