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런 아이였다
어제 유치원 상담을 다녀왔다.
2학기 상담은 원하는 사람만 하는 거였다.
나는 첫째가 무난하게 생활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기 말이 되어서.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상담 한번 받으러 오시는 게 어떨까요?"
몸이 안 좋아서 일주일을 미루고.
어제야 다녀왔다.
첫째 이야기였다.
5살.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참 모범생이에요."
"그런데요."
멈칫.
"가끔 고집을 부릴 때가 있어요."
"엄청 참다가 터트리는 것 같아요."
감정 표현을 억누른다고 했다.
긍정적인 것만 표현하고.
부정적인 것은 꾹 참는다고.
같이 놀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다가가지 못하고.
옆에서 맴돌면서 지켜보기만 한다고.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힘들어한다고.
"우리 아이가요?"
믿기지 않았다.
집에서는 누나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
그러면서도, 집에서 동생이 말을 안 들을 때는
한참을 참다가 한 번에 폭발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화가 나면 한참을 운다.
30분, 40분, 길게는 한 시간도 운다.
달래도 보고, 때로는 화도 내봤지만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다 울게 두고 있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내 감정을 잘 모른 채,
참다가 터뜨리는 사람이었다.
요즘에서야 비로소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인지, 무엇을 바라는지’를
하나씩 살펴보려 연습하고 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덧붙이셨다.
"아이들이 감정 표현을 잘할 수 있어야 해요."
"긍정적인 표현은 잘하는데,
부정적인 것은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요."
"슬프면 슬프다고, 화나면 화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 사회가 좀 그렇잖아요. 참는 게 미덕이라고 배우니까."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부정적인 것은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참는 게 미덕.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슴이 철렁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첫째에게 늘 그렇게 말해왔다.
첫째니까.
누나니까.
"좀 참아라."
"조금만 빌려줘라."
"양보 좀 해줘라."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둘째가 첫째가 아끼는 공주 신발을 뺏어 갔다.
첫째가 소리쳤다.
"내 거야! 가져가지 마!"
첫째가 울면서 내게 왔다.
"엄마, 동생이 내 신발 뺏어 갔어."
나는 설거지 중이었다.
할 일이 산더미였다.
둘이 싸우면 너무 힘들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동생이 아직 어려서 그래. 네가 누나니까 좀 양보해 줘."
"근데 그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첫째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잠깐만 신게 해 주면 되잖아."
첫째는 30분 넘게 울었다.
그쳤다 울고, 그쳤다 울고.
나는 점점 더 답답해졌다.
"신발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울어?"
그러다 첫째가 조금씩 진정됐다.
눈물을 닦고.
한참을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동생이 내 신발 가져가서 화났어."
그때는 몰랐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
참다가 터트리는 아이.
내가 만들고 있었다는 걸.
나도 그런 아이였다.
말하지 못하는 아이.
참는 아이.
나는 둘째였는데.
오빠니까.
동생인 네가 좀 이해해라.
그렇게 참아야 한다고 배웠다.
문득 어릴 때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난 있잖아 슬픈 모습 보이는 게 정말 싫어."
"약해지니까."
"눈물 나면 달릴 거야."
"네가 울면 무지개 연못에 비가 온단다."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한국 동요가 다 그랬다.
슬픈 감정은 빨리 떨쳐내고.
기쁜 척, 씩씩한 척.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게 무의식 중에 깊이 새겨진 거였다.
'감정은 숨기는 거야.'
'참는 게 잘하는 거야.'
그런데 지금은.
슬픈 감정도 괜찮다고 말해줘야 한다.
기쁜 감정도 괜찮다고.
화난 감정도, 속상한 감정도.
다 표현해도 된다고.
감정은 파도 같은 거니까.
물결처럼 왔다 갔다 하는 거니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냥 자연스러운 거라고.
감정을 억압하면 할수록.
더 속상해지고.
더 우울해진다는 걸.
나는 안다.
지금까지 내가 무시해 왔던 감정들.
그걸 지금 한꺼번에 해결하려니.
이렇게 힘든 것처럼.
아이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말했다.
아직 다섯 살인데,
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힘들 수 있다고.
스스로 잘하는 아이라서,
더 참고 내색하지 않는 것 같다고.
꾹꾹 참다가 한 번에 터지는 것도 그래서일 거라고.
둘째는 집에서 항상 잘 웃는 편이라,
나도 모르게 둘을 비교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예민한 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 안에도 장점이 많고,
그걸 같이 찾아 주면 된다고.
생각해 보니,
나도 남편도 예민한 편이다.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질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
그래서 더 노력해야겠다고,
아이와 함께 배워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울면.
"신발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울어?"
그 말이 먼저 나온다.
무의식적으로.
자꾸.
감정을 못 받아준다.
알면서도 못한다.
그게 제일 괴롭다.
오늘도 첫째를 안았다.
그런데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속상하지? 화났지?"
그렇게 물어보면 되는 걸까.
그래도.
시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하진 못해도.
서툴고 어색해도.
나도 그런 아이였다.
말 못 하고 참던 아이.
이제는 우리 딸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 마음, 엄마가 들어줄게."
"말해도 괜찮아."
"슬퍼도 괜찮고, 화나도 괜찮아."
"네 감정은 모두 소중해."
슬픈 모습 보여도 괜찮아.
약해 보여도 괜찮아.
눈물 나면 달리지 않아도 돼.
그냥 거기 서서 울어도 돼.
그렇게 말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비록 아직은 서툴지만.
너를 바꾸고 싶은 게 아니라,
네 마음을 더 잘 알고 싶은 엄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