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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Mar 09. 2023

공중 급유기 3

KB-50 and KC-97

Boeing KB-29


KB-29 이후에는 B-50 폭격기를 기반으로 하는 KB-50 공중 급유기가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에 개발된 B-29 폭격기의 개량형인 B-50은 종전으로 주문량이 대폭 감소하였으나 B-47 또는 B-52 같은 제트 폭격기가 자리를 잡아가는 사이 임시방편으로 운용하고자 생산이 재개되었다. [0] 그래서 1953년부터 B-47 폭격기가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가자 전략공군사령부(SAC)는 B-50 폭격기를 퇴역시켰고 일선에서 물러난 B-50 폭격기는 전술공군사령부(TAC)에서 운용하게 되었다. 전술공군사령부는 노후한 B-29 폭격기에 비해 우수한 성능을 지닌 B-50을 공중 급유기로 개조하여 운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공중 급유기로 다시 탄생한 KB-50은 1955년 12월에 초도비행을 실시하고 1956년 1월부터 공중 급유기로 활동하였다.


외형만 보자면 B-29를 개량한 기체이다보니 B-29와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향상된 엔진 출력에 맞춰 보다 큰 수직미익을 가졌다는 점에서 B-29와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3개의 프로브 앤 드로그 시스템을 갖춰 플라잉 붐이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에 공중 급유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당시에는 플라잉 붐이 개발된지 얼마 안된 시점인지라 개발이 완료되어 실전에 배치된 대부분의 항공기들은 플라잉 붐에 맞는 수유구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플라잉 붐은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의 연료를 신속하게 주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시스템이었으나 그 시스템이 복잡하다보니 설계가 끝난 전투기들을 개량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래서 미 공군은 플라잉 붐에 비해 구조가 간단한 프로브 앤 드로그 시스템을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양산된 전투기들에 장착하였고 이 때문에 플라잉 붐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미 공군도 미 해군과 같이 프로브 앤 드로그 시스템을 통해 공중 급유를 받았다.


한편, 미 공군이 다른 선택지 없이 B-50 폭격기를 공중 급유기로 개량한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는 왕복 엔진의 시대가 저물고 제트 엔진이 대세로 떠오르는 시기여서 왕복 엔진을 탑재한 많은 항공기들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중에는 B-29보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B-36 Peacekeeper 폭격기도 있었다. 미 공군은 B-36 폭격기의 폭탄창에 공중 급유 장치를 증설하는 방안을 고려했는데 거대한 몸집이 되려 기동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보다 작은 체구를 가진 B-50에 밀려 1954년에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다. [1] 그리고 비슷한 시기인 1953년에는 B-47 폭격기를 공중 급유기로 개조하는 방안도 검토되었다. 총 2대의 B-47B 폭격기가 사용되었으며 한 대는 영국제 프로브 앤 드로그 시스템을 탑재하여 KB-47G 공중 급유기로 개조되었고, 다른 한 대는 KB-47G로부터 공중 급유를 받을 수 있도록 기수에 수유 프로브를 갖춘 YB-47F로 개조되었다. 그러나 B-47은 충분한 양의 연료를 탑재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B-36과 마찬가지로 1954년에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다. [2]


YB-47F(left) and KB-47G(right)

그러나 왕복 엔진을 가진 KB-50 공중 급유기는 나날히 빨라지는 제트 폭격기와 전투기에 비해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거론되었다. 이에 1956년에 B-47 폭격기를 공중 급유기로 개조하는 방안이 다시 검토되었다. 하지만, 개조에 들어가는 비용 문제 그리고 KB-50 공중 급유기 주익 아래에 제트 엔진을 증설하는 것(J형)으로 문제가 해결되면서 1957년에 B-47 폭격기를 공중 급유기로 개조하는 계획은 중단되었다. 무엇보다 비슷한 시기인 1956년은 제트 엔진을 가진 KC-135 공중 급유기의 초도 비행이 이뤄지고 있는 시점이었으므로 B-47 폭격기를 공중 급유기로 개량할 이유는 더더욱 사라졌다. 그래서 KC-135가 도입되기 전까지 미 공군은 무장이 없는 조종사 훈련용 TB-50H 폭격기를 개조하여 KB-50K 공중 급유기로 운용하는 등 다양한 파생형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로 넘어가면서부터 금속 피로 및 부식이 문제가 되어 퇴역하게 되었다.


Boeing KC-97


전술공군사령부가 KB-50을 운용하고 있던 시기, 전략공군사령부는 Boeing B-29를 기반으로 제작된 C-97 Stratofreighter를 공중 급유기로 개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개발된 공중 급유기가 바로 KC-97이다. 비록 그 뿌리는 폭격기일지 몰라도 처음으로 폭격기가 아닌 수송기를 기반으로 개조된 공중 급유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전략공군사령부는 폭격기를 핵심 전력으로 운용하는 곳이다보니 프로브 앤 드로그 방식이 아니라 플라잉 붐 방식만을 채택한 점이 특징이다. 한편, 공중 급유기였던 KC-97은 800여 대가 제작된 데 반해 정작 원형인 C-97 수송기는 자신에 비해 2배 가량의 수송 능력을 지닌 Douglas C-124 Globemaster II의 등장으로 고작 70여 대밖에 생산되지 못했다.


B-52(left) and KC-97(right)

하지만, KC-97 역시 제트 엔진이 보편화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도태되고 말았다. 우선, 자신은 왕복 엔진을 가져 왕복 엔진용 가솔린 연료를 사용했는데 정작 급유를 받는 피급유 기체는 제트 엔진이다보니 별도의 연료를 탑재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서로 독립된 연료 시스템을 갖춰야 해서 비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제트 엔진을 가진 항공기들보다 속도가 느린 탓에 B-52 제트 폭격기는 KC-97과 공중 급유를 할 때면 속도를 최대한으로 낮추고 착륙장치를 내려 항력을 최대한으로 키워야만 했다. 당연히 이때 KC-97은 속도를 최대한으로 올려야 했으므로 서로에게 매우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KB-50과 마찬가지로 KC-97 역시 주익 아래에 J47 제트 엔진을 증설한 KC-97L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부터 등장하는 KC-135 Stratotanker의 등장으로 전략공군사령부는 1956년부터 KC-97을 퇴역시켰다. 그리고 전략공군사령부에서 퇴역한 KC-97 공중 급유기는 다시 전술공군사령부(TAC), 공군 예비군(Air Force Reserve, AFR) 또는 공군 주방위군(Air National Guard, ANG)으로 보내졌으나 이들 역시 제트 엔진을 탑재한 군용기들이 보편화됨에 따라 KC-135 공중 급유기로 대체되었다.




[0] B-29에 탑재되었던 Wright R-3350 엔진을 Pratt Whitney R-4360 엔진으로 교체한 점이 주된 차이점이다. 그래서 B-29를 개량한 차원에서 B-29D라는 이름으로 양산될 계획이었으나 군축에 따른 예산 감소로 생산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새로운 항공기로 보이도록 하여 예산을 따내고자 이름을 B-50을 바꾼 것이다. 즉,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름이 바뀐 셈이다.

[1] 공중 급유기는 무조건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기체가 클수록 연료 탑재량은 늘어나겠으나 운용할 수 있는 기지 수가 줄어드며 기체가 클수록 운용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는 나중에 등장하는 다른 공중 급유기들 선정 사업에서도 볼 수 있는 점이다.

[2] B-47 동체길이는 32.64m 이며, B-50 폭격기의 동체 길이는 30.18 m이다. 폭장량도 B-50이 12,700 kg이며 B-47은 11,340 kg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동체길이만을 가지고 기내 용량을 판단할 수는 없으나 B-50이 1.3t 더 많은 양의 연료를 탑재할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할만하다. 무엇보다 당대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된 R4360 왕복 엔진에 비해 기술적 성숙도가 낮은 J47 엔진은 연료 소비량이 커 공중 급유기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했을 것이라 판단된다. 참고로, 미 공군의 첫 제트 공중 급유기라 할 수 있는 KC-135A는  J57 터보제트 엔진을 탑재했으며 보잉의 첫 제트 여객기인 B707은 J57 터보제트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민수용 JT3C 터보제트 엔진이 탑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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