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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Feb 26. 2023

공중 급유기 2

Probe and Drouge & Flying Boom

이러한 이유로 미 공군은 1948년 6월에 공중 급유 비행대대를 창설하였고, 그 전에 전략 폭격기와 같은 속도와 고도로 비행하며 연료를 공급해줄 수 있는 공중 급유기를 구상하였다. 이에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었으나 미 공군이 제시한 요구 조건을 충족하면서 가장 빠르게 도입 가능한 방법은 B-29 폭격기를 공중 급유기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 공군은 곧바로 이를 실행에 옮겼다. 1948년 초, 미 공군 관계자는 영국에서 확인한 grappled-line looped-hose 방식의 공중 급유 시스템을 접하였고, 같은 해에 곧바로 공중 급유를 할 수 있도록 개조된 KB-29M과 공중 급유를 받을 수 있도록 개조된 B-20MR을 제작했다. 이후 1949년 2월 26일, KB-29M은 B-50 Lucky Lady II 폭격기에 공중 급유를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항공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 당시 B-50 Lucy Lady II는 네 차례의 공중 급유를 받으며 같은 해 3월 2일, 94시간의 비행 끝에 자신이 출발했던 기지로 돌아오면서 세계 최초의 무착륙 세계 일주를 해냈다. 그리고 이를 본 당시 전략공군사령부(Strategic Air Command, SAC) 사령관이었던 커티스 르메이(Curtiss LeMay)는 'SAC could now deliver an atomic bomb anywhere in the world and tankers made it possible'이라고 말하며 매우 만족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어떤 이는 '공중 급유 기술은 중폭격기(medium bomber)를 대륙간 폭격기로 만들어주는 엄청난 기술'이라며 극찬했다. 이후 미 공군은 KB-29M 공중 급유기의 지원 아래 B-50A 폭격기로 텍사스에서 이륙해 하와이에 폭탄을 투하하는 연습을 실시했으며 이는 공중 급유기의 등장으로 미 공군 폭격기의 작전 반경은 확실히 늘어났음을 잘 보여준다.


B-50 Lucky Lady II and KB-29M

그러나 grappled-line looped-hose 방식은 운용하기 어려웠고, 여전히 별도의 펌프가 아닌 중력을 사용하는 등 개선할 점이 많았다. 특히, 탑승 인원이 많아 한 사람은 조종을, 다른 한 사람은 공중 급유를 맡을 여유가 있는 폭격기와 달리 사람이 한 명 뿐인 전투기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따라서 전투기 조종사들이 조종과 급유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고 안전한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미국이 자신들의 공중 급유 기술을 통해 세계 일주에 성공하고 있을 때 영국의 Cobham은 자신이 고안한 grappled-line looped-hose 방식을 개선한 '프로브 앤 드로그(probe and drogue)' 방식을 고안해냈다. 그리고 1949년 8월 17일에는 Lancaster 폭격기를 프로브 앤 드로그 급유 방식을 갖춘 공중 급유기로 개조한 뒤 영국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Gloster Meteor에 성공적으로 공중 급유를 마쳤다. [2]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브 앤 드로그 공중 급유 방식은 미국으로 건너가 KB-29M 공중 급유기에 장착되었고 이와 함께 수유용 프로브를 갖춘 KB-29MR도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일부는 동체 하부 대신 양날개 끝에 프로브 앤 드로그 공중 급유 시스템을 갖춘 YKB-29T로 개조되었으며 이들은 KB-50D 시제기로도 사용되었다. [3] 특히, 프로브 앤 드로그 방식은 앞서 고안된 공중 급유 기술들에 비해 간단해 전투기 조종사도 혼자서 공중 급유가 가능했다. 덕분에 1952년 5월, KB-29M은 Operation High Tide라는 이름 아래 한국 전쟁에 투입되어 일본에서 이륙한 12대의 F-84E 전폭기가 중간 경유 없이 바로 북한을 폭격할 수 있도록 도왔다. 더 나아가 같은 해에는 Operation Fox Peter 아래 F-84 전폭기가 공중 급유를 받으며 태평양을 건너는 작전도 이뤄졌다.


하지만, 다수의 전략 폭격기를 운용하고 있는 미 공군은 기존 프로브 앤 드로그 방식보다 더 빠르게 급유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했고, 이에 커티스 르메이는 보잉에 새로운 방식의 공중 급유 시스템 개발을 의뢰했다. 그 결과 탄생한 급유 시스템이 바로 '플라잉 붐(flying boom)' 방식이며 이후 1950년부터 1년 동안 총 116대의 B-29 폭격기가 플라잉 붐을 갖춘 KB-29P로 개조되어 미 공군 전략공군사령부에 인도되었다. 그리고 미 공군은 플라잉 붐과 함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폭격기 전력으로 전 세계를 타격권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플라잉 붐 등장 이후로 미 공군은 전투기부터 수송기까지 플라잉 붐 수유구를 갖추도록 설계했다. [4] 이로써 '호위 전투기(escort fighter)'라는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고 비행기는 내부 연료탑재량을 늘리기 위해 더 이상 거대해질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일반 전투기라도 공중 급유만 받을 수 있다면 폭격기와 함께 장거리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Boeing flying boom / Air Force Museum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발전한 공중 급유 기술은 공군은 물론이며 해군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과 영국은 정규 항모로는 채울 수 없는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리고 대서양을 오가는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정규 항모보다 작은 '호위 항모'를 별도로 운용했다. 비록 호위 항모는 정규 항모보다 크기가 작고 속도가 느렸지만 오히려 속도가 느린 덕분에 구식 전함들과 상선들과 동행할 수 있어 이들을 훌륭히 보호해주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 등장한 초창기 제트 함재기들은 가속력이 부족해 왕복 엔진 기반의 함재기들보다 더 긴 활주로를 필요로 했고, 나중에는 함재기 자체가 거대해짐에 따라 호위 항모는 신형 제트 함재기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속도도 느려 제트 함재기를 충분히 가속시켜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1950년 한국전쟁과 1965년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항공기와 화물을 실어 나르는 화물선 역할을 수행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를 배로 실어 보낼 경우 염분에 의한 부식을 우려해야 했으며 시간도 오래 걸렸는데 공중 급유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부식에 대한 우려도 사라졌고 보다 빠르게 원하는 곳으로 물자는 물론이며 항공기를 보낼 수 있게 되면서 호위 항모라는 개념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1] 흥미로운 점은 B-50A Lucky Lady II는 예비기체였다는 점이다. 원래 미 공군은 전날인 1948년 2월 25일에 B-50A Global Queen으로 무착륙 세계 일주에 도전했다. 그러나 Global Queen은 미 본토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엔진에 문제가 발생해 임무를 중단하고 착륙해야만 했다.

[2]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영국은 미국처럼 공중 급유 기술을 실전에 배치하는데 애쓰지 않았다.

[3] 'Y'가 붙었다는 점에서 어떤 기술을 시험해보는 성격의 시제기임이 드러난다. 동시에 KB-29 중에는 3개의 급유소를 갖는 기체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4] 그렇다고 플라잉 붐이 만능인 것은 아니다. 플라잉 붐은 연료를 고속으로 주입할 수 있도록 그리고 붐 조작사(boom operator)를 별도로 수용할 수 있도록 거대한 플랫폼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플라잉 붐은 여객기와 같은 거대한 기체에만 적용 가능하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거대한 함재기를 운용하기 곤란한 미 해군에서는 여전히 프로브 앤 드로그 시스템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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