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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Sep 01. 2020

1942년, 제트 전투기의 등장

"What was that? What the hell was that?"

해당 글은 일부 보완 및 수정을 거쳐 1940년대 항공역사 매거진 글로 대체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연합군 폭격기 기총 사수가 Me 262를 처음 보았을 때 외쳤던 말이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빠른 속도로 자신들의 눈 앞을 지나가는 Me 262는 연합군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1944년 4월 22일, Me 262를 조종해 본 아돌프 갈란트(Adolf Galland)도 "마치 천사가 밀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제트 전투기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속도를 보여주었다.


Messerschmitt Me 262 Schwalbe


Messerschmitt Me 262 Schwalbe @Pinterest


1939년 He178이 성공적으로 비행을 마쳤을 때, Messerschmitt에서도 독자적인 제트 전투기 개발에 착수했다. 다만, Heinkel이 폭격기를 생산해주길 원한 정부*로부터 외면받은 것에 비하면 Messerschmitt는 독일 정부의 지지를 받으며 나름 순조롭게 개발되고 있었다.


기체 자체는 1941년 4월 왕복엔진을 탑재하고 처녀비행을 할 수 있는 정도로 빠르게 완성되었다. 하지만 BMW 003 엔진이 개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Me 262의 개발을 지연시켰다. 시간이 지나도 BMW 003 엔진은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결국 Jumo 004 엔진이 대신 장착되었다.


그러나 BMW 003 엔진 말고도 이미 뛰어난 성능을 보장하는 기존의 왕복 엔진 전투기 생산에 더 집중하고 싶었던 Willy Messerschmitt와 기존 왕복 엔진 항공기로도 충분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독일 공군 때문에 연구 지원이 축소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아무튼 여러 우여곡절 끝에 Me 262는 1942년 7월 18일에 드디어 제트 엔진만을 사용해 성공적으로 처녀비행을 마쳤다. 아래 사진은 BMW 003 엔진과 함께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Jumo210 왕복엔진이 장착된 Me 262 V3 사진이다. 실제로 BMW 003 엔진은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를 일으켰고 조종사는 왕복엔진으로 비상 착륙했다.


Me 262 V3 with jet engine and reciprocating engine @ defencecyclopedia


Me 262의 외형을 보면, 초기 제트 전투기들과 외형적으로 많은 점들을 공유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당시 개발된 제트 엔진은 신뢰도와 추력이 낮았다. 따라서, 초기 제트 전투기들은 주로 단발보다는 쌍발로 설계되었다. 더불어 초기 제트 엔진은 수명이 짧고 고장이 잘 났기 때문에 엔진을 동체 내부에 넣지 않고 날개에 장착하면 교체와 정비가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기존 왕복엔진 항공기들이 사용한 후륜식 착륙장치가 아닌 오늘날 항공기들이 흔히 사용하는 전륜식 착륙장치가 적용되었다. 방금 살펴보았듯이 Me 262의 초기형인 Me 262 V3은 여전히 후륜식 착륙장치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사진처럼 양산형에 와서는 전륜식 착륙장치가 사용되었다.


Me 262's swept wing and jet engines @Pinterest


하지만, Me 262는 제트 엔진과 함께 18.5도 뒤로 젖혀진 후퇴익이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고속 비행에 유리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제트 전투기들보다 혁신적이라 평가된다.


물론 처음부터 후퇴익을 적용할 계획은 없었다. 원래 사용하기로 했던 BMW 003 엔진이 예상보다 무거워지면서 무게 중심을 맞추기 위해 후퇴익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1940년대 초부터 Adolf Buseman을 중심으로 후퇴익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래 사진에 나온 것처럼 독일은 1940년대 초부터 35도 후퇴익을 가진 Me 262 HGIII을 구상하며 풍동 실험을 진행할 정도로 후퇴익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처럼 후퇴익과 제트 엔진이라는 시대를 앞선 기술이 적용된 덕분에 동시대 연합군 항공기들에 비해 150km/h 더 빠른 850km/h의 속력은 낼 수 있었다. 후에 Me 262는 미국으로도 건너가 미국 최초의 제트 전투기 P-80과 비교되는데 상승 능력은 P-80과 비슷했지만 가속력과 속도, 임계 마하수는 P-80보다 뛰어나 미국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Me 262 HGIII suggested by Adolf Busemann @Weapons and Warfare


뛰어난 성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Me 262의 미래는 밝지 않았다. 우선, 개발은 비교적 빨리 끝났으나 1943년 3월, 연합군의 프랑스 상륙을 의식한 히틀러가 Me 262를 전폭기로 개발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 과정에서 여러 갈등들이 빚어지면서 실전 투입은 1944년 4월에서야 이뤄진다.


물론 Me 262를 전폭기로 개조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투기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산 라인을 교체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파일럿들이 요격 훈련이 아닌 폭격 훈련만 받게 만든 히틀러의 명령은 전쟁 막바지에 Me 262 파일럿들이 연합군의 폭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여기에 Me 262가 실전 배치된 지 두 달 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면서 전세는 연합군에게로 완전히 기울었다. 이후 전쟁 물자는 점점 부족해져 갔고 나날이 심해지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제대로 된 개량이나 생산 역시 어려워졌다. 그리고 지난 글에서 언급한 대로 내열 합금이 부족해지면서 Me 262의 핵심인 제트 엔진은 제대로 된 성능을 낼 수 없었다.


게다가 초기 제트 엔진은 공기를 빨아들이는 힘이 약해 급격한 기동을 하게 되면 엔진이 꺼지기 일쑤였다. 때문에 전투기를 상대로 격한 기동을 펼쳐야 하는 공중전보다는 제트 항공기의 빠른 속도를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전술과 함께 비교적 덩치가 크고 둔한 폭격기 요격 임무에 주로 투입되었다.


그리고 엔진의 공기 흡입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가속력 역시 좋지 못해 원하는 속도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여기에 나중에 슬랫(Slat)을 장착해 일부 해결되지만, 후퇴익 때문에 저속에서의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낮은 가속력과 함께 이착륙하는 Me 262는 연합군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럼에도 Me 262는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항공기가 1세대 제트 전투기를 대표하는 F-86이다. 원래 F-86은 직선익을 가진 미 해군의 FJ-1을 공군의 요구조건에 맞게 개량한 것이다. 하지만 직선익을 가지고는 미 공군이 요구한 속도를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


이때 전후 독일로부터 가져온 후퇴익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35도 후퇴익을 적용한 XP-86을 개발해 미 공군의 요구 조건을 가뿐히 넘는 전투기를 만들 수 있었다. 심지어 주익 앞전에 설치된 슬랫은 Me 262의 슬랫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North American FJ-1 with straight wing @Businees Insider &  F-86 with swept wing @Wikimedia


Heinkel He 162 Volksjäger


Heinkel He 162 Volksjäger @Wikipedia


1943년 말, 유럽 전선에 투입된 P-51 장거리 호위 전투기는 독일군이 연합군의 폭격을 저지하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반해 독일 공군은 계속된 폭격으로 전투기를 제대로 운용하기도 어려웠고 전투기를 조종할 파일럿도 부족해져만 갔다. 때문에 독일 공군은 대량 생산을 통해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제트 전투기를 구상하게 되었다.


결국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저렴하고 부품 교체를 통해 간편하게 수리 보수가 가능한 단발 제트 전투기 생산 계획이 "국민 전투기(Volksjäger)"라는 이름 아래 등장한다. 독일 공군이 제시한 요구사항으로는 저렴하고 간단한 구조를 가지며 나무를 사용해 전략물자를 최소한으로 사용해야만 했다. 여기에 숙련되지 않은 기술자들도 생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작이 용이한 항공기여야 했다. 마지막으로, 파일럿이 부족했기 때문에 교육을 다 마치지 못한 파일럿도 조종할 수 있는 항공기여야 했다.


그렇게 1944년 9월에 요구사항이 발표되었고 당연히 이번에 제작될 항공기는 독일이 총력을 다해 대량 생산할 항공기였기 때문에 Heinkel 말고도 많은 회사들이 입찰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전부터 단일 제트 전투기를 연구해온 Heinkel이 국민 전투기를 생산업체로 선정되었다.


설계와 생산 그리고 처녀비행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1944년 9월 25일에 형상이 결정되었는데 처녀비행은 12월 6일에 실시되었다. 그러니까 설계에서 제작, 시험비행까지 90일이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참고로, He 162는 조종사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던 시절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사출 좌석이 설치된 최초의 항공기이기도 했다.


He 162 assembly factory @Thevintagenews


주익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엔진은 열기가 목재로 된 주익에 닿지 않도록 동체 위에 장착되었다. 여기에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가구공장이나 지하에서 생산이 이루어졌다. 독일 공군이 요구한 대로 생산이 용이했기 때문에 종전을 얼마 앞두지 않아 망가질 대로 망가진 독일의 군수산업을 기반으로도 5개월 동안 240대가 생산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He 162는 1945년 2월부터 독일 공군으로 인도되었다. 그리고 4월에는 연합군의 항공기를 격추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He 162가 공군에 인도되어 조종사들이 훈련을 받고 있을 때에도 연합군의 폭격은 계속되었다. 


결국 He 162이 공군에 인도된 시점에서 연합군의 지칠 줄 모르는 폭격에 유류 수송망은 초토화되었고 여러 공장들과 다른 지역에 주기되어 있던 He 162은 연합군에 의해 나포되었다. 게다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초보자가 조종하기엔 어려웠고 연료탑재량이 적어 30분밖에 비행할 수 없었다.


He 162 glider for training @Secret project forum


이후 전쟁이 끝난 뒤 미국과 영국에서 He 162를 가져와 실제로 비행해본 결과, 초보 파일럿이 운전할 수 있을 정도로 조종성이 우수한 기체는 아니지만 동시대의 Meteor와 견줄 정도의 성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항공기의 성능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쟁 말 긴박한 상항에서 운용하다 보니 제대로 된 성능을 보여주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독일이 열약한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전세를 뒤집고자 제트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을 때 전부터 독일의 제트 전투기 개발을 의식해온 영국에서도 제트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참고문헌 및 출처


배경 사진 : Wikipedia

Wikipedia - Messerschmitt Me 262

Wikipedia - Adolf Busemann

Wikipedia - Heinkel He 162

Plane Encyclopedia, Heinkel He 162 Volksjäger

네이버 포스트, Me 262 전투기

무수천, 최초의 Me 262에는 제트 엔진이 없었다?

역사 기술 우주, 제트엔진 원리, 초창기 제트엔진, 융커스 jumo 004, 미국의 제트엔진

세계대전 떡밥 수용소, He 162와 나무위키 수준

세계대전 떡밥 수용소, Me 262 Schwalbe 이야기 1~3

아틀라스 세계사, 2차 세계대전 : 유럽 p149


*정확히는 RLM(독일제국 항공성)으로 언급하는 게 맞지만 독일 공군(Luftwaffe)나 다른 기관들을 묶어 다루고자 '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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