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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Jul 20. 2021

1947년, 소리의 벽을 넘어서 2편

Douglas D-558-I and D-558-II

1947년 4월 14일 Douglas D-558 -1 Skystreak


미 육군 항공대가 XS-1으로 음속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때, 미 해군은 미국항공자문위원회(NACA)와 함께 단발 제트 엔진을 사용해 음속에 도달할 수 있는 항공기 제작을 Douglas에 의뢰했다. 목표는 미 육군 항공대와 동일하게 기존의 풍동 실험실이 구현할 수 없는 마하 0.7에서 1.3구간에서 나타나는 비행 특성에 대한 데이터를 얻는 것이었다. 그렇게 1945년 6월 22일, 미 해군은 Douglas와 함께 서로 다른 모양의 공기 흡입구, 에어포일 그리고 기수를 가진 6대의 시제기를 제작하기로 계획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3대의 항공기만을 제작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리고 558 뒤에 오는 로마숫자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적인 개발 단계는 총 3단계로 나뉘어졌다. 1단계(558-1)는 제트 엔진과 직선익으로 음속에 도달할 수 있는 실험기를 제작하는 것이었고 2단계에서는 제트 엔진과 로켓 엔진을 함께 사용한 후퇴익 항공기를 제작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단계에서는 1,2 단계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투기를 제작할 계획이었는데 이 역시 2단계까지만 진행되었다.


이러한 계획의 첫 단계로 제작된 D-558-1은 X-1과 마찬가지로 음속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어떤 힘이 기체에 가해질지 몰라 18G까지 견딜 수 있도록 매우 견고하게 제작되었으며 공기와의 마찰로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가벼우면서도 열용량이 큰 소재를 사용했다. 수평미익은 X-1과 마찬가지로 주익에서 발생하는 충격파에 가려 작동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주익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였다. 이밖에도 D-558-1은 연구용 기체답게 자료 수집을 위해 기체의 400여 군데에 비행 조종 특성, 꼬리 날개에 가해지는 하중, 진동 현상, 압력 분포를 측정하고자 스트레인 게이지부터 마노미터, 가속도계, 텔레미터 등 230kg에 달하는 센서들이 부착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쪽 날개에는 400개의 작은 구멍을 뚫어 날개에 가해지는 공기압을 측정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D-558-1 역시 설계 초기에는 회색빛 활주로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빨간색으로 도색될 예정이었지만 이내 흰색으로 바뀌었다. (항공기의 도색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루고자 해요.)

Douglas D-558-1 @Pinterest

하지만, D-558-1이 X-1과 크게 달랐던 점은 바로 로켓 엔진 대신 미국 최초의 축류식 제트 엔진 J35-A-11 엔진을 사용한 점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조종사가 사출될 경우 조종사가 수직미익에 바로 부딪힐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 색다른 방법으로 비상 사출이 이루어졌다. 바로 기체가 공중에서 분리되면 조종사가 알아서 나와 낙하산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Bail out of D-558-2 @Alamy Photo

이후 기체는 1946년부터 제작에 들어가 1947년 1월에 완성되어 1947년 4월 14일, 초도비행을 실시했다. 그리고 1947년 8월 20일에는 1,031 km/h호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으나 결과적으로 원래 계획했던 마하1 (1,224 km/h)은 달성하지 못한 채 최고속도 마하 0.9를 기록한 뒤 1954년 6월 10일 실험이 종료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1947년 10월 14일, 미 육군 항공대의 X-1이 세계 최초로 음속 돌파에 성공해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으나 D-558-1은 여전히 음속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Douglas D-558-1 @DVIDS

그럼에도 미 육군항공대의 Bell X-1이 로켓 엔진을 사용하는 바람에 장시간 초음속 비행이 불가능했던 것과 다르게 D-558-1은 장시간 천음속 비행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항공역학에 기여한 바가 크며 이후 등장하는 센츄리 시리즈 항공기 개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X-1과 마찬가지로 D-558-1이 수집한 자료들은 NACA가 설계한 천음속 풍동실험 시설로부터 얻은 자료들과 비교되어 실험값의 정확도를 평가하는 척도로 사용되었다.


[D-558-2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싶었는데 기사 시험 후 (조금 많이 놀고) 바로 대학원을 준비하느라 글을 마무리 못 지었습니다. 그래도 Cover image만은 D-558-2를 넣었습니다. 매끈하게 잘 나왔잖아요.]


D-558-2 @Fantastic Plastic Model


1947년 10월 08일 Miles M.52


결과적으로 세계 최초로 소리의 장벽을 뚫은 나라는 미국이 되지만 세계 최초로 제트 엔진을 개발한 영국에서도 초음속 영역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오히려 시작만 본다면 영국이 미국보다 더 앞서나가고 있었다. 영국은 1942년부터 초음속 항공기를 구상했으며 1943년 가을부터 극비리에 기존의 항공기보다 2배 더 빠르게 날 수 있는 항공기 개발에 착수했다.

Miles M.52 @Aviadejavu

Bell X-1과 마찬가지로 Miles M.52 또한 음속에서 안정적인 비행을 보여주었던 총알과 비슷한 외형을 가졌으며 동체는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공기와의 마찰로 뜨거워질 것을 고려해 스테인레스 스틸(stainless steel)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조종사의 사출 방식은 D-558 계열의 항공기와 동일하게 기수 부분이 공중에서 분리되는 방식을 따랐으며 로켓 엔진이 제트 엔진의 추력을 보완하는 것도 동일했다. 특히, Miles는 X-1보다 먼저 초음속 구간에서 항공기가 조종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을 예상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전가동 수평미익(Stabilator)을 적용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 최초로 후기 연소(after-burner)가 적용될 꽤나 선구적인 기체였다.


이후 1944년에 이르러서는 설계의 90%가 완성되어 영국은 미국과  초음속 영역에 대한 자료를 공유하기로 했다. (아마 앞서 언급한 Tizard Mission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국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돌연 영국과 초음속 연구에 대한 자료 공유를 거부하더니 독자 개발 노선을 채택하게 되고 이후 X-1을 개발해낸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지만 미국이 초음속 연구가 원자폭탄과 같이 다가올 미래 전쟁을 주도할 핵심 기술이라 판단했을거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할 뿐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영국에게 원자폭탄 개발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기로 약속했지만 전후 전 세계 유일한 핵보유국이라는 지위를 잃지 않고자 돌연 영국에게 자료를 건내주지 않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Miles M.52 @www2aircraft.net Forums

그러나 미국의 비협조적인 태도 말고도 1945년 총선을 통해 노동당 정권이 영국을 집권하면서 영국의 초음속 실험기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세우는데 집중했던 노둥당은 1946년 6월 Miles M.52 프로그램을 중단시켰다. 그들은 소리보다 빠르게 날 수 있는 항공기의 등장은 먼 미래의 일이라며 초음속 기술을 연구하는 데 부정적이었으며 노동당 고위 관료들 중에서 극비리에 진행 중이던 M.52 프로그램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얼마나 중요한 실험인지 알지 못했다. 결국, 유인 실험 대신 무인기를 사용해서라도 실험을 진행하고자 했는데 이마저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M.52는 공군이 투입한 예산으로 1947년이 되어서야 30% 축소된 무인기를 제작해낸다.


그렇게 조그마한 Miles M.52 무인기는 1947년 10월 8일 Mosquito 폭격기에서 투하되었지만 분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로켓이 폭발하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다. 이후 두 번째 비행이 다음 해 10월 10일에 실시되어 마하 1.38을 달성하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1947년 10월 14일에 유인 항공기 X-1이 음속 돌파에 성공한 상황이었고 1948년 3월 25일에 마하 1.45를 달성한 뒤였다. 결국, 실험에 투입되는 비용 대비 돌아오는 자료가 많지 않다고 판단한 공군은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만다.

Miles M.52 @agefotostock

그리고 1945년 노동당이 집권하는 시기 동안 영국은 항공기술력 개발을 게을리 하는 바람에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미국과 소련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Miles M.52를 비롯해 다양한 신형 제트 전투기들은 노동당이 영국을 집권하는 1940년대 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축소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은 1950년 한국전쟁과 1951년 처칠이 다시 영국의 63대 총리가 되면서부터 다시 등장하게 된다.




참고자료

Wikipedia, Bell X-1

NASA Armstrong Fact Sheet: First Generation X-1

Smithsonia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Bell X-1

Wikipedia, Miles M.52

네이버 블로그, 쿵디담 Miles M.52

Wikipedia, Douglas D-558 I Skystreak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D-558-I SKYSTREAK

NASA, Armstrong Face Sheet: D-558-I Skystreak

Engineering and Technology History Wiki, First Hand: The D-558-I Skystreak Project – Chapter4 of the Experimental Research Airplanes and the Sound Barrrier

Wikipedia Douglas D-558-2 Skyro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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