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l XS-1
제트 엔진이 등장하기 오래전부터 공학자들은 더 높고 더 빠르게 날 수 있는 항공기를 만들고자 했다. 그 시작으로 왕복 엔진보다 더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제트 엔진이 개발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시발점으로 독일과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 앞다투어 제트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한동안 전투기 개발은 기존 왕복 엔진 항공기를 바탕으로 누가 더 강력하고 신뢰도 높은 엔진을 만드느냐의 싸움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트 엔진은 그렇게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트 엔진으로 항공기가 소리의 속도에 가까워질 수 있게 되자 공학자들은 천음속과 초음속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전에 말했듯이 프로펠러의 회전으로 추력을 만들어내는 기체는 소리의 속도보다 빠르게 비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항공기의 속도는 소리의 속도에 비해 한참 부족해도 프로펠러 깃이 이미 음속에 도달하는 바람에 프로펠러의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제트 엔진은 회전으로 추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스의 폭발에 의한 작용 반작용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공학자들은 이제 아음속에서 초음속으로 넘어가는 천음속 구간과 소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초음속 영역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천음속과 초음속 구간에 다다르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첫 번째는 ‘소리의 장벽’이었다. 1930년대 말부터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기술의 정점에 다다랐던 왕복 엔진 비행기들은 아음속에서 천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가끔 전속력으로 비행기를 가속시킬 때 갑자기 날개가 떨어져 나가거나 기체 자체가 폭발해버리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한마디로, 비행기들이 무슨 벽이 앞에 있는 것 마냥 공중에서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공학자들은 천음속이나 초음속에 도달했을 때 소리의 벽에 부딪혀도 기체가 부서지지 않도록 기체를 굉장히 튼튼하게 설계해야만 했다. 게다가 ‘두려움’도 있었다. 어디인지도 모르고 보이지 않는 소리의 벽에 부딪혀 속절없이 추락하는 기체들의 모습은 그들에게 적잖은 공포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이 소리보다 빠르게 움직일 경우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기체는 무사하더라도 조종사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떠도는 마당이었다.
물론, 철저한 설계와 충분한 실험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안전한 기체를 만들 수 있었음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봤듯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앨런 튜링의 ‘봄베(bombe)’가 1940년에 나왔고, 우리에게 익숙한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이 1946년에 나왔으니 오늘날과 같은 전산유체역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상에서 실시한 풍동 실험 결과를 적용하자니 이 역시도 음속 구간에서는 자료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무모하더라도 직접 비행기를 날려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항공기를 직접 제작한 뒤 비행시키는 행위는 오늘날에도 이어지는데 이는 아무리 정확도가 높은 전산유체역학 해석이나 풍동실험도 실제 비행 테스트가 가지는 정확도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뜩이나 천음속과 초음속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당시에는 무모할지라도 직접 천음속과 초음속 구간을 비행해야만 했다.
두 번째는 초음속까지 기체를 가속할 수 있는 동력원이 필요했다. 왕복 엔진은 당연히 고려 대상에서 빠졌고, 선택지로 제트 엔진과 로켓 엔진이 남아 있었다. 문제는 그 당시 제트 엔진이 음속을 돌파할 정도의 추력을 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 내부에서는 전투기로 개조될 점을 고려해 제트 엔진을 쉽사리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두고 육군 항공대와 해군 사이에 의견이 나뉘어 동력원 선정에 조금 애를 먹었고 결국 육군 항공대와 해군은 서로 다른 기체를 만들어 음속 구간에서의 비행 특성을 연구하기로 한다. 우선은 미 육군 항공대의 Bell XS-1부터 살펴보자.
1944년 12월, 미국에서는 11,000m에서 1,300km/h로 날 수 있는 기체를 개발하자는 논의가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1945년 3월 16일, 미 육군항공대(USAAF)와 미국 항공 자문위원회(NACA)에서 Bell에 3대의 “eXperimental Supersonic”을 의미하는 XS-1 제작을 의뢰한다.
Bell은 당시 초음속 영역으로 움직이는 몇 안 되는 물체인 총알의 형상을 기반으로 기체를 설계했다. 그래서 조종석 캐노피가 유선형을 깨트리지 않고자 동체 내부로 들어갔는데 이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고 한다. 게다가 동체는 음속 영역에서 항공기가 어떤 힘을 받을지 모르기에 최대 18G까지 견딜 수 있도록 매우 견고하게 설계되었다. 특히, 날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후퇴익이 아닌 테이퍼익을 사용했다. 첫 번째 이유는 기체 설계가 막 시작된 1945년에만 해도 후퇴익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은 테이퍼익이 사용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항공기가 음속에 가까워지면 날개 앞에서 공기가 압축되어 날개에 상당한 무리를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음속 영역에 적합한 익형은 날개 두께가 굉장히 얇기 때문에 그 힘을 견디면서 얇은 날개를 만들기엔 후퇴익보다는 테이퍼익이 더 유리했다.
마지막으로 육군 항공대는 XS-1의 동력으로 로켓 엔진을 선택했다. 제트 엔진을 사용하면 원하는 추력을 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다고 둘을 동시에 탑재하면 너무 복잡해질 것을 우려해 로켓 엔진만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미 해군과 NACA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래서 아래에서 다룰 테지만 미 해군은 D-335-Ⅰ라는 초음속 기체를 따로 제작하게 된다. 그래서 이륙 방식은 로켓 엔진의 위험성을 고려해 전통적인 이착륙 방식이 아닌 B-29 폭격기를 사용해 공중에서 투하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마지막으로 XS-1에는 처음으로 음속에서 조종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수평 안정판과 승강타를 합친 ‘스태빌레이터(stabilator)’가 사용되었다. 다만, 스태빌레이터는 미국이 최초로 고안해낸 기술은 아니다. 1944년 미국보다 먼저 초음속 항공기 개발에 착수한 영국에서 나온 것인데 영국은 자신들의 초음속 항공기 ‘Miles M.52’의 설계가 90% 정도 완료된 시점에서 미국과 초음속에 대한 자료를 공유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미국은 Miles M.52에 적용된 스태빌레이터를 접하게 된 것이다. 추가로, 기체의 도색 또한 원래는 흰색이었는데 공중에서 시안성을 높이기 위해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이후 XS-1은 1946년부터 조심스럽게 무동력 활공 비행부터 시작해 수차례 시험 비행을 거치며 차근차근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실험을 진행하는 NACA 연구원들과 조종사들의 두려움도 한몫했는데 초음속 구간에 대해서는 그들도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육군 항공대는 NACA의 이러한 느린 실험 진행에 조금 지루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도 실험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1947년 10월 14일, Chuck Yeager가 조종하는 XS-1은 무사히 마하 1.06에 도달하면서 인류는 최초로 음속 비행을 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미 육군 항공대에 의해 곧바로 기밀로 부쳐졌는데 어떻게 된 건지 XS-1이 음속 돌파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잡지를 통해 폭로되었고 결국 미 국방부는 1948년에 XS-1이 소리의 장벽을 넘어섰음을 인정하고 공식 발표한다.
이후 XS-1은 X-1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초음속 비행 중에 일어나는 다양한 특성들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파생형이 개발되었다. 먼저 X-1A는 1948년 4월, 27km 이상의 고도에서 마하 2 너머의 영역을 연구하기 위해 제작되어 1953년까지 비행하였다. 기체는 조금 더 커졌으며 조종사의 시야 확보를 돕기 위해 캐노피는 기존의 매립식에서 계단식으로 튀어나오게 되었다. 특히 기체 도색이 주황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었는데 왜 도색이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다양한 항공기들에 적용된 도색들과 각각의 항공기가 맡은 임무들을 보며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미 초음속 내용만으로도 글이 길어져 주황색이 흰색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재미있게 다룰 예정입니다.)
그다음 제작된 X-1B는 초음속 비행 중에 발생하는 마찰열을 연구하고자 1954년부터 1958년까지 사용되었다. X-1A와 달리 X-1B는 별다른 도색 없이 은색을 띠는데 이는 마찰열을 연구하기 위해 도색을 따로 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무엇보다 비행 중 발생하는 열에 대한 데이터를 획득해야 하는데 기체 외부가 페인트로 도색되어 있다면 정확한 값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천음속 및 초음속 영역에서의 무장 특성을 연구하고자 X-1C가 개발될 예정이었으나 비슷한 시기에 F-86과 F-100이 등장하는 바람에 X-1C의 개발은 취소되었다. X-1C는 개발이 취소되는 바람에 실기도 존재하지 않고 관련 자료도 적지만 일부 상상도를 보면 전투기 날개 아래에 달린 파일런과 비슷한 효과를 만들기 위함인지 양 날개에 큼지막한 수직판이 장착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제 개인적인 추론입니다.)
1951년에는 열전달 특성을 알아보고자 X-1D가 개발되었는데 X-1D는 착륙하는 과정에서 기체가 심하게 훼손되었고 이후 수리된 뒤 다시 비행에 투입되었지만 공중에서 B-29와 분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해버리는 사고를 겪게 된다. 그래서 X-1D이 수행하지 못한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X-1E가 개발되었고 X-1E는 X-1D의 사고를 교훈 삼아 연료 계통 시스템의 안전도를 높였고 사출 좌석이 구비되었다. 추가로, 캐노피는 칼로 자른 듯 날카롭게 마감되어 이전에 제작된 다른 기체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데 이러한 캐노피 형상은 D-558-Ⅱ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후 X-1E는 1955년에 첫 비행을 실시한 뒤 1958년에는 마하 2를 넘어 마하 3에 가까운 기록을 세우곤 연료 탱크의 피로도가 누적됨이 발견됨에 따라 금이 발생하면서 1958년에 퇴역한다.
이렇게 미국의 초음속 영역을 연 Bell XS-1에 대해 살펴보았다. XS-1은 세계 최초로 음속을 돌파한 항공기로 유명해 국내에서 학부생들이 사용하는 유체역학 책은 물론 기체역학이나 여러 분야에서 꼭 등장하는 유명 인사이다. 실제로 XS-1은 초음속 영역에 적합한 매우 얇은 날개, 동체 형상 그리고 조종 계통 등 다양한 영역의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기체로 초음속 영역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것은 아니며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초음속 영역을 알아보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참고로 당연한 내용이지만 Bell XS-1의 날개 형상은 곧바로 테이퍼익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총 5개의 형상이 NACA의 High-Speed Flight Research Station에서 풍동 실험을 거쳐 평가를 받았다. 오랜 검색 끝에 총 4가지 형상을 찾을 수 있었는데 아마 날개의 두께, 익형, 면적 등에 변화를 주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 Cover image by Pinterest
Wikipedia, Bell X-1
NASA, Armstrong Fact Sheet : First Generation X-1
Smithsonia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Bell X-1
iNews, The Story behind the first supersonic p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