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eing KB-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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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 공군은 1948년 공중급유 비행대대를 창설하였고 앞서 말했듯이 폭격기 중심의 전략을 구상해왔기에 전략 폭격기 또는 폭격기를 보호해 줄 호위 전투기들과 같은 속도와 고도로 비행하며 연료를 공급해 줄 수 있는 공중 급유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에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었지만 미 공군이 제시한 요구 조건을 충족하면서 가장 빠르게 공중 급유기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B-29를 공중급유기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당시 B-50에 밀렸던 기종들은 다음과 같다.
1952년에 B-36의 폭탄창에 공중급유 장치를 설치하는 방안이 검토된 적이 있었지만 덩치가 워낙 크다보니 보다 민첩한 B-50에 밀려 1954년에 사업은 중단되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인 1953년에 B-47 폭격기 역시 공중급유기로 검토된 적이 있다. 총 2대의 B-47B 폭격기가 각각 한 대는 영국제 공중급유 장치를 장착하여 KB-47G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probe 장치를 갖춰 YB-47F가 되었다. 그러나 B-47은 충분한 연료를 탑재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프로젝트는 1954년에 중단되었다.
이후 KB-29는 1949년 2월 26일에 이륙한 B-50 Lucky Lady II 폭격기에 공중 급유를 해주면서 항공기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이때 공중 급유 임무를 맡은 KB-29M는 영국에서 고안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사용하지 않는 ‘Grappled-line looped-hose’ 방식의 공중 급유 시스템을 탑재한 기체였다. 그리고 KB-29M를 통해 네 차례의 공중 급유를 받은 B-50은 3월 2일, 94시간의 비행 끝에 자신이 출발했던 기지로 돌아와 세계 최초로 무착륙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이를 본 미 공군 전략공군사령부(SAC) 사령관 커티스 르메이(Curtiss LeMay)는 ‘이제 미 공군은 핵폭탄을 원하는 어느 곳으로든 폭격기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며 매우 만족해했고, 또 어떤 이는 공중 급유 기술은 중폭격기(medium bomber)를 대륙간(intercontinental) 폭격기로 만들 수 있는 엄청난 기술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Grappled-line looped-hose 방식은 그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어려웠고, 별도의 펌프가 아닌 중력을 사용하는 등 개선할 점이 몇 군데 있었다. 무엇보다 다량의 폭격기 부대를 운용하는 미국과 달리 전투기에 탑승한 조종사 혼자서도 공중 급유를 수행할 수 있는 보다 간단하고 안전한 방식을 원했다. 그래서 미국이 자신들의 공중 급유 방식을 통해 세계 일주에 성공하고 있을 때 영국의 Cobham은 자신이 고안한 Grappled-line looped-hose 방식을 개선한 Probe and Drogue 방식을 고안해냈고 1949년 8월 7일, 영국에서 영국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Gloster Meteor와 공중 급유기로 개조된 Lancaster 폭격기가 Probe and Drogue 방식으로 공중 급유에 성공했다.
Probe and drouge 방식의 등장을 알게 된 미국은 이번에도 영국으로부터 빠르게 Probe and Drogue 방식을 도입하여 자신들의 B-29 폭격기에 장착했고 그렇게 probe and drogue 급유 시스템을 갖춘 KB-29M과 수유용 probe를 갖춘 KB-29MR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나중에 동체 하부가 아닌 양 날개 끝에 probe and drogue 장치를 갖춘 YKB-29T로 개조되었으며 probe and drouge 급유 시스템을 갖춘 KB-29M은 한국전쟁에 투입되어 일본에서 이륙한 전투기들에게 공중 급유를 해주며 최초의 현대적인 공중 급유를 성공해냈다.
하지만, 다수의 전략 폭격기를 운용 중이었던 미 공군은 기존의 probe and drogue 방식보다 더 빠르게 폭격기에 연료를 주입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했고 이에 커티스 르메이는 Boeing에 새로운 공중급유 기술 개발을 의뢰했다. 그렇게 Boeing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미 공군만 사용하는 flying boom 방식의 공중급유 기술을 개발했다. (물론, 우리나라 공군만 보아도 A330 MRTT에 flying boom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가 운용하는 기체가 모두 미국에서 만든 기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독자적인 전투기를 개발하는 프랑스는 미국과 동일한 KC-135를 도입했음에도 자신들이 개발한 전투기에 맞춰 flying boom을 probe and drogue 방식으로 교체했다.) 그렇게 flying boom 방식의 급유 시스템을 갖춘 KB-29P가 1950년부터 등장하여 미 전략공군사령부에 인도되었다. 이후 전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폭격기 전력을 가진 미국은 빠른 시간 내에 엄청난 양의 연료를 주입할 수 있는 flying boom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미 공군은 flying boom 방식의 공중급유기와 flying boom 방식의 공중 급유가 가능한 전투기들을 운용한다.
이로써 호위 전투기(escort fighter)라는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고, 비행기는 내부 연료 탑재량을 늘리기 위해 거대해질 필요가 없어졌다. (실제로 침공 전투기 사업을 통해 개발된 기체들은 동시대 전투기들에 비해 덩치가 매우 컸다. 그러나 공중 급유 기술이 등장했음에도 항전 장비의 소형화가 이뤄지지 않아 전투기의 덩치는 점점 커져만 갔다.) 대신 일반 전투기도 공중 급유만 가능하다면 폭격기와 함께 장거리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공중 급유기의 지원을 받는 미 공군은 이제 세계 어느 곳이라도 공군을 보낼 수 있는 막강한 공군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발전한 공중 급유 기술은 공군은 물론 해군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과 영국은 정규 항모로는 채울 수 없는 항공모함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또는 대서양을 오가는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호위 항모’를 별도로 운용했다. 정규 항모보다 크기가 작고 속도가 느렸던 호위 항모는 구식 전함들과 상선들을 훌륭히 보호해 주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창기 제트 엔진은 가속력이 부족해 왕복 엔진 함재기보다 더 긴 활주로를 요구했고 나중에는 함재기 자체가 거대해짐에 따라 호위 항모는 제트 함재기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속도도 느렸기 때문에 제트 함재기를 충분히 가속시켜줄 수 없었다. 그럼에도 1950년 한국전쟁과 1965년 베트남 전쟁 동안 항공기와 화물을 실어 나르는 화물선의 역할을 겸할 수 있었지만 이내 공중 급유기의 등장으로 태평양 건너 항공기를 수송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호위 항모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졌고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Wikipedia, Lucky Lady II
Wikipedia, Boeing B-47 Stratojet
Wikipedia, Strategic Air Command
Wikipedia, Boeing KB-29
Wikipedia, Boeing B-29 Superfortress
하늘하마, 미공군 초창기 공중급유기 KB-50
하늘하마, 미공군 초창기 공중급유기 KB-29M & KB-29P
하늘하마, 미공군 주력 공중급유기 역사
비겐의 무기 블로그, 미공군 최초의 본격적인 공중급유 전용기체 Boeing KB-29
네이버 무기백과사전, 포레스탈급 항공모함
EAA, The Tear of the Air Tanker: The History Behind the Tankers That Visited Oshkosh
Avgeekery.com “Lucky Lady II: The B-50 That Flew the First Non-Stope Around-the-World Flight”
Boeing Frontiers, The sky's great gas station by Mike Lombar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