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강요하지 않아

by 김대일

체육교사인 Y는 운동이 됐건 뭐가 됐건 타인과 뒤엉켜 부대끼는 거면 질색한다. 그런 그가 대통령배 전국대회 준우승(2부 리그)에 빛나는 대학 럭비부의 일원이었고, 몸과 마음이 자꾸 따로 노는 이상 징후를 수시로 느끼는 나이가 됐음에도 럭비공만 보면 여전히 트라이를 향한 투지가 불타오르는 럭비빠라는 건 아이러니다. 그런 Y를 럭비의 세계로 인도한 이는 대학 시절 같은 과 한 선배였는데 그 발탁 과정이 역시 기발했다.

Y가 아무개 대학교 체육교육과에 합격하고 고3 마지막 겨울방학을 느긋하게 즐기던 1월 어느 날, 과 선배라고 자신을 밝힌 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껏해야 한두 살 아니면 서너 살 더 먹었을 선배라는 작자는 한껏 위엄이 서린 건조한 어조로 자신이 전화를 건 용건을 따박따박 반말 조로 밝혔다. 체육교육과는 입학 전에 동계훈련이란 걸 참가해야 하니 다음 날 바로 운동장에 집합하라. 만일 지엄한 선배의 명령을 거역한다면 대학 생활이 왕창 꼬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수화기 너머로 스멀스멀 풍겼다나. 입학 전인데도 선배의 치밀한 등쌀에 얼어버린 Y는 다음날 부리나케 운동장으로 달려갔고 거기엔 그와 매한가지 이유로 불려 나온 신입생 7~8명이 옹동그리고 앉아 있었다. 체육교육과 내 럭비부 소속이라고 밝힌 선배는 그들에게 운동장에서 럭비 훈련에 여념이 없는 또 다른 선배들을 가리키면서 ‘우리에게 동계훈련이란 무엇인가’라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동계훈련의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과잉 친절을 베풀었다. 그렇게 한겨울에 비지땀까지 흘려가며 큰 타조알 같은 럭비공을 두 시간 가까이 가지고 놀던 선배들 일당은 오늘 훈련은 이만하고 다 같이 목간이나 가자면서 안 따라올 간 큰 신입생이 누구인지 쌍심지를 세우고 살펴보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만난 사람들과 발가벗고 탕 안에 둘러앉은 광경은 그로테스크했지만 그보다 Y를 전화로 불러낸 선배란 작자가 꺼낸 럭비부원 모집의 변은 가히 기상천외했다.

“지성인으로서 우리는 절대 강제로 운동(럭비)을 시키지 않는다. 대신 지금부터 너희들은 셋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셋 중의 하나라니까 일단 선택의 폭이 넓어 다행이다. 이왕 고를 거면 나한테 가장 적합한 걸 고르면 되겠는데.

"첫 번째, 럭비, 두 번째 수중발레, 세 번째 군 입대."

선배 제안에 군 입대로 화답한 동기가 있긴 하지만 그날 참석한 대부분은 결코 강제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럭비에 입문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럭비로 해서 톡톡히 덕을 본 Y인지라 럭비에 대한 애정이 자못 남다를 수밖에 없겠다. 이를테면 우연찮게 출전한 대통령배 럭비대회(2부)에서 준우승을 했고 그 경력이 임용 시험에서 아주 쏠쏠하게 가산점으로 반영돼 상대적으로 입직이 수월했으니 럭비공이 Y에게 큰 선물을 안긴 셈이다.

체육교사로 24년째인 Y 선생은 체육시간에 단 한 번도 학생들에게 강제로 운동을 시킨 적이 없다.

“오늘은 자율 체육시간이다. 너희들 원하는 종목을 선택해서 실컷 즐겨들 봐라. 첫 번째 00(이 선생이 원하는 종목), 두 번째 수중발레, 세 번째 마라톤.”

이상한 건, 학생들이 원하는 종목이 항상 이 선생이 원하는 종목이랑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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